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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무뢰한>리뷰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진실

<무뢰한>은 남녀 연애담에서 비롯된 개인의 감정과 욕망을 재료로 하여 빚어내는 멜로드라마이다.  

멜로드라마는 노래(melos)와 움직임(drama)의 합이다. 즉 이는 감정과 욕망의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멜로드라마를 우연의 내러티브, 논리적 인과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 과도한 감정폭풍의 신파로 규정하게 한다. 

하지만  멜로의 결을 지니는 <무뢰한>은 감정의 윤기를 제거한 작법으로 욕망에 접근한다.  느와르풍의 음악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히려 욕망을 제거한 하드보일드의 비정과 무색 무취의 전개는 관객을 역설적으로 욕망의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게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전도연배우의 언급처럼  감독은 배우를   감정의 늪으로 빠뜨리며, 다시 그녀는 관객을 감정의 수렁에서 긴 시간 허우적거리게 하여 그녀의 억눌린 감정을 보기 좋게 되갚는다.   

또한 이 영화는 감성에 매달리는 여성 취향의 멜로에서 벗어난다.  형사 재곤(김남길)의 객관에서 감정의 주관으로의 이동을 강조하는 듯한 이 영화는 실상 재곤의 위선을 폭로한다. 이는 호스티스 혜경(전도연)을 감성에서 객관으로 유도하며, 한 인간으로서 혜경의 성찰과 자각을 이야기한다. 




◆ 재곤의  낭만적 멜로 

형사 재곤의 멜로디는 낭만적 멜로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의 낭만이란 사랑스런 감정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억압되고 금지된 무엇이 어느새 욕망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금지된 것은 결국 금지의 선을 벗어나고픈 욕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재곤은 살인범, 준길을 잡기위해 준길의 애인인 호스티스, 혜경이 일하는 단란주점의 영업상무로 위장 취업한다. 그런데 사단은 재곤의 공적인 영역의 벽에 균열이 생겨, 그 틈새로 혜경에 대한 애틋함이라는 사적인 영역이 살며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살인범을 잡기위한 이용의 도구로서,  그의 목적이 달성되면 즉각 버려도 무방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범인의 여자가 재곤이 감싸주고 싶은 그의 여자로 어느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정들면 답 안 나온다.”는 선배 형사 기범의 말처럼  감정 과잉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객관적 현실이 주관적 감정에 지배된 것이다. 


◆ 혜경의 멜로디 

상처투성이, 남자에게 이용당하는 운명인 듯한 혜경의 멜로디는 사랑스런 감성의 드라마로 시작된다.  살인범 애인을 순종의 미덕으로 기다린다. 또한 “오늘 처음 만났는데 진실을 이야기 한 게 하나도 없는” 또 다른 거짓의 남자에게 마음의 한 켠을 기댄다. 

하지만  재곤이 객관에서 주관으로 전환된 것과 달리, 혜경은  감성의 멜로디에서 객관의 멜로디로 승격된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본심은 이야기 줄기가 마감된 후에  나타난다. 

영화의 에필로그에 재곤의 얼굴이 줌인 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감독의 표현대로, 이는 실낱같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언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남성멜로의 성찰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인식은 아마도 또 다른 욕망의 분출일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그는 억압된 욕망의 방향을 금지를 무너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사적인 예의를 통해 욕망이 분출되는 안전지역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욕망의 폭력성을 공적인 장소에서 가두지만, 그는 그의 욕망을 사적인 영역에서 예의라는 형식으로 충족시킨다. 어쩌면 이러한 그만의 방식은  ‘얇은 예의’라기보다 그의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을 통해 관객은 재곤에 대한 위선의 외피를 벗기고,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또 다른 하드보일드의 모습을 발견한다. 

관객의 이러한 자각은 혜경의 자각과 일치를 이루게 되고,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혜경을  성찰의 지점으로 이끈다. 오히려 혜경의 멜로디는 감성과 속삭임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새로운 리듬으로 전환되어, 혜경은 비로소 기름진 감성을 뺀 담백한 주체로 우뚝 선다. 

이는 전도연배우의 지적처럼 혜경을 자신만의 꿈을 품는 존재로 이끈다. 
 
이 영화는 이처럼 혜경의 개인적인 연애담이 궁극적으로 거대한 남성의 욕망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영화는 단순한 연애담이라는 현실도피의 멜로에서 싸구려 감상주의를 극복하고 생산적인 진심으로의 도약을 일군다. 

*제 68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 
*5월27일 개봉, 118분, 하드보일드 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