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나라縣 고조市에 여행 온 한국인 혜정은 그곳 농촌 청년 유스케를 우연히 만나, 이 마을의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어느새 둘 사이에 로맨틱한 애틋함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이처럼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꿔 본 수채화 같은 남녀간의 설레임을 이야기 한다. 남녀의 질펀한 애증의 연애담 대신 풋풋한 그리움이 살며시 피어오른다.
소꿉놀이 같은 사랑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고백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가슴만 앓았던 사랑의 환상을 떠올린다.
클래식 푸조에 올라탄 후 도착해 보니 1920년대 파리이며, 이곳에서 동경하던 헤밍웨이· 피카소와 꿈같은 하루 밤을 보낸다는 판타지처럼,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꿈과 환상을 실현시키는 목마름에 대한 샘물이 된다.
현실에서 꿈꿔오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 그래서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곳. 여기는 현실과 다른 곳인 판타지의 세계이다. 이 가상세계에서 얻는 잠시의 위로는 진정한 환상과 휴식처를 발견하기 위한 지름길이 될지 모른다.
◆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잇는 판타지
만약 누군가가 한 마을을 홍보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라며, 투자금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감독은 고민이 깊어진다.
현장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어야하는 사명과 감독의 의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동시에 병존하게 된다. 어떻게 사명과 욕심을 함께 실현 시킬 수 있는가?
루이스 자네티는 영화의 스타일은 사실주의라는 극단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형식주의(표현주의)라는 극단에 이른다고 말한다. 혹은 다큐멘타리, 극영화, 작가주의 아방가르드 영화 순으로 영화 스타일의 스펙트럼을 나누기도 한다.
나라 국제영화제의 투자 지원으로 나라縣 고조市의 영상물 제작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장건재 감독은 스타일의 유연한 변주를 통해 영화의 목표와 자신의 욕심을 실현시킨다.
우선 감독은 소박하고 자연스러움이 강조되는 사실주의로 고조시를 묘사한다. 그는 현실을 모방하는 극단을 회피하고, 배경을 토대로 하여 상부에 스토리를 올린 페이크 다큐라는 지점에 안착한다. 무생물의 고조시는 사람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꿈틀거리는 생명으로 변모한다.
또한 다큐스타일의 대칭점에 극영화를 배치하여 감독의 표현의 욕구를 실현시킨다.
문제는 현실의 재현과 작가의 표현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이다. 이 고민은 또 다른 스타일의 도입을 통해 실현된다.
감독은 이 양극단을 잇는 연결핀으로 판타지를 동원한다. 전반부의 페이크다큐의 등장인물인 노인 겐지의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판타지로 동원하여, 이 판타지가 현실의 모방과 작가의 의지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동시에 이 첫 사랑의 판타지는 후반부 작가주의 작품의 재료가 된다. 감독은 사랑이야기를 통해 삶의 무게에 지친 관객들에게 일상의 현실에서 벗어나 신선한 환상의 세계를 체험해 보도록 이끈다.
이처럼 단순히 고조시의 기록물이라는 사실주의가 판타지의 연결핀을 통해 감독의 표현주의와 접목되어, 새로운 복합장르가 탄생된다.
현실의 재현에 대한 감독의 저항정신과 작품에 대한 작가적 갈망, 그리고 관객의 지친 일상에 위로를 안겨주겠다는 열망이 결합되어,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를 넘나드는 유려한 장르의 변주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다큐적 정서인 진실과 작가적 갈망인 감성이 함께 숨 쉬는 안정된 균형점에 슬기롭게 안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