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체제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헌법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국가이념이 자유민주주의 내지 이의 핵심요소인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시공간의 상황에 적합하게 수정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이념이든, 그 이념의 구체적 내용들은 과거 주어진 대로 화석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 시대 문제에 조응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요소들이 다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은 곧 헌법의 지향이념
과거 역사교과서의 논쟁에서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을 규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배가치가 자유민주주의인가 혹은 민주주의인가라는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지금도 그 논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은 듯합니다.
우파진영은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을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좌파진영은 민주주의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실마리는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국가이념에 대한 판시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헌법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한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최고의 도덕원리입니다. 헌법의 이러한 기본원리는 입법, 법률해석, 그리고 정책수립등을 위한 최고의 판단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은 헌법의 지향이념으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결국 헌법의 지향이념에 근거한 헌법재판소의 국가 지배이념에 대한 說示는 대한민국의 지향이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헌재는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규정을 들어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헌법의 지향이념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즉 국가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자유주의와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귀속되고 국민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내용적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결합된 개념인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질서의 기본가치로 파악하고, 이러한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가치를 ‘기본질서’로 선언한 것입니다. (헌재 1990.4.2. 89헌가113, 헌재2001.9.27. 2000헌마238)
이처럼 헌재는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지향이념으로 규정하고, 이를 창의와 다양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국민주권주의에 근거한 민주주의의 결합물로 설명하였습니다.
덧붙여 헌재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헌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가치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무관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적 가치로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기본 질서’는 기본원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들을 가리키는데, 이에 근거한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핵심요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기본원칙과 가치가 보장되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은 유지될 수 없게 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라는 헌재의 설명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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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오해
대한민국의 정체는 자유민주주의이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주의의 기본적 핵심요소가 됩니다.
여기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와 국민주권이론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의의 물리적 결합물을 의미합니다.
그러함에도 대한민국의 정체를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로 변경하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 유신헌법과 신자유주의의 영향 탓으로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적 것임을 명시한 최초의 헌법은 제7차 헌법개정인 ‘유신헌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신헌법에 도입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는 그 본질적 의미 대신, 정권의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작용하였다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는 문장에서, 그 강조점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라기보다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이었습니다. 때문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의미는 수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당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이념이라기보다, 오히려 반자유적인 가치로 평가되었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이 오독된 또 다른 계기는 좌파진영이 자유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등치시킨 것입니다. 즉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이념인데도, 사회구성원들간의 조화대신 경제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아류로 간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친재벌, 반 복지, 정의의 부재등의 특성을 지닌 경제적 이념으로 오인되게 됩니다.
좌파진영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정체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며, 전문과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자유민주주의 구성요소
이념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닙니다. 시공간의 조건과의 상호작용에서 수정 변화 보완되는 것이지, 초역사적인 실체로서 그저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문지영)
따라서 국가의 기본이념도 사회의 현실상황을 반영한 이념으로 적절히 수정 보완되어야 합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구성에도 시대 상황에 조응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은 안개로 자욱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은 신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제 측면에서 잠재성장률하락으로 인한 저성장, 사회정책 측면에서 인간존엄의 상실, 정치적 측면에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와 포퓰리즘등이 한국의 항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인 자유민주주의도 시대상황을 반영한 요소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됩니다.
자유민주주의에 담아야 할 이러한 요소들로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민주적 기본질서 △적극적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국가원리등이 꼽힙니다.
① 자유와 창의
현재 저 출산 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하락은 생산함수의 구성요소인 총요소생산성의 제고에 의해 대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총요소생산성 제고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고 발전시킬 때, 그리고 이를 계발하는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자유 대신 집단적이고 획일적인 사고, 하향평준을 지향하는 교육제도, 능력 대신 기득권에 의한 자원 배분, 도덕적 해이를 가능하게 하는 독과점제도등, 과거 우리 사회에 익숙했던 전통적 제도들은 창의를 억누르는 주범이 되어 총요소생산성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정책이 우리나라의 경제침체를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유일한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에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가 강화되어야 하며, 아울러 관련 정책이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②전체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적 기본질서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중 ‘민주적 기본질서’를 강화할 때 완화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전체주의적 권력체제에 대한 모든 대항의 총체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한국 헌법에서 의미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정치적 다원성 속에서, 다수의 존중과 소수의 배려를 강조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행위자들이 이러한 민주적 기본질서를 준수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일탈적 의견들이 오류로 취급되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와 맞설 수 있습니다.
정치적 다원성이 강화되는 민주주의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들로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③사회국가 원리: 적극적 자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간존엄의 상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때, 또한 행복과 자기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 삶의 보장과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곧 적극적 자유를 강화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자유는 간섭의 배제등을 강조하는 소극적 자유가 일반적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자유란 인간 실존의 조건을 보장하는 토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곤궁등으로 생활의 근거가 유지되지 못한다면, 이는 인간은 자유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본질적 자유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을 갖출 때 누릴 수 있는 가치입니다.
이와 같은 인간 존엄의 회복과 적극적 자유의 강화는 헌법의 사회국가원리의 추구를 통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사회국가원리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전문)
“국민의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제23조 2항),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면서(제119조1항),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여,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제119조2항)
이처럼 사회국가원리는 자유권과 생명권, 자유와 기회의 평등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의 사회국가원리가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 약자가 사회적 강자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사회국가원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요소이며 본질적 조건이 됩니다.
◆가치구속적 질서를 공고히 하며
한국의 지배이념이며 헌법의 지향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가치구속적 개념입니다.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가 가치 중립적 입장을 취하게 되면, 국가는 시대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됩니다.
그 역사적 실례가 바이마르공화국의 붕괴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가치중립적 입장의 견지로 인해,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의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처럼 어정쩡한 가치중립적인 개념을 지닌 체제는 국가가 다양한 위기에 유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때문에 자유민주적 기본가치는 진영 이념의 볼모가 되선 안 되며 현재와 미래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가치구속적 개념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결국 개인의 인격과 개성이 존중되는 자유,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국가 원리, 그리고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주의에 담고, 국가가 이와 관련된 정책을 마련하고 강력하게 추진해 나아갈 때, 한국은 시대의 밤바다의 항해를 가로막고 있는 안개를 능히 헤쳐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선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통일”
문지영,“‘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한국의 헌법 이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