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이 기존의 도식을 깬다. 그가 개혁적인 시도를 할 때, 현재는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과거의 정태성에 도전장을 내고, 현실을 개조하는 한 인물의 창조적 시도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1950년대 프랑스. 소녀 같은 건강성을 자랑하는 한 여배우가 그랬다. 그녀의 이름은 브리지트 바르도(이하 BB)
1956년 11월 28일. 22살의 BB가 출연한 영화 한편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가 프랑스에 개봉된다. BB의 등장은 프랑스 젊은 여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BB가 기존의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에 저항하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BB 이전에 아름다운 여인의 표준은 규격화된 관능적 몸매를 지닌 여성상이었다. 코르셋으로 배와 허리를 조이고, 종아리의 두께를 다듬고, 눈썹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여인상이 아름다운 여인의 기준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BB는 새로운 미의 여인상이었다. 젊음과 자유라는 보편적인 개념을 내세우며, 건강하고 살아 움직이는 몸을 자랑하였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을 어떻게 개성있게 표현하는가가 아름다운 멋이라는 새로운 미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BB는 ‘새로운 물결’의 전조였다. 이전 시기와 다른 새로운 가치와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누벨바그는 BB와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것이다.
◆ 프랑스적 특성과 누벨바그의 등장
누벨바그의 부상은 당시 프랑스적 특성과 연관된다.
전쟁직후 1950년대 이후 프랑스의 사회 문화는 수동적인 순응주의에 물들어있었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기존의 질서에 복종하는 순응주의는 미래를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는 현재의 의지를 꺾었다. 현재는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지배되어, 미래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태도를 가져 온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영화에서도 나타났다.
창의적인 영화대신 단순히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서 상품을 찍어내는 것과 유사한 규격화되고 단순 소비에 영합하는 영화가 대량 생산되었다. 영화는 감독의 영혼이 담겨진 시나리오 대신, 문학등을 손쉽게 각색한 상업적 작품들이 만들어 졌다.
이렇게 당시 영화 제작자와 감독들은 문학의 진부한 각색이라는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는 게으름과 오락성에 젖어 있었다. 그로 인해 영화는 값싼 소비를 위한 질 떨어지는 문화로 여겨진 것이다.
◆ 누벨바그 감독들, 과거 관습적 영화 양식에 도전
그런데 50년대 프랑스 영화에 일군의 ‘작가’들이 지금까지 길들여진 영화작법에 반기를 들었다.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이 등장한 것이다.
고다르, 트뤼포, 로메로등은 영화는 단순히 한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는 오락물이 아니라, 예술가의 영혼이 담긴 언어라는 작가주의를 표방한다. 이들은 정체된 무거운 전통의 굴레를 벗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현재를 일구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였다.
누벨바그 감독들은 기존의 경직된 영화적 도식을 깨고 창조적인 시도를 하였다. 들고 찍기, 자연광 아래 야외 촬영, 관습적 서사구조의 파괴등으로 독창적인 영화 양식을 선보인 것이다.
특히 이들은 잘 짜여진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 저항하였다.
기존의 내러티브 구조는 관습적이었고 익숙하여, 인과관계가 분명한 ‘시작, 중간, 클라이맥스, 결말’의 틀에 갇혀있었다. 결말은 명확하여 끝을 맺었다. 이와 같은 닫힌 구조는 관객들의 사고의 확장을 제약하였다.
이와 달리 누벨바그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는 표준화된 플롯의 흐름을 깨뜨렸다. 인과관계가 없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서사를 제시하였다.
특히 고다르(Godart:예술의 신)의 점프 컷은 모든 삶이 원인-결과에 의해 설명된다는 편한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점프 컷은 이어지는 두 개의 쇼트들의 연결이 인과 관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매끄럽지 않은 이음매의 효과로 내러티브가 어디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또 누벨바그 작가들은 롱 테이크로 장면을 포착하였다. 기존의 영화는 10초 안팎의 짧은 쇼트로 편집을 하여 장면을 가공하는 것에 비해, 누벨바그는 편집없이 하나의 쇼트를 길게 찍었다.
누벨바그 영화의 결말도 기존의 폐쇄성과 달랐다. 끝맺음이 불분명한 열린 형식을 취하여 관객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허락하는 유연성을 제공하였다.
특히 누벨바그 감독들이 즐겨 사용한 결말의 정지쇼트(freeze frame)는 다양한 암시를 제공한다.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는 결말이 모호한 정지쇼트로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소년원에서 도망친 앙투안이 해변에 도달하여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프레임은 정지된다. 바다는 자유와 탈출을 의미하지만, 스틸사진처럼 정지된 쇼트는 앙투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나타낸다. 자유는 얻었으나 미래는 불확실한 상황을 바다와 정지쇼트로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누벨바그 감독들은 과거 관습적 영화 양식에 도전하여, 감독은 곧 작가라는 신념을 지닌다. 감독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영화 찍기 대신 창의적인 형식과 시각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의 ‘카메라 만년필설’에 근거한 것으로, 카메라도 문학에서의 만년필처럼 창의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누벨바그 감독 영화는 영화 작법의 역전을 추구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였다. 현실화된 고정 관념에 영상과 소리를 공급한다기보다 영상과 소리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에 영화를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누벨바그 감독 영화의 역전은 영화 창작에서 예술성을 확대하는데 기여하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김명수 후보자, 사법부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올 수 있어
한 인물의 개혁적 의지는 새로운 물결을 창조한다. 한 인물이 여태까지 익숙한 관습을 개혁한다면, 현재는 진일보한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사법부의 미래도 한 개혁적 인물의 등장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국민의 기본권과 사회적 약자를 중시하는 도덕적이고 청렴한 법조인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사법부가 세상의 그릇된 힘에 의해 자신의 권리조차 빼앗기는 소외된 약자들을 지켜주는 피난처로 거듭나는데, 김후보자가 앞장 설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대법원장 임명동의 표결이 열리는 21일은 사법부의 미래를 위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
김명수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동의는 한 인물이 세상에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게 할 수 있다는 역사의 새로운 증언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