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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호텔링의 법칙 ] 자유와 평등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위해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중도층의 지지를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일반론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정당의 포지셔닝을 양극단에서 중앙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당의 이념 포지셔닝이 중앙에 위치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리바이던이 활개 치지 못하는 사회, 즉 극단적 자유와 평등을  배제하고 자유 및 평등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 호텔링 법칙 



극단적 주장대신 중간적 가치에 호소하는 것이 선거에서 승리 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주장은 ‘호텔링 모형’으로 설명됩니다. 

미국 경제학자 해럴드 호텔링(Harold Hotelling)은 최적 입지 조건을 설명한  1929년 논문 “Stability in Competition”에서, 매출 확대를 위한 최적 입지는 소비자 다수를 포함할 수 있는 중간지점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호텔링 법칙은 선형의 해변을 가정합니다. 백 미터 길이의 해변에 두 개의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습니다. A가게는 왼쪽 끝에서 25m 지점에, B가게는 오른쪽 끝에서 25m지점에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A가게가 가게를 현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50m 더 이동하여 75m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그러자 A가게의 점유율이 높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25m~75m에 자리한 소비자들이 거리의 이점으로 A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켜 본 B가게도 현 지점에서 왼쪽으로 더 이동합니다. 두 가게는 몇 번의 위치 조정을 거친 후에,  마침내 해변 한 가운데 붙어 세워지게 됩니다. 


◆호텔링 법칙의 정치영역에 적용

미국의 경제학자 다운스(Aanthony Downs)는 호텔링 모형을 정치영역에 적용하였습니다.  정당이 이념의 양 끝이 아닌 중앙에 가깝게  포지셔닝을 할 경우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즉 (거대)양당정치에서 정당의 포지셔닝은 양극단이 아닌 상대의 지형에 가까운 곳으로 해야,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호텔링 모형의 이론은 현실 정치영역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영국 보수당이 성공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로 이념의 유연성, 현실적응력, 그리고  당의 외연 확대등이 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캐머런수상이 정립한 중도우파 노선인 공감적 보수주의가 보수당의 장기집권의 동인이 되었다는 점이 호텔링 모형의 유효성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 이념의 유연성과 롤즈의 정치이론

정당의 유연한 이념 노선은 중도층에 소구하여, 지지율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념의 유연성이 어떤 가치를 의미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그 질문의 해답은 양극단의 가치인 극단의 평등과 극단의 자유사이에서 발견됩니다. 

여기서 양 극단 사이의 가치는 롤즈의 정치이론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극단의 평등과 극단의 자유에서 서로 상대를 향해 위치를 이동시킬 경우, 롤즈의 정치 이론을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 정치적 자질, 합당성

롤즈의 정치 이론 중, 정치적 자질과 이에 기초한 정치적 정의관의 개념은 양극단의 노선에서 탈피하여 안착할 수 있는 유연한 포지션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먼저 이념의 유연성이란 정치적 자질의 유연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롤즈에게 있어, 정치적 자질은 합당성(the reasonable)입니다. 

민주사회의 구성원들은 정치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합니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이성을 행사한다 해도, 지향하는 가치들의 불일치로 인해 합의에 도달하는데 거대한 장벽을 만납니다.  

특히 정부의 공무원, 의회의원등 헌법의 요소들을 다루는 책임 있는 자들에겐 합의와 공존은 긴요하게 요청되는 정치적 자질이 됩니다. 

롤즈가 의미하는 합당성은 이처럼 합의를 이루기 위해 공중의 선을 지향하는 공적이성을 발휘하여, 협력의 자세와 관용을 보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합의 지향적 태도가 이념의 유연성과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정치적 정의의 원칙과 유연한 이념 포지션

합당성을 존중하는 마음자세를 가진 이들은 이제 롤즈의 정의의 원칙을 만드는 주체가 됩니다. 

이들은 도덕심으로서 공적이성의 가치를 발휘하여 정치적 정의관의 원칙들을 검토하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롤즈는 정의의 두 원칙을 제시합니다. 1)최대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2)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정치적 정의의 가치들은 제1원칙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제1원칙은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즉 정치적 정의의 가치는 평등한 정치적 시민적 자유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평등한 정치적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선 부의 재분배와 공정한 기회의 평등이 요구됩니다. 

