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쳇바퀴라는 말이 있습니다. 쳇바퀴 위에서 계속 뛰고 있지만 그 쳇바퀴가 같은 속도로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어 뛰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소득의 만족도와 여가의 효용이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증가하여 소비의 효용이 높아져도, 노동의 증가로 인한 여가의 감소는 여가의 효용인 정서적 행복을 감소시킵니다. 이는 노동소득이 여가의 대체물 혹은 기회비용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총 만족도는 불변입니다.
여기서 정서적 행복이란 공동체적 관계의 행복을 말합니다. 친구, 연인, 가족 간의 상호 호혜적인 교류가 가져오는 따뜻함을 일컫습니다. 이것들은 관계를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말합니다. 이처럼 행복은 관계, 즉 사이 ‘between’에서 피어오릅니다.
우리나라의 일인당 GNI는 3만불에 육박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저소득 국가들에 비해 낮다고 합니다. 이는 돈을 중시한 나머지 사회적 관계를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망이 공동체의 구성원간의 배려와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삶은 소시민들에겐 대단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고만고만한 삶일 뿐입니다. 고만고만한 직장, 고만고만한 결혼, 고만고만한 퇴직과 노후생활일 뿐입니다.
그러니 딱히 기억에 남는 행복한 추억을 꼽기도 쉽지 않습니다.
◆ 잘 사는 삶, 인간적인 번성한 삶이란?
그렇다면 잘 사는 삶, 최선의 삶, 만족으로 가득 찬 삶은 어떤 삶일까요?
일반적으로 소득을 통한 소비가 증가해도 소득의 한계효용은 줄어들어 영으로 수렴합니다. 수입이 많아지는 만큼 욕망도 늘게 되는데, 수입보다 욕망이 더 빠르게 증가하게 되어, 소득의 단위증가가 효용의 추가 증가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한계효용이 감소하지 않는 활동만이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1998년 작, 재개봉)는 주인공 모치즈키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이 영화는 사후세계인 림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천국을 가기 전 일주일 간 머무는 곳입니다.
림보에 잠시 머무는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 하나를 선택하고, 림보의 직원들은 이 기억을 추억의 영화로 재연합니다.
림보의 직원 모치즈키는 소중한 기억을 선택하지 못해 림보에 남게 된 인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젊은 나이에 태평양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약혼녀였던 교코가 림보를 거쳐 갔다는 것과, 그녀의 가장 소중했던 기억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교코는 모치즈키와 그녀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을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선택한 겁니다.
모치즈키는 자신의 행복만을 찾기보다 자신이 타인의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모치즈키로 하여금 마침내 가장 소중한 기억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삶이야말로 활동에 따른 효용의 감소를 초래하지 않고 증가시켜주게 됩니다.
긍정 심리학은 이러한 관계를 단순한 쾌락, 즐거움의 감정을 넘는 참된 인간적 번성(flourish)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평안함과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오는 flourish는 기쁨· 따뜻함· 자신감등의 관계적 정서, 독서· 예술 활동과 관람에 몰입, 종교 활동,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충족시켜 주는 삶을 통해 얻어집니다.
우리는 가끔 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자문하곤 합니다. 이 질문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혹은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흡사합니다.
이 영화는 이에 대한 답으로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 뿐만 아니라 우리가 타인의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고만고만한 삶의 쳇바퀴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