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탄핵소추의결이 졸속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가 적법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적법절차의 원칙은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되지 않으며, 별도조사와 법사위 회부여부는 국회자율권에 근거해 볼 때 선택적이므로, 탄핵소추절차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헌재의 판단은 적법절차를 수호해야 하는 守門將인 헌재가 여론에 떠밀려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즉 헌재가 결정요지에서 지적한 △적법절차의 원칙이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되는지 여부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별도 조사해야할지 여부 △탄핵소추의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할지 여부와 관련하여, 적법절차원칙은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되어야 하며, 조사가 없는 경우 법사위 회부없이 이루어진 소추결의는 위법이라는 판단이 옳다는 겁니다.
◆ 탄핵소추결의의 위법성과 관련한 헌재 결정요지
탄핵소추결의와 관련한 헌재의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번호는 결정요지 번호)
3. 국가기관이 국민에 대하여 공권력을 행사할 때 준수하여야 하는 적법절차의 원칙은 국가기관에 대한 헌법수호기능을 하는 국회의 탄핵소추절차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4. 국회가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았다거나 국정조사결과나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 하여 그 의결이 헌법이안 법률에 위반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5.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때에 이 의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할 것인지 여부는 국회가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다.
◆ 탄핵소추 절차에 적법절차의 원칙의 적용여부
탄핵소추 절차에 적법절차의 원칙이 적용되는지 여부가 과거 탄핵심판에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과거 박근혜 피소추인의 변호인단은 적법절차의 원칙이 탄핵소추절차애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헌재는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원칙이란,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자 할 때, 국가의 작용은 정당한 법률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이 원칙은 입법· 행정· 사법등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으로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속합니다.
예컨대 형사법상의 대표적 적법절차원칙이 미란다원칙입니다. 주지하듯이 미란다 원칙이란 범죄혐의자를 체포할 때에는 반드시 그에게 체포의 이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 및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원칙을 말합니다.
또한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에게 불이익한 처분을 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애 불이익을 당할 당사자에게 진술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도 적법절차원칙의 한 예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노무현 및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적법절차 원칙이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적법절차원칙은 국가기관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준수하여야 할 원칙일 뿐, 私人이 아닌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탄핵심판절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판시들은 잘못된 견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즉 헌법재판소법은 헌법재판소의 모든 심판절차에 관하여 헌재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탄핵심판의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이 준용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헌재법40조), 탄핵소추절차에 적법절차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적법절차원칙은 탄핵소추안의 발의에서부터 소추안의 의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에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는 강행규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적법절차원칙이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된다면, 국회가 조사없이 그리고 피소추인에게 반론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무효가 됩니다.
한편, 적법절차원칙이 탄핵소추절차에 적용되지 않아도, 이는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탄핵소추에 이어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변론과장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심판절차에서 충분히 방어 기회가 보장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탄핵은 3심제와 달리 헌재의 單審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탄핵소추는 소추대상자에겐 소홀히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실심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탄핵소추의 의결은 소추대상자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기본권을 제약하는 국가작용이므로, 공정하고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습니다.
따라서 탄핵심판절차와는 별개로 탄핵소추절차에서도 적법절차원칙이 충분히 적용되어야 합니다. 적법절차 원칙이 탄핵소추과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헌재의 판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헌법학자들 사이에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 별도의 조사 없이 또는 특검의 수사결과 없이 이루어진 탄핵소추안 의결에 대한 적법성 여부
헌재는 박근혜 탄핵심판에서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고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 하여 그 의결이 헌법에 위반 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권력분립의 원칙상 국회의 자율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하였습니다.
국회 자율권의 법적 근거는 국회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의사와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수 있다는 헌법 제64조 제1항입니다.
여기서 자율권이란 국회가 그 밖의 다른 국가기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의사와 내부사항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합니다.
