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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시민경제학 ① ] 잘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 관계 속에 행복 추구 :

등가성과 관계성의 병존으로 후생 증대

“같이 들으실래요?”라며 이어폰 한쪽을 상대에게 건넨다. 두 사람은 이렇게  이어폰 한쪽 씩 귀에 꽂고 함께 음악을 듣는다. 

‘♬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잘 사는 것(living well)은 어떠한 삶을 말하는 걸까?  고대 철학자들은 행복을 가져오는 덕성(arte)으로 관계를 강조한다. 덕성, 즉  우정· 사랑· 시민적 헌신등의  관계가 인간의 번영(human flourishing)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혼자 듣는 모차르트보다 함께 듣는 모차르트가 낫고, 혼자 먹는 식사보다 그와 함께 먹는 식사가 한결 식욕을 돋운다는 것이다. 


◆ 관계재란?

이탈리아의 정치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는 이들 세 아르테(arte)를  관계재(relational goods)로 해석한다. 

관계재는  상호성, 동시성, 무상성을 특징으로 한다. 

우선 관계재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호성 안에서만 가능하다.  브루니는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이름에서 함께 나누는 활동과 소통의 형태들이 빠져버린다면, 거기에 가치 있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을 강조한다. 상대편은 본질적으로 관계 안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또한 상호성은 동시성을 이끈다. 공동으로 생산하고 동시에 공동소비하게 된다. 이처럼 혼자 재화를 소비하고 누리는 행위보다, 공동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행위 속에, 더 큰 행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동시성은 무임승차를 배제한다. 사랑과 우정은  일방에서 타방으로의  양도가 아닌, 서로 함께 관계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재는 적극적인 참여를 그 내재적인 특징으로 한다.

관계재는 또한 무상성이다. 공짜이다.  관계는 이유가 있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무상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돈이나 출세의 이유로 성립된다면, 이는 관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목표라는 것이다. 

결국 이 관계의 목표는 인간의 번창함,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이다. 관계는 상대를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이며, 동시에 역으로 그 상대가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부단한 욕구를 의미한다. 공동으로 서로를 양육시키는 헌신 속에 인간적 번창함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 시민 경제 

관계재는 상호성과 무상성을 특징으로 하나 상품교환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조우(encounter)라고 부른다. 

계약과 교환이 이루어지는 등가관계에 관계재가 부가될 수 있다. 예컨대 미용실의 헤어드레서와 손님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두 사람의 처음 관계는 단순한 등가관계이다. 손님은 돈을 지불하고 머리를 손질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헤어드레서와 손님과의 ‘조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손님은 그의 단골이 된다. 이제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교환관계에서 상호관계가 형성된다. 등가관계에 관계재가 덧붙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재는  판매자와 잠재적 구매자 사이에, 의사와 환자사이에, 동료 둘 사이에,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에서  생산되게 된다. 거래· 생산· 서비스 공급등의 생산물에 덧붙여, 관계적 성격을 지니는 생산물 즉 관계재가 형성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등가관계만 성립될 뿐, 상호성의 관계재가 존재하지 않는 다면, 이 관계는 단지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더 이상의 인간의 번창함, 에우다이모니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거래와 생산에 건조한 등가관계만 형성된다면 이는 단발성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간의 인간적인 교류가 없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믿음이 쌓이지 않게 된다면, 이는 단지 부와 서비스의  일회성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도 등가성과 관계성이 동시에 형성되는 정책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호성에 영향을 미치는 복지지출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관계재가 형성되는 결혼, 출산, 질 높은 육아, 그리고 입양등에 지출하는 복지는 물질적인 이전 뿐만 아니라 상호성의  관계재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무형의 관계가 단순한 국민소득 성장률을 뛰어넘는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결국  부의 창출이라는 시장적 기능과  상호성의 관계재가  동시에 이루어지게 된다면, 물질적 수준을 능가하는 사회후생이 증대하게 된다. 개인의 부와 관계재 생산이  동시에 확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품교환이라는 시장영역과 관계재라는 비시장영역이 동시에 병존하는 경제영역을 사회적 경제영역, 혹은 시민경제라 부른다. 

*참고자료 
김균, “이스털린 역설과 관계재”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