지난 초여름에 모케이블방송 프로그램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고정 패널인 탈북가수 한옥정씨를 인터뷰 한 적 있다. 기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남한에 정착한 북한 이탈주민의 제일 큰 어려움이 남한에서의 차별과 무시라고 하던데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씨는 기자를 질책하듯이 “ 딱딱히 얼어붙은 땅 속을 씨앗이 뚫고 올라오는거랍니다.”라며, “낯선 땅에 발을 디디면 심장의 굳센 결의로, 흔들릴지라도 또 일어설때 결국 열매를 맺는 거예요”라고 비장함까지 비추며 말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자의 얕은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새터민출신 스타가수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치열한 여정이 그녀의 이러한 단호함을 입증하고 있다. 북한 선전대에서 활동한 그녀의 선전대 입단스토리는 일반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이었다. 노동자출신이라 선전대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선전대 간부를 홀로 당차게 찾아갔다. 결국 그녀의 실력을 인정한 선전대 간부가 당간부 집안 출신이 아님에도 그녀를 선전대에서 화술(mc)과 노래를 맡게하였다.
한국에서의 가수활동 시작도 그녀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의 승리였다. 그녀는 단신으로 kbs가요무대 피디를 찾아가 그로부터 기획사를 소개받고, 그녀의 ‘상품가치’를 인정한 기획사가 5인조 새터민출신으로 구성된 달래음악단의 보컬을 맡게 하였다.
기자의 궁금점은 계속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의지가 강철같이 단단하실 수가 있죠?” 그러자 그녀의 결연함 뒤에는 걱정과 애정이 묻어났다. “내 딸 이슬이 때문이예요. 이슬이를 위해 나는 살고, 이슬이를 보면 견뎌내는 힘을 얻지요." 비틀거릴때마다 그녀의 버팀목은 바로 그녀의 심장, 이슬이였다.
뮤지컬 빨래도 이러하다. 빨래는 자신의 슬픔을 단순히 녹여 빠는 위로에 그치지 않고, ‘내일을 살게 하는 의지’이며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을 지탱하게하는 ‘참 예쁜 사랑’이다. 빨래는 아픈 마음을 헹구고, 말리고, 그래서 다시 꿈을 꾸게한다.
공연중에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를 보내던 중년의 일본인 여자관객에게 연극이 끝난 후 물었다. “어떠셨어요?” 그녀는 “우마캈다.(재미있고 잘했다)”라며 “너무 공감이되네요.”라고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관람이라고 소개했다. 이 뮤지컬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감의 마술을 부렸을까?
# 실현가능--난 슬플 때 빨래를 해
뮤지컬빨래는 우리의 심장을 무의식적으로 무대로 투사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나영이고, 솔롱고며, 그리고 주인 할매가 되어 그들과 결합한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아아아~~”라고 나영이 신음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와 호흡하며 우리도 울음을 터트린다. “얼룩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행궈 버리자, 어쩌것냐? 이것이 인생인 것을..”하며 주인 할매가 자조 섞인 한숨으로 인생을 한탄할 때, 우리도 그 객관이 주관으로 예리하게 전환된다.
어느 새인가 이 빨래터는 우리 슬픔과 분노의 공동빨래터로 승화된다. 그리고 이는 변혁의 기운을 움트게 한다. 나의 슬픔이 우리 모두의 슬픔이 될 때, 그 무력감이 구조의 균형을 깨트리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 빨래터에서 ‘나는 그저 꿈을 꾸었지.( I dreamed a dream)’라며 눈물을 삼키는 대신, ‘당신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듣지 않는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라며 당당히 승리의 깃발을 흔들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꿈은 닳아버린 헤진 꿈의 전락이 아닌 되살아나는 꿈의 부활로 용솟음친다. 부질없는 희망이 아닌, 솔롱고,무지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
#가득--내 딸 둘아
우리는 이제 무지개를 향해 당당히 나아간다. 하지만 아직 그 찬란함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먼 발치서 손 짓하고 있다. 실현가능하지만 가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가득은 내적이고 개인적인 역량의 몫이다. 각자의 굳센 의지와 치열한 싸움을 위해 전장으로 나서야한다. 그저 몇 번의 전투에 져서 좌절해버리는 실망노동자로 전락하는 나약한 패잔병이 아닌, 날카로운 병기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나영이 서점주인 갑의 횡포에 과감히 항거할 때, 무릎을 꿇기보다 다시 그 싸움의 장으로 다시 출정한다. 그녀는 다시 빨래를 하는 것이다.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밞다보면 길이 생기지. ”
그런데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곧게 서게 하는 힘은 주위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훈훈한 온기들이 그의 마음의 혁명의 불꽃을 다시 지피게 한다. 주인 할매는 얼룩 같은 슬픔이 그녀를 엄습할 때, “네가 살아 있응께 빨래를 하는 것이제. 네가 아직 살아 있응께 빨래를 하는 것이제. 요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잉게. 암씨랑도 안허다.”라며 그녀의 장애를 가진 딸 둘이를 그의 반석으로 의지한다.
#실현--서울 살이 몇핸가요?
이제 빨래의 완성이다. 실현가능하고 가득되어 꿈을 향해 질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넘쳐 오르는 슬픔의 공감과 치열한 각자의 몸부림이 결국 실현을 이룬다. 그래서 슬픔의 빨래가, 눈물의 빨래가 깨끗해지고, 잘 널리고, 잘 말라, 기분 좋은 나를 걸치게 된다.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 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는 꿈을 다시 꿀 수 있다. 망상의 무지개가 아닌, 진정 손에 잡히는 무지개 말이다. 이제 비로소 우리의 상처를 빨랫줄에 널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람에게 슬픔과 억울함의 빨래를 맡길 수 있다. 마침내 빨래는 위로로 다가온다. 우리가 공감의 박수와, 동감의 어깨를 함께 걸고 나갈 때, 그리고 치열한 응전을 이겨낼 때, 우리는 빨래를 널어 아픔을 싸맬 수 있다. 여기서 뮤지컬 빨래의 소명을 보게된다.
# 참 예뻐요
뮤지컬 빨래의 힘은 탄탄한 스토리와 더불어 배우들의 진정성에 빚지고 있다. 나영의 몸에 빙의된 듯한 몰입의 연기를 펼친 박은미배우, 뮤지컬 전체를 균형있고 슬기롭게 통제한 안방마님 주인 할매역 조민정배우,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인 희정엄마역 김국희배우, 그리고 뮤지컬 여성팬의 마음을 빼앗는 외모와 성실한 연기가 돋보인, 무지개 솔롱고역의 김보강배우, 그리고 자유자재로 다양한 연기의 옷을 걸칠 수 있는 구씨역의 장격수배우등, 이들이 없었다면 관객들의 우울을 어찌 누가 행구어 낼 수 있을까?
또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법한 ‘난 슬플 때 빨래를 해’, ‘참 예뻐요’ ‘비오는 날이면’등의 명곡들은 묵직한 소재의 답답함을 로맨틱 코메디에서 엿보이는 유쾌함과 사랑스러움으로 희석화시킨다.
먼지 같은 일상으로 숨이 막히는가? 쫓아가던 무지개가 저 멀리 도망간다고 낙담하는가? 외롭고 쓸쓸히 우산 하나 받쳐들고 거리를 헤메이는가? 이럴 때 답이 있다. 빨래를 하는거다.
뮤지컬 빨래는 우리에게 말한다.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리자.”며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자.”고 우리의 어깨를 감싼다. “당신의 아픈 마음 우리가 말려줄게요.”라고 우리를 살포시 보듬는다. 그래 자! 힘을 내! 오늘 빨래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