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은 캐머런수상이 제시한 중도우파의 ‘큰 사회론’을 채택하여, 2010년 13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하였습니다. 캐머런의 제3의 길은 한국 보수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1997년 이후 13년 동안 영국 보수당의 무기력
영국의 보수당은 1997년 총선에서 블레어(Tony Blair)의 신노동당에 패배한 이래 13년 동안 노동당의 최장기 집권을 허용하였습니다.
보수당의 이 같은 무기력의 배경에는 보수당의 무능한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1997년 총선 당시 보수당은 뉴 라이트(New Right), 즉 대처주의 우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제를 효율적으로 잘 다루지도 못하여 성장의 파이를 늘리지도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대처주의를 지향하다 보니, 빈곤을 비롯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보수당은 이처럼 국민의 일상과 동떨어진 이도 저도 아닌 정당으로 비춰졌습니다. 이런 강성 이미지가 보수당의 집권을 13년간 방해한 주요 요인이 된 것입니다.
(보수당의 패배에는 ‘신노동당’이라는 이미지를 장착한 노동당의 환골탈태도 한 몫 하였습니다. 1994년 노동당 대표에 취임한 블레어는 당헌에서 제4조 -영국의 생산, 유통, 분배 수단을 사회화, 즉 국유화에 기초하여 평등한 분배를 추구한다-를 삭제하여 노동당이 사회주의 정당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또한 노동당의 전통 기반인 노조와의 관계 정리, 공공부문 지출 증대 반대, 보편적 복지 대신 생산적 복지인 ‘근로연계복지’등을 당의 주요 정책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당의 이미지 개선을 통해 노동당은 중도좌파 정당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이념 포지셔닝이 13년 동안 장기집권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 캐머런의 제3의 길
2005년 10월 당대표에 취임한 캐머런(David Cameron)에게 당면한 제일의 과제는 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당의 이념 포지셔닝은 ‘공감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였습니다.
이 노선은 완고한 대처주의 우파에서 탈피하여, 경제효율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중도우파의 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영국의 오랜 보수주의 전통이었던, 대처주의적 자유지상주의와 온정주의(paternalism) 사이에서의 제3의 길이었습니다.
여기서 온정주의는 일국 보수주의(One Nation Conservatism)를 일컫습니다.
19세기 말 영국이 2개의 나라, 즉 부자의 나라와 빈자의 나라로 분열되자, 당시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총리는 갈라진 나라를 다시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일국 토리주의(One Nation Toryism)를 주창하였습니다. 일국 토리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하층민을 위한 사회정책을 실시하는 온정주의를 특징으로 하였습니다.
온정주의적 일국보수주의는 이후 사회정의와 각종 사회적 병폐의 개혁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국 보수주의의 주요한 전통으로 자리하였습니다.
온정적 일국보수주의의 이념과 달리, 영국 보수주의의 전통의 또 다른 측면인 대처주의(Thatcherism)는 시장과 개인의 자유에 기초하였습니다.
대처주의가 추구한 개인의 가치 존중은 공동체의 가치를 꿈꾸었던 맑시스트들이나 페이비언 국가사회주의자들(集産주의)의 낭패와 폐해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즉 대처주의가 국가의 개입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중시하게 된 것은 개인의 국가에 대한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개인의 책임과 창의성이 방기된 나머지, 국가의 질서와 안정적 성장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처주의적 자유지상주의는 각자 알아서 자기 삶을 꾸려 나가는 價値放任主義에 방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치방임은 자포자기라는 개인의 자기부정으로 이어 질 수 있고, 심지어 ‘굶어 죽을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 자유인가라는 비판이 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효율과 창의를 강조하는 대처주의는 공동체가 경쟁에 패배한 개인의 삶을 돌보지 않아 개인의 삶을 위기로 몰아낸다는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두 가지 보수주의 전통에 기초하여, 캐머런은 대처리즘의 장점과 일국보수주의의 장점들의 혼합체인 ‘큰 사회론(Big Society)’을 구상합니다. 개인의 자유의 가치에 버크류 보수주의, 행동경제학의 너지 이론등을 결합하여, 경제면에서는 대처리즘을 수용하지만 사회정책 면에서는 일국보수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결국 캐머런의 제3의 길로의 이념 이동은 성공적이었습니다.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마침내 제1당이 된 것입니다.
◆ 캐머런의 ‘큰 사회론’
캐머런의 ‘큰 사회론’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liberal conservatism)’로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란 1)우파가 아닌 중도우파로서 2)‘큰 국가’ 때문에 잃어버린 개인의 자유의 회복을 추구하고 3)그러면서도 공동체에 적극 참여할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①캐머런의 대처주의의 일부 수용과 일국보수주의의 적용:
캐머런은 국가의 성장과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큰 국가를 도구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큰 국가는 재정적자, 국가 복지 의존도 증대, 개인의 창의성과 자발적 참여의 종식등의 폐단을 초래하는 권위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변화의 원동력은 창의적 진취성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과 기업가에서 비롯된다고 파악하였습니다.
또한 캐머런의 큰 사회론은 사회정책론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가치방임주의를 거부하고 일국 보수주의 전통을 드러냅니다.