위 조항에 따르면, 자율권이란 ①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 ②의사와 내부규율에 관한 것에 한정되어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①의 규정에 근거해 볼 때, 자율권의 범위를 넘어서서 법률에 저촉되는 국회의 소추의결은 존중될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과 국회의장간의 권한쟁의 심판 청구사건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습니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 입법기관으로서 폭 넓은 자율권을 가지고 있고, 그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이나 국회의 지위, 기능에 비추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한편 법치주의의 원리상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기속을 받는 것이므로 국회의 자율권도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국회의 의사절차나 입법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의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흠이 있는 경우에도 국회가 자율권을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 헌법 제64조도 국회의 자율권에 관하여 국회는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의사와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선고 96 헌라2 결정)
이에 비추어 볼 때, 국회가 조사없이 소추안을 의결한 것은 자율권을 넘어서는 법률위반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의 분석처럼 적법절차 원칙은 탄핵소추 전과정에서 강행규정으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②의 규정에서, 국회의 자율권 행사는 議事와 내부규율에 관한 사항과 연관됩니다. 따라서 탄핵소추사유에 대하여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의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의사와 내부규율에 속한 사항으로 보기 힘들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결국 헌재가 국회의 자율권에 근거하여 국회가 조사없이 소추의결을 할 수 있다는 견해는 명백한 해석오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 탄핵소추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야 할지 여부
국회법 제130조 제1항에 후단에 의하면,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때에 국회 본회의는 결의로 이를 법사위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헌재는 본회의가 법사위 회부없이 바로 의결할 수 있다는 견해를 표하였습니다. 국회가 자율로 이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리해석으로 보면, 이 조항은 본회의가 임의로 회부할 수도 있고 회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정의 취지는 이러한 의미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소추안 발의 당시 조사여부등과 관련하여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이미 소추사유에 대한 조사와 기회부여가 되었을 경우(예컨대 특별검사의 조사를 통한 조사와 기회부여)와 아직 그렇게 되어 있지 아니하였을 경우가 있는 겁니다.
이에 따라 이 규정은 본회의가 위 두 가지 경우 중 어느 경우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라면, 본회의가 법사위에 회부하기로 의결하지 않아도 되고, 후자의 경우에는 법사위에 회부하기로 의결하라는 것이 이 조항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회의가 탄핵절차의 신속성을 위해 특검등에 의한 조사와 기회부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조항은 법사위나 특별조사위원회에 회부하여 조사와 기회부여를 한 뒤에 소추의결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코 본회의가 어느 경우든 회부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헌재는 본회의가 법사위에 회부하지 않고 바로 의결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헌재는 본회의의 회부여부는 전적으로 국회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조사와 반론기회부여없이 국회가 이 소추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여 표결처리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러한 헌재의 판단은 국회법 130조 제1항 후단의 오독이며, 국회에 부여한 자율권의 범위를 잘못 이해한데서 기인한다는 지적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변경될 수 있는 대통령의 탄핵에서, 조사와 반론기회부여도 없이 소추의결할 수 있다는 헌재의 판단은 불공정한 판단이며 한마디로 넌센스입니다.
◆국가의 사법질서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정치지진”(political earthquake)으로 비유됩니다.
이처럼 파급효과가 지진의 파장처럼 정치· 경제· 문화 전 범위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탄핵의 경우, 한층 엄격한 조사가 탄핵소추의결에 앞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탄핵소추를 의결하기 위해 적법절차가 탄핵소추과정에 적용되어야 하고 신빙성있는 조사가 이루어져 합니다. 만약 국회차원의 조사가 없을 경우 법사위가 탄핵소추의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런 점에서, 졸속 탄핵소추절차가 이루어진 소추의결을 합법이라고 판단한 과거 헌재의 태도는 헌법질서를 수호하여야 할 최종적 사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제 과거의 모습에서 탈각하여 미래 한층 발전하는 헌법재판소를 위해, 헌재는 국회의 자율권을 근거로 탄핵소추의 발의 및 의결절차의 적법성을 추정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최소한의 조사절차도 이행하지 않은 경우 탄핵소추의 의결에 절차적 하자가 있음을 이유로 탄핵심판청구를 각하하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대상자의 인권과 기본권을 보장하며 국가의 사법질서와 헌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이러한 전향적인 헌재의 판단이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에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교창,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