정부가 필요한 부의 재분배를 행하지 않을 경우 그 원칙은 의미가 없으며,  각종의 정부 보조정책· 교육정책등을 통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게 된다면 평등한  자유도 제대로 누릴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에서의 자유는 국가의 재분배정책과 기회의 평등정책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결국 이념의 중앙에 위치한 유연한 포지션이란, 롤즈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합당성의 태도를 지니고, 이에 근거하여 자유와 평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힘쓰는 정치적 정의관을 뜻합니다. 


◆리바이던이 군림하지 않기 위해 

정당의 유연한 이념 노선과 현실 적응성, 그리고 확장성은 정당의 지속 가능성과 집권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다시 말해 호텔링 모형이 의미하듯이, 정당의 포지셔닝이 극단에 위치하게 될 경우, 다수의 유권자들은 그 정당에 등을 돌리게 됩니다. 

중도우파, 또는 중도좌파 노선과 투표점유율과의 양의 상관관계는 적극강성지지자들이 정당의 근본적 이념을 추구하는 경향과 관련 있습니다.  

좌파 진영의 적극 지지자들은 국가 사회주의에 가까운 ‘자유 없는 평등’을 강조하여, 당과 국가의 일방 통행식 지침과 명령에 一絲不亂하게 개인이 복창하도록 하는 ‘앵무새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옹호합니다. 

반면 우파 진영의 강성 지지자들은 ‘자유지상주의’를 부르짖으며, 힘센 자들이 활개 치는 ‘호랑이의 자유’를 용인합니다.  

이처럼 앵무새처럼 지배에 순종하는 사회, 개인의 창의보다 결과의 평등을 기대하는 사회, 또한 호랑이 같은 거인이 활개 치는 사회에 저항하며,  일반 국민들은 중간지점의 이념을 지지하게 됩니다. 

즉 롤즈의 정치적 정의관에서 발견되는 자유와 평등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위해, 시민들은 양극단이념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합당성에 근거한 중앙의 이념을 지향하게 됩니다. 

결국 자유와 평등을 함께 고민하는 정당이 국민과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국가라는 리바이던 그리고 거인의 리바이던이 국민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합당성이란? (참고) (김혜성)

합당성은 도덕적 인격체로서의 시민이 지니는 속성으로서, 두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 측면은 정의감을 지니고, 협력의 공정한 조건을 제시할 능력과 함께 또 이를 기꺼이 준수하려는 태도를 지닌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 측면은 인식의 오류가능성을 알고 자신의 정치적 정의관을 기꺼이 공개적으로 논의할 용의를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협력의 공정성을 강조한 합당성의 첫 번째 측면은 상호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상호성이란 공평성과 상호이익의 개념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평성은 공평한 규칙과 이에 근거한 손해의 감수를 의미합니다. 즉 경쟁하는 사회체계 속에서 적용되는 규칙이 공평하게 적용된다고 판단 될 때,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 손해를 감수하는 덕목을 말합니다. 

그리고 상호이익이란 자신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이 현재 혹은 미래의 상황 속에서 모두가 이득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입니다. 

이처럼 상호성은 공평성과 상호이익의 사이에 자리하여, 단순히 타인의 이익만을 위한 것도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관심만을 위한 것도 아닌 한 지점에서 작동합니다.  

합당성의 두 번째 측면은 관용의 덕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정한 협력의 조건을 제시했을 때 발생하는 의견의 불일치를 기꺼이 부담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러한 관용은 ‘공적이성’(public reasson)을 사용한 개인이 자신이 판단한 결과를 받아들일 때 나타납니다. 

우선 공적이성의 개념은 이성의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목적을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데, 이것을 수행하는 능력이 이성입니다. 공적이성이란 이러한 이성 중에 공중의 선(the good of public)을 지향하고 그 선이 정치적 정의관에 의해 표현된 원칙에 입각하여 행사하는 이성을 말합니다. 

이처럼 관용은 공적이성을 행사한 이들이 얻게 되는 결과물입니다. 

결국 합당성이란 공적이성을 가진 개인이 가지는 덕목으로, 공평한 규칙 하에서 상호성에 근거하여 협력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며, 또한 공적이성을 사용한 결과에 기초하여 관용을 발휘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문헌>
김혜성, “합당성과 합리성의 시민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