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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암살>리뷰 : 현실도피적인 상업영화의 한계를 넘어

1933년 일제강점기,  안옥윤, 하와이 피스톨, 그리고 염석진이 경성에 모여든다. 한 명은 타깃을 암살하기 위해서, 또 한명은 이 암살자를 암살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 한명은 이 정보를 일본군에 팔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호기심을 돋우는 이 세 캐릭터에 대한 탐구는 각각의 개성에  상응한  장르를 부여함으로써 실현된다.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은 액션을 통해,  청부살인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서부극을 배경으로, 일본군 밀정 염석진(이정재)은 역사극의 장르를 무대로 자신들의 매력과 개성을 발산한다.   

이러한 장르간의 유기적인 연결은 유려한 내러티브가 담당한다. 내러티브는 살며시 고개를 내밀다 서서히 힘을 받고, 이어 정점을 향해 치솟는다. 역으로 내러티브의 힘은 장르의 매력을 강화시킨다. 

이 모든 장르들이 서로 두드러지게 나서지 않고, 자기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각 장르간의 슬기로운 융합을 이룬다. 

액션에 집중함으로 인해 자칫 정서의 곤궁함에 빠질 위험을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통해 보완함과 아울러, 과거와의 대화인 역사를 점검함으로써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현실도피적인 상업영화라는 중립적인 영화의 한계를 넘어,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설득을 하는 명시적인 영화로의 발전을 이룬다. 

하지만 복합장르를 통해 감독의 목적은 실현되었을지 모르나, 장르에 매몰되어 관객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겠다는 일념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관객에게 소구하는 작품을 만들어 상업적인 손실은 없겠지만, 관객들이 작품의 매력으로 인해 영화에 저절로 순응하도록 하는 창의성은 엿보이지 않는다.  

영화가 단지 소비되기보다 생산의 잔여물로 남기를 바라는 대상임을 고려할 때, 작품 속으로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가거나 장르의 ‘밖으로’ 나아가 실험하는 독창성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지나친 것이 아닐 것이다.  




◆웨스턴 영화 (버디무비)–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 캐릭터는 서부극  영화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김치 웨스턴이다.

하와이 피스톨은 이중적 자아를 지닌 캐릭터로, 그의 자아의 변신에  당혹스러움을 주기도 한다.  식민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고 청부살인으로 생을 이어가는 그가 느닷없이 일본군과 밀정 처단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모습에서, 플롯 연결의 어색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와이 피스톤의 캐릭터가 액션이 강조되는 전통 서부극 장르를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면,  다소 개연성 없는 자아의 변신에도 수긍이 갈지도 모른다.  

악당이 활개 치는 마을에 이방인이 나타나  악당과 싸워나가는 웨스턴 영화는 이방인이 왜 악당과 싸워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총싸움과 추적, 그리고 로맨스에 집중한다. 단순한 서사를 통해, 전통서부극의 목표인 선과 악의 대립과 영웅의 탄생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다. 그저 강력히 앞으로 질주하면서, 매력적인 영웅으로서 관객들에게 호소한다. 

하정우는 이러한 하와이 피스톨의 이중적 자아를 낭비되지 않고 매력적으로 부각시킨다.  

한편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오달수)의 확장된 버디무비 장르도 영화의 맛을 새콤하게 자극한다. 


◆ 액션(케이퍼 무비) –독립군 저격수(전지현)

이 영화에서 독립군 안옥윤 캐릭터는 단연 액션이 돋보인다.  

전지현이 분한 안옥윤에서  배어나오는 청초한 얼굴을 한 전사의 매력은 긴 코트를 걸치고 장총을 든 채 지붕을 날라 다니는 모습에서,  타깃을 조준하는 스나이퍼의 예리함에서,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장총을 난사하는 이질감에서 뚜렷이 발견된다.  영상을 화려하게 수놓는 전지현의 액션은 그녀가  한국의 안젤리나 졸리로 성장할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이 액션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하부장르는 감독의 장기인 케이퍼 무비이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전문가 황덕상(최덕문)이  안옥윤과 함께  타깃 암살을 위해 치밀히 계획하고 전개 실행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한다. 

케이퍼 무비의 성공은 내러티브의 촘촘한 짜임과 이야기의 분명한 인과관계인데, 이러한 면에서 <암살>은 내러티브의 진정성 있는 흔적들이 영화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치명적인 안옥윤의 매력과 점증하는 내러티브는 관객에게 만족을 주는  셀링포인트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역사극 – 염석진 (이정재)

이 영화는 1933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일본군 밀정인 염석진의 살아남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하와이 피스톨이  청부살인자에서 일본군 투사로 자아의  변신을 보여주었듯이, 염석진은 독립군에서 일본군 밀정이라는 이중적 자아의 분열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씁쓸히 카메라에 포착된다. 이정재는 이러한 인간의 붕괴된 생존의 필연성에 매달리는 나약하면서 악한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한다. 

암울했던 당시 일제 치하의 이 역사극을 통해서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정리되지 못한 일제의 응어리들이 씻겨 지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른다. 일본군 밀정등 친일파의 숙청 문제는 해방이후의 역사적 과제였지만, 제헌 국회에서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는 단지 조사활동 6개월 만에 해체되었다.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해 왜곡된 한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는 과거의 응어리와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기존의 힘에 새로운 힘이 충돌하여 새로운 균형점에 이르게 될때 이루어진다면, 과거 청산되지 못한 잔재를 들추어내어 과거를 정리하여야 미래가 새롭게 열린다는 진실을 이 영화는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