캐머런은 관용적 포용성을 강조하여, 직접세의 대폭적 감세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안을 지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신자유주의의 대처주의의 계승자가 아니라 사회정의나 각종 사회적 병폐의 개혁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복지국가 자체는 이미 주어진 상수로 취급했고, 대처가 원했던 만큼 복지국가를 공격적으로 후퇴시킬 의도가 없었습니다.
② 큰사회론의 사회관
그렇다고 캐머런이 바라는 복지국가는 국가가 직접 복지를 담당하는 복지국가를 뜻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보다 많은 복지 서비스를 자발적인 사적 부문에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즉 캐머런은 빈곤과 사회문제를 국가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능동적 시민, 사회적 기업, 자선단체, 자원봉사등 사회조직들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친화적 복지(affiliative welfare)는 버크류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사회의 성격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정치사상가인 버크(Edmund Burke)에게 사회는 서로 의존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들의 연결망으로서,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이런 유기체 사회는 개개의 구성원들이 풍성하게 짜인 융단 속에 교차하며 엮여 있는 실들과 같은 ‘사회적 직물’(social fabric)에 비유됩니다.
여기서 사회적 직물들로서의 사회는 소집단들-자발적 결사체, 종교단체, 가족, 의회, 정부기관, 다양한 제도-로 구성되어, 그곳에 속하는 인간들이 다양한 형태의 상호관계의 망에 의해 포함됩니다. 인간은 소집단의 일원이 되어 이곳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습득하여, 사회적 존재로 성장합니다.
버크의 사회관을 수용한 큰 사회론은 국가의 권력을 사회와 개인에게 분산시켜 이들에게 자유를 회복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하였습니다.
대처주의와 큰 사회론의 구별점은 인간관 측면의 차이입니다. 대처주의자는 사회는 섬세한 직물이 아니라 난폭하고 경쟁적인 시장이며 개인은 ‘거친 개인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지만, ‘큰 사회론’은 버크의 주장처럼 개인은 상호의존적인 관계의 망 속에서 서로 연대하는 존재입니다.
③넛지 조직과 국가의 역할:
이 같은 ‘큰 사회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공동체에 적극 참여할 시민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됩니다. 큰 사회론에서 ‘넛지 조직’이 등장하는 배경입니다.
어떻게 큰 사회가 개인과 집단이 자유선택권을 유지하면서도 이들을 자극하여 공동체의 책임을 행사하도록 할 것인가가 ‘큰 사회론’의 성공의 핵심인데, 이는 넛지 이론과 일맥상통합니다.
부드러운 자극은 국가의 몫입니다. 국가는 사회가 보다 큰 책임감과 친밀한 이웃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는 자발적인 개인과 단체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환경조성자’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처럼 큰 사회론은 국가의 강제로부터 벗어나 개인과 시장의 선택을 중시하고, 또한 경쟁에 실패한 이들에게는 생산적 복지를 그리고 약자인 아동· 노인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보장하여 사회정의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정의의 실현을 부드러운 자극을 통해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합니다.
이러한 ‘큰 사회’에서의 복지체계는 국가가 복지 서비스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모두에게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며, 개인은 수동적인 복지 수당 수령자로 위치하는 노동당의 복지 개념과 차이를 보였습니다.
결국 큰 사회론을 통해 영국 보수당은 대처주의와 일국보수주의 특성들을 함께 녹여 낸 ‘공감적 보수주의’로 포지셔닝하게 되었습니다.
◆ 윤석열 정부의 노선과 제3의 길
캐머런의 공감적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는 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사회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성이 보수주의 정당에 어울리는 이념이라는 점을 캐머런의 ‘큰사회론’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시장의 선택에 의한 성장을 추구하며, 계층의 분열로 인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제3의 길은 보수당의 노선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도 캐머런의 중도우파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됩니다.
윤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자유, 시민의 존엄한 삶,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를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노선은 캐머런의 ‘큰사회론’에서 제시하는 특성을 다수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윤석열정부의 정치노선을 자유주의적 보수주의, 또는 공감적 보수주의, 또는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등으로 명명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정부와 국민의 힘이 이러한 중도우파로서 제3의 길을 추진해 나아갈 때, 안정된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이론은 훌륭하지만 정작 실현가능한가라는 점입니다.
개인의 자유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공동체 구성원간의 연대는 ‘둥근 네모’로 읽혀 질 수도 있습니다. 이점은 개인이 이기심을 추구하면서 구성원간의 공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아담스미스의 명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소할 지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를 실현하는데 핵심이 될 것입니다.
국가가 넛지이론에 따라 부드러운 자극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성을 획득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 자극이 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윤석열정부는 공동체주의의 약점인 이상은 훌륭하나 현실적합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결과에 대한 전망이 어떠하든, 경제성장과 사회정의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윤석열정부의 의지와 패기는 높이 평가될 수 있습니다. 좀 더 촘촘한 제3의 길, 즉 현장에 적합한 구체적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참고문헌>
홍석민, “D 캐머런의 큰 사회론과 영국보수주의 전통”
홍석민, “D 캐머런의 큰 사회론과 영국보수주의 정치적 이미지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