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 대한 칭찬의 하나가 통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을 크게 저지른다. 하지만 앞뒤 안 재고 일을 크게 저지르니, 뒷감당을 못한다. 남겨진 짐은 애꿎은 제3자의 어깨에 올려 진다.
반면 일본사람은 꼼꼼하고 섬세하다는 호평이다. 하지만 의사결정이 느리고 지지부진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결정 하세월로 적시 대응에 실패한다.
이러한 사람의 행태는 개인의 의식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사람의 의식은 이를 결정하는 존재, 예컨대 제도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장기침체의 원인에 대한 분석의 하나는 일본정부가 부실채권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부실채권은 투자와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부실채권누적으로 은행의 대출이 약화되어 화폐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이는 기업의 투자를 감소시키고 소비를 줄이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적극적이고 신속한 부실채권처리에 나서지 않았다. 그 이유에는 일본의 정부형태의 특징이 도사리고 있다.
◆장기침체를 초래한 방아쇠는? 주가 폭락과 부동산 가격 하락
일본경제를 장기 침체에 빠뜨린 방아쇠는 1990년대 초반의 자산 가격 폭락이었다.
먼저 자산에 거품이 만들어졌다. 그 과정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치 폭등 →경기침체(성장률 85년 6.3%에서 86년 2.8%로 하락) → 통화완화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지가와 주가 폭등 → 자산버블 형성」로 진행되었다.
이후 자산의 거품이 터지게 된다. 「1990년대 초 부동산 가격폭등 → 통화긴축 (대출 규제, 금리인상) → 주가폭락, 부동산 버블 붕괴」으로 자산가치가 폭락하게 되었다.
특히 부동산 가격하락은 장기침체의 주범이었다. 부동산 담보가치가 하락하자 부실채권이 발생하고, 추가 금융부실을 막기 위해 대출이 제한되었다. 이렇게 자금 흐름에 숨통이 막히게 되자, 문 닫는 기업들이 속출하게 된다. 이 여파는 다시 은행의 부실채권 누적으로 이어져 자금의 흐름은 더욱 경색되어 갔다.
이처럼 자산가치의 하락은 경기침체의 단초가 되었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엔화가치
자산 가격 폭락 이후 일본의 경기 침체는 장기화로 접어들었다.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시도되어 왔는데, 거시경제의 부정적 충격 중에서 총수요의 침체가 장기침체를 지속시킨 결정적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엔화가치상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점이 총수요 진작의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이는 환율변동을 위한 일본정부의 통화정책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엔화가치상승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와 해외자산수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엔화강세는 다시 엔화가치를 끌어올렸다. 엔화강세는 해외투자를 유인하게 되고, 이는 해외자산의 수익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달러수익의 국내유입이 다시 엔화가치를 상승시킨 것이다.
엔화가치 상승에 대한 일본정부의 대책은 양적완화의 실시였다. 하지만 통화팽창은 엔화가치상승을 진정시키는데 실질적인 효과를 미치지 못하였다. 이유는 유동성이 자금시장으로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화가 팽창되었는데 왜 유동성이 충분하지 못했을까? Krugman은 그 원인을 신용경색에서 찾고 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 누적으로 인해, 통화공급을 대출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현금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은행이 화폐수요를 무한히 늘리는 유동성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조경엽외)
결국 일본은행이 통화공급을 늘려도, 환율에 충격을 주지 못하였다. 본원통화증가는 은행이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어 물가상승기대를 견인하지 못했다. 이는 실질금리 변동을 자극하지 못하였다.
◆ 일본정부, 부실채권 처리 굼뜬 이유 – 정치형태의 영향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부실채권 처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부실채권규모가 1996년에 약 42조엔에 달했는데, 2007년에 비로소 12조엔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당국이 이렇게 정책전환에 굼뜬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과단성 있는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일본 정치제도, 특히 정부형태의 특징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
정부는 경기회복이 되면 부실채권은 해소될 것이라 낙관하였다. 이러한 낙관의 기저에는 일본의 경직된 관료주의와 위험회피의 정치리더십이 터를 잡고 있었다. (조경엽외)
일본의 의원내각제하에서, 총리는 단기간의 성과에 따른 지지율 등락으로 권력유지가 판가름 나게 된다. 따라서 리스크를 부담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게 된다. 위험 부담이 큰 정책이 실패하게 되면, 의회의 내각불신임과 의회해산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각이 연명을 위해 강력한 정치를 추진할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내각은 구조조정· 세금 인상등 국민에게 고통을 부담하는 개혁을 요구할 수 없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정책 리더십의 발휘를 막는 정부형태 하에서, 일본의 부실채권 처리 지연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 한국정부, 위험선호 배경? - 대통령 단임제의 덕택
정부형태가 정책담당자의 리더십 결정의 변인이 되고 있는 상황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도 정책담당자를 그릇된 의사결정으로 이끄는데 한몫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도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를 십분 활용한 경우라는 지적이다.
