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에게 그의 (정당한) 몫을’
우리는 이 正義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체계로 이해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존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형식이 ‘빈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곧 이르게 됩니다.
형식을 채우는 내용은 우리의 열정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믿어왔습니다. 때문에 고된 노력, 뜨거운 갈망으로 각자의 몫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라는 과녁에의 명중 여부는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인 활과 화살의 우수함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곧 이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불공정한 조건에 대해 ‘정의가 있는가?’라고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곧 거두고 운명에 순응합니다. 자연의 우연한 작용이라는 運의 위력에 의해, 열정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얻어 질 수 없다는 체념에 젖게 되는 겁니다.
왜냐면, 운은 나의 의지와 분리된 힘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건에 대한 의문과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
그간 2개월여 간, 우리는 출생의 조건이 낳는 왜곡된 사회 구조를 씁쓸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운이 정당한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컨대 어떤 농부가 정성껏 농사를 지었는데 예측하지 못한 태풍과 홍수로 농사를 망쳤다면 그 실패를 그에게 돌리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요인에 의해 경쟁의 성패가 결정되는 사회임을 자각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품게 합니다.
◆공정한 사회란? (차진아)
공정한 사회의 원리는 모든 시민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정당한 몫을 보장받는데 있습니다.
정당한 몫에 대한 요구는 각자에게 주어진 조건들 자체가 공정한가에 대한 회의로부터 시작됩니다.
출생등으로 인한 불합리한 조건에서 경쟁은 형식적 경쟁에 지나지 않아, 모든 몫은 조건이 우월한 강자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때문에 공정한 사회의 근간은 왜곡된 조건을 수정 보완하여 경쟁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회의 실질적 균등을 말합니다.
즉 경쟁의 출발선에서 있어, 어느 누구도 불공정한 우위를 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100미터 경주에서 한 선수는 고급운동화를 신고 있고, 또 다른 선수가 맨발이라면, 이러한 경쟁은 불공정하다는 겁니다.
결국 ‘돈은 실력’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개인에게 주어진 불가항력적인 조건이 경쟁의 결과를 좌우하지 않도록, 시민은 불공정한 경쟁의 조건이 재분배를 통해 수정되도록 국가에 요구합니다. (결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대학이 학생 선발에서 적극적 약자보호정책을 도입하는 정책과 관련됩니다.)
◆능력주의 사회(meritocracy)
혹자는 주어진 조건의 부당함을 인정할지라도, 개인이 자초한 실패의 비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도 불공정하다고 지적합니다.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운의 부당함을 논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또한 개인의 성취에 운과 개인의 노력이 혼재되어 있는데, 성취의 요인을 전적으로 맹목적 운(blind luck)으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경쟁의 과정에 개입하는 환경의 정도를 무시하고 그 결과로 성과를 판단하는 능력주의 사회(meritocracy)가 공정한 사회라고 주장합니다. (대학의 학생선발은 시험 점수로만 결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 예입니다.)
◆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그러기에, 성취의 일부는 개인의 공로에 의해, 또 다른 일부는 운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 기초하여, 새로운 공정의 개념과 재분배 기준이 다시 정립됩니다.
우선 시민은 인권의 명제들인 ‘자유’, ‘평등’ 그리고 그간 무시되어왔던 ‘박애’(brotherhood)를 소환하면서, 조정자인 국가가 출발선을 동일하게 하는 실질적 기회 균등에 깊이 관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하버드대의 철학자인 롤즈(J.Rawls)의 논리를 일부 인용하여, 첫째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둘째로 출생의 불운 때문에 고통 받는 약자들에게 의료, 교육, 소득의 순으로 보상을 제공하며. 마지막으로 주어진 불운이 관찰되지 않을지라도 나쁜 결과물에 대한 보상을 일부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분배는 응능 부담에 근거한 정의로운 조세체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회 보험체계, 그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재교육체계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는 피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운의 횡포에 순응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운의 지배라는 체념에 벗어나는 길은 박애의 연대성입니다.
공정한 사회의 실현은 기회의 실질적 균등에 달려 있는데, 그 출발선을 실질적으로 일정하게 맞추는 힘은 연대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연대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슬기로운 조정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조정자인 국가가 현명한 재분배를 통해 기회의 실질적 균등을 이루어 낼 때, 우리의 정당한 몫은 확보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공정한 사회의 실현과 공정 사회의 목표인 인간의 존엄의 회복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차진아, “사회적 평등의 의미와 실현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