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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민 경제학 ②] 이스털린의 역설 :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행복도 높아지는 걸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행복도 높아지는 걸까? 국민소득이 증가한 현재시점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까? 

과거에는 마음을 손 글씨로 편지지에 적어, 우표를 붙여 전했다. 편지가 상대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며칠씩이나 걸렸다. 지금은  핸드폰 문자나, 이메일로 실시간으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전달된다.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과거의 편지는 답답하고 객관적으로 효율면에서도 뒤쳐지는 방법이었다.  

이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미국의 경제학자 Richard Easterin은 소득과 행복에 대한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그는 19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주관적 행복에 대한 설문조사(1946~1970년)를 실시하였다. 

이스털린은 소득의 증대가 행복의 증대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실증으로 분석하였다. 그의 서베이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더 행복하였다. 하지만 국가 간 비교에서는 방글라데시 국민이 미국국민보다 더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또 소득이 일정수준을 넘게 되면, 소득이 증가한다고 행복이 확대되지 않았다.  

이처럼 이스털린은 사람들은 소득을 증가시켜 행복을 높이려고 하지만, 일정 소득수준이 지나면  소득이 높아진다 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을 주장하였다. 

이스털린의 역설(Esterlin Paradox)은 다음과 같다.  

①한나라의 일정시점에서 보면, 소득이 높으면 행복도 높아지는데, 고소득층이 하위소득층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 
②나라간의 비교에서, 못사는 나라의 국민이 잘사는 나라의 국민보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③하지만 한 나라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득과 행복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할 경우, 소득이 늘면 행복도 증가하나, 소득이 일정수준 이상을 넘게 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의 증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 이스털린 역설의 설명 

이러한 이스털린 역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쳇바퀴 효과이다. 

과거 핸드폰이 도입되었을 때, 이는 새롭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걸어 다니며 핸드폰을 통해 상대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신기했던 핸드폰이 일상의 부분으로 편입되자, 그 신기함은 사라진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자신의  핸드폰이 왠지 초라해지며, MP3핸드폰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게 된다. 그래서 소득은 이전과 일정해도, 기대수준이 높아지게 되어 과거의 핸드폰에 대한 높은 효용은 감소하게 된다. 

전자를 쾌락의 쳇바퀴, 후자를 열망의 쳇바퀴라고 한다. 아무리 쳇바퀴 위에서 달려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사람들의 효용은 이처럼 증가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게 되는 것이다. 

특히 열망의 쳇바퀴는 사회적 관계와 결부된다.  만족은 개인의 성향을 통해서 결정되기보다,  소속 집단 사람들과의 비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소비는 과거의 소득과 준거집단의 소비에 의해 결정된다는 상대소득가설과 같은 논리이다. 

열망의 쳇바퀴는  또한 지위의 효과로도 설명된다.  사회적 관계는 질투심과 경쟁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소득이 증가해도 소속 집단의 동료가 더 높은 소득을 얻게 되면 자신의 소득증가에 대한 만족도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효용이 다른 것과의 상대적 비교에 의존하는 재화인 지위재는  지위 경쟁을 촉발시키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기대는 높아지게 되어 효용은 감소하게 된다. 사치품이나 명품에 대한 소비증가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나게 된다.

쳇바퀴이론을  이스털린 역설에 적용해보자. 소득이 증가하면 주관적 효용은 증가한다. 하지만 소득이 증가해도 기대감이 함께 증가한다면 효용은 증가하지 않는다.  소득증가로 인한 효용증가가 기대감 상승으로 인한 효용의 감소로 인해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관적 효용은 평탄해진다. 


△ 이스털린의 역설과 관계재 

이스털린 역설은 관계재의 개념으로도 설명되어진다. 

일에 늘 매달리는  직장인들은 가족을 돌 볼 겨를이 없다. 일요일에 가족들과의 나들이보다 그저 잠자고 싶을 뿐이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시간도 없다. 이렇게 일에 열중하게 되면 관계는 소원해진다. 

이처럼 관계재의 획득은 일반상품의 효용을 포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하게 되면  소득을 얻게 된다. 하지만  노동을 통한 소득은  여가의 기회 비용이 된다. 여기서 여가는 가족간의 관계, 우정, 사랑등의 관계재의 효용을 말한다.  노동의 증가는 관계를 구축(crowding out),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효용이 소득수준이 높은 현대인보다 적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록 옛날 사람들의 생산력은 현대인보다  높지 않지만, 가족과 이웃간의 유대등의 관계재의 생산은 현대인보다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의 증가는 주관적 효용을 높이지만, 관계재의 소비의 포기로 인한 효용의 감소로 결국 만족은 일정해진다는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 이스털린의 역설과 정책적 함의 

이스털린의 역설이 의미하는 정책적 함의는 무엇인가?

김균 고려대 교수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통해 관련 정책을 도출한다. 

우선 지위재의 하나인 사치재에 대한 고율 소비세의 적용이다. 고가품의 사치재 수요는 지위경쟁이므로 사치품의 가격과 수요는 수요법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사치품의 가격을 올려도 수요량이 감소하지 않거나 비탄력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오히려 명품의 경우, 가격을 올리니 수요량이 늘었다는 자기과시욕의 베블렌효과가 나타나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김교수는 사치품에 고율소비세를 부과하게 되면, 사치재에 대한 수요 감소는 크지 않게 될 것이며, 이 조세수입으로 저소득층 복지에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털린 역설은 관계재의 관점에서도 정책적 함의를 도출 할 수 있다. 김교수는 노동시장은 관계재의 생산 소비를 구축하게 된다는 면에서,  과도한 노동시간의 축소와 관계재 소비 시간의 증대로 효용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친구와의 교류,가족과의 관계성을 높이기 위한 관계재 소비의 증대는 일자리 나눔의 정책과 연결된다. 정규직 시간제 직원의 채용 정책은 효용증대 뿐만 아니라 실업 문제의 해결에도 일조하게 된다. 

또한 이스털린의 역설은  고소득층의 소득세 과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역설에 따르면 고소득층은 일정 소득수준을 넘게 되면 효용은 일정해진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효용 평탄점인 임계점의 한도 내에서, 고율의 소득세를 부과해도 효용은 크게  감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거두게 된 국세 수입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증가에 활용하게 된다면, 저소득층은  소득의 증가로 효용은 증가하게 된다. 물론 이 임계점이 어느 수준인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적용에도 응용될 수 있다. 이스털린 역설에 의하면, 고소득층에 추가소득이 제공되어도 이들의 만족도는 높아지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지는 복지비용을  저소득층의 추가 복지에 전용하게 된다면 사회 전체의 후생은 증가하게 된다. 

물론 학교급식, 방과후 활동 비용등에는 보편적 복지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낙인효과가 어린 학생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인효과가 적은 복지항목은 선별적 복지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등은 선별적 복지로 전환되어야 할 항목으로 꼽히고 있다. 요금현실화율이 낮은 상황에서 지하철의  막대한 적자는 지방재정의 부담과 중앙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지방공기업 재무건전성 )

이스털린의 역설은 경제성장 일변도의 우리경제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김교수는 “물질적 성장이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게 아니라면, 성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거나 환경, 사회적 가치등을 희생하면서까지 최우선적으로 성장만을 추구하는 정책기조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