만약 이명박정부의 통치형태가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제였다면, 사대강 사업의 결과는 지금과 다른 모습을 띠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단임제는 대통령이 수행한 정책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이다. 단임 대통령은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서이다. 임기 5년이 마무리된 후, 정책 실패의 부담은 다음 대통령 후보가 짊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현행 통치제도가 부여한 ‘책임으로부터의 면제’로 인해, 대통령은 위험이 큰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일본수상의 리스크 회피와 달리, 한국의 대통령은 리스크 선호라는 통 큰 정책 결정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당시 통치형태가 대통령 연임제였다면, 대통령은 사대강 사업에 대한 접근방법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먼저 한 개의 강에 대한 치수사업의 결과를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른 사업의 지속성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수행한 치수 사업이 성공적이라면 대통령은 향후 사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될 것이다.(한동호)
이와 달리 치수 사업이 경제 및 환경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왔다면, 대선 공약에 사대강 사업은 제외될 것이다. 경제 타당성 평가와 환경평가에 (-)라는 결론이 내려질 경우, 선거를 통해 사업결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가능하였다면, 사대강 사업을 위한 삽질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단임제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책임회피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예로, 환율조정을 통해 달러 표시 1인당 GDP를 끌어올리는 것과 환율을 끌어올려 원화표시 GDP를 올리는 것 중에서, 정부는 어떠한 의사결정을 내릴까? 만약 연임제 대통령이었다면 아마도 재선을 고려하여 소득을 증가시키는 후자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즉 달러지표가 보여주는 단기 업적보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국민후생을 먼저 추구하였을 것이다.
또 다른 정부의 예로, 과거 총수요를 끌어올리기 위해 소득 혹은 자산이 없는 무자격자들에게 카드를 남발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들도 신용카드 한 두장은 지갑에 넣고 다닌 시대였다.
공짜 돈으로 보이는 카드는 일단 쓰고 보게 된다. 그러자 소비는 불타기 시작하였다. 일주일 내내 불타는 요일이었다.
그런데 소비는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예상되는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소비를 저지르게 되어, 카드 명세표가 도착한 후엔 이를 갚을 도리가 없게 된다. 결국 이렇게 누적된 카드빚은 카드회사의 부실채권으로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럼 그 부실은 누가 감당하였을까? 그 정책을 수행한 정부가 책임을 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 책임은 다음 정부의 몫이 되었다. 대통령 단임제이므로 책임에서 면제가 된다는 사실을 안 정부는 앞뒤 재지 않고 리스크를 저지르는 용기가 생겼다. 자신의 임기 때만 光나면 그만이라는 거다.
이처럼 단임 대통령제는 현직 대통령이 다음 선거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여론을 등한시하고 독선적이고 위험극대의 국정운영을 초래할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는 선거를 통해서 직접 자신의 치적을 평가받을 기회가 없는 것이 그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의 의사결정이 그들의 평판 대신 국민의 복리를 위한 결정으로 유도하기 위해선,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에 대한 진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도라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무책임성에 대한 제도적 방안은 1987년 체제인 단임 대통령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1987년의 단임 대통령제는 과거 장기집권으로 인한 반민주를 제어하기 위해 시대가 요구한 제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장기집권의 독재성은 다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단임 대통령제는 이제 본연의 소임을 다하고 국민의 박수를 받고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참고 자료>
조경엽외(2012),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한국에의 시사점」, 한국경제연구원
전용식외(2014), 「국내경제의 일본식 장기부진 가능성 검토」, 보험연구원
한동호(2010),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과 프랑스 동거정부의 함의”, 행정논총 vol.48.no3
전찬희(2014), “분권형 대통령제에 관한 연구”, 미국헌법연구 vol25 no3
고인석(2006), 「한국의 새로운 정부행태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