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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리뷰 : 고장난 문 vs 링컨의 펜팔 편지

폭풍 같은 눈보라가 산장의 문을 때리면, 문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벌렁 나자빠진다. 문은 어떤 곡절로 고장 났는지,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어쩔 수 없다. 거센 바람을 막으려면, 문에 송판 몇 개를 덧대어 문에 못질을 하는 수 밖에... 

마음의 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밖에서 쳐들어오는 눈보라를 막기 위해, 마음의 문에 못질을 한다. 

기대와 불신과의 간극이 커져가는 불확실성은 출입이란 관계의 단절을 끊고 마음의 문에 못질을 하게 한다.  



때는 미국의 남북전쟁 직후. 

그 시절, 각자의 욕망을 품은 8명은 눈보라 속 한 산장에 갇힌다. 

현상금 10,000불이 걸려 있는 여죄수(제니퍼 제인슨 리)를 레드락 타운으로 이송해가는 교수형 집행인(커트 러셀), 그와 설원에서 합류한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L. 잭슨)과 레드락 타운의 신임 보안관(월튼 고긴스). 이들 4인은  눈보라를 피해 산장에 머문다. 

그곳엔  또 다른  4명이 산장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남부군 장군(브루스 던), 레드락 타운의 교수형 집행자라 자신을 소개하는 리틀맨(팀 로스), 크리스마스를 엄마와 보내고자 한다는 카우보이(마이클 매드슨), 그리고 이방인(데미안 비쉬어)가 그들이다. 

이곳엔 여전히 남부와 북부, 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 대립이 펼쳐진다. 산장은 남부, 북부, 그리고 중립지대로 갈라진다. 

이들 8명은 서로를 믿을 수가 없다. 시민의 안전을 보호 해 줄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기댈 만 한 건 그래도 ‘망할 놈의 총, Son of gun’이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이곳에  갈등, 불신, 그리고 증오는 켜켜이 쌓여간다. 



영화<헤이트풀 8 (the Hateful Eight)>은 10번째 영화를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으로 알려진 쿠엔틴 타란티노감독의 8번째 영화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날씨에 악당과 영웅이 맞서는 전통 웨스턴의 변주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광활한 설원을 배경으로 산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스노우 웨스턴’을 펼친다. 

설원의 영상은 웅장하고 압도적이다. 이를 위해  2.75:1의 화면비율이 사용되어, 효과적인 관람을 위해 뒷 쪽 좌석이 선호 된다. 보통 35mm 포맷은 화면비율이 1.33:1이다. 감독은 <벤허>의 전투 신을 촬영한 울트라 파나비전 렌즈, 70mm필름을 사용하여 와이드 화면 비율을 구현하였다. 

영상에는 또한  화가의 고민이 배여 있다. 공간에 적절한 소품의 배치, 균형이 잘 짜인 인물의 배치등은 2차원의 공간에 안정된 질감을 제공한다. 이 영화의 미장센은  스토리가 배제되어도 영상만으로 시각적 미감을 체험하게 한다. 

특히 <헤이트풀 8>의 미덕인 기대와 불가측성의 융합은 관객을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의 연속으로 몰고 간다. 

감독은 내래이션을 통해 인물들이 모르고 있는 정보를 관객에게 흘린다. 관객은 기대를 통해 긴장감이 고양되면서 스토리 안으로 서서히 빨려든다. 

또한 관객이 전혀 예기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터지면서, 예측 불허의 불확실성이 펼쳐진다.  서서히 스토리의 주도권은 관객 아닌 감독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스펜스에는 <미션> <시네마 천국>등의 OST를 만든 엔니오 모리꼬네의 힘이 크다. 






눈보라 속 산장은 세상의 소우주이다. 하고자 하는 욕망이 노출되고 이 욕망을 저지하려는 또 다른 욕망이 부딪힌다. 

각자는 자신을 방해하는 적대적인 힘에 맞서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간다. 

이 와중에 상대의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기 힘들다. 협력, 의사소통 대신 마음의 문에 대못을 박고 관계는 단절된다. 

하지만 눈보라 속에 결국 길을 잃고 마는 것일까? 감독은 신뢰가  모퉁이로 밀려난 현실을 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욕망의 대립과 증오로 얼룩진 세상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은  단절된 관계에 대한 복구일지 모른다. 링컨대통령이 ‘현상금 사냥꾼’에게 보낸 펜팔 편지(그것이 링컨의 친필 편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에 담긴 애정처럼, 문밖 눈보라 속을 헤쳐가게 하는 온기는 벗에 대한 신뢰와 애정임은 분명하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의 눈 덮인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은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절박함을 암시한다. 

(2016. 1월7일 개봉, 167분, 스노우 웨스턴 서스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