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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조류 인간>리뷰 : 너는 누구지? :가끔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한비는 남 보기에  부족한 것 없는 가정의 주부이다. 남편 정석은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예와 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석은 가정을 소홀히 하는 무심한 가장이다. 자신의 아기가 있는 집에서 담배를 태연히 피우고, ‘난 집에서 잠 못 자’라며 늘 밖을 떠돈다.  

소연은 조부와 부모가 빌딩 몇 채를 소유하고 있는 유복한 집안의 젊고 예쁜 아가씨이다. 하지만 소연에겐 그녀의 삶은 지옥이다. ‘나는 내 손 만 보면, 잘라버리고 싶어요.’라며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품고 있다.  

약간의 삐걱거림은 있어도  외부의 기준으로 보기에 행복한 조건을 보유하고 있는 이 두 사람은 집을 나와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선다. 그들은 독수리가 되고, 매가 되고 싶은 거다. 

정석은 남편인 자신과 아이를 버리고 집나간 아내 한비를 15년간 찾아 다닌다. 사랑해서 그리워서 찾아 나선 게 아니다. 자신도 왜 그녀를 찾는지도 모른다. 번듯한 가정을 버리고 조류가 되고자 나선 아내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비와 소연은 조류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한약방에서 정신검사를 받고, 다시 약초꾼을 만난 후, 자신들을 수술해 주는 이의 거처로 인도해주는  사냥꾼을 찾아 나선다.  


◆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 vs ‘너는 누구지?’
 
어릴 때 아이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 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아이들의 답도 되고 싶은 직업과 이루고자 하는 신분에 대한 것이다.  의사, 변호사, 예술가, 운동선수, 연예인등 화려한 직업과 관련한 답이 일반적이다. 

반면 ‘너는 누구지’라는 질문은 거의 없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원초적 질문과, 어떻게 자신이 세상에 보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대다수인 것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서는 더더욱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은 힘들다.  이러한 철학적 질문은 사치스러운 것이며, 따라서 금기어에 가깝다.  열심히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답변은 라캉의 거울단계이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유아는 파편화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불안정한 존재(이마고 imago)이다. 그런데 이 유아는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에서,  통일되고 완전한 이미지를 발견한다. 

애초에 유아는  그 이미지를 자신과 다른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거울 뒤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 호기심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새 유아는 그 거울의 이미자가 자신임을 확인하고, 탄성을 저지른다. 자신이 움직이면 그 이미지도 움직이고,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그 이미지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아에게 그 이미지는 완전한 이미지, 그의 이상화된 완성체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각난 이마고와  조화되고 통일된 이미지와의 괴리가 발생하고, 이러한 소외로 인해 유아는  완전하고 이상화된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을 품게 된다. 

유아는 이러한 거울 이미지에 대한 나르시시즘 속에서 이상적인 이미지에 대한 갈망을 가지는 것이다.  늘 돌봄을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모습인 현실의 나와 이상적인 나와의 괴리에 끝없는 방황과 혼돈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비와 소연도 주변의 눈에는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인생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현재의 삶은  지옥 같다. 그들은 지금의 삶을 유아의 이마고의 불안정하고 분열되고 조각난 삶으로 인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상화되고 통일된 삶인 거울 속의 이미지를 찾아 나선다. 안정된 삶에서 탈출하여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의 답은 라캉의 거울단계의 통일되고 이상화된 삶과 다름이 아니다. 


◆ 자신에 대한 사랑은 내가 누구냐는 물음으로부터 비롯 

한비와 소연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순결한 용기는 정석의 기준에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좀 집에서 담배를 피운 걸 가지고, 내가 외박을 한 걸 가지고, 아내가 가출을 하다니.. 먹고 사는데 문제 없고 나처럼 잘난 남편이 있는데 그런 황당한 일을 저지르다니..’라며 정석은 생각 했을지 모른다. 

대개가  현실의 팍팍함과 고통에 짓눌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포기하고, 현실의 경기장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게 된다. 

하지만 한비와 소연은 아니었다. 파편화된 현실의  삶을 거부하고,  거울단계의 이미지를 찾아 나선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부패하고, 적당히 불안정한 인생을 즐기는 소시민의 삶을 지옥 같은 고통으로 거부하고, 유아가 갈망한 완성체의 삶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추적과 답이 내려질 때, 진정으로 자신에 대한 신뢰와  무한한 사랑이 나타난다. 자신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학대 대신 자신의 소중함을 자각한다. 


◆ 가끔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이 영화는 순수한 자아에 대한 갈망을 말하는 우화이다. 현재의 삶은 이러한 나르시시즘에 대한 동경을 방해하고 있다.  한비와 소연의 우화에서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다급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가 찾지 않는 그 길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한비는 아기를 키우며 여느 아낙처럼 살아갈 것이고, 소연은 외국계 기업에서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히 살아 갈 것이다. 비록 그 삶이 자신들이 바라던 삶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영원히 나르시시즘을 동경하면서 조각나고 상처난 자신의 삶을 품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허랑방탕한 삶에 대한 거부와 위험을 회피하는 안전한 삶, 이러한 소시민적 삶에 대한 안주 속에서 그저 그 괴리는 환상에 불과하다. 

혹자들은 말한다. I와 Me를 구분해야한다고 말이다. I는 자신이 원래 보유한 성향이다. 날고자 하는 매의 꿈이다. Me는 외부에 의해 형성된 현실의 삶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이상화된 자신의 정체성인 I 대신 현재의 삶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있다. 

지옥 같은 갈망 속에서 우리는 참된  이상을 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사상된 상태에서  삶의 집을 짓는 것은 사상누각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부단한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라는 주춧돌 위에  구체적 삶이라는 건축물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먹고 사는라 바쁜데 무슨 이런 웃기는 질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의 좌절과 실패가 다가왔을 때, 이러한 자신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견고히 지니고 있다면  흔들림 없이 다시 솟아날 수 있는 것이다. 

땅의 밭을 어떻게 경작할 것인가에 매달려 바닥만을 쳐다보기보다. 가끔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며  완성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삶의 기초요 힘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