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은 22일 오는 3월부터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등을 매입하여 매월 60억 유로의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번 ECB 양적완화(QE)의 목표는 유로존의 경기회복과 물가상승률 2%수준으로의 회복에 있다. 유로지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1년 10월 이후 줄곧 하락하여, 지난해 12월 –0.2%를 기록하였다.
또한 기대물가도 목표치에 벗어나 있다. 중기 기대인플레이션을 나타내는 5y5y 선도금리 인플레이션은 0.3%를 보이고 있다. 향후 디플레이션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 양적완화 내용
이번 ECB 양적완화에서,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들과 ECB는 금년 3월부터 2016년 9월말까지 국채와 기관채등을 매입하여 최대 1조1,400억 유로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유로지역의 중앙은행들의 자산매입 비율은 각 중앙은행들의 ECB출자비율에 따른다. 현재 독일의 ECB납입자본금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는 독일(25.6%)이며, 프랑스(20.1%), 이탈리아(17.5%), 스페인(12.6%)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논란이 되었던 손실 공유는 총 매입한도의 20%로 정해졌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로지역 기관(European institution) 발행 채권(총매입한도의 12%)을 매입하여, 손실을 공유하게 된다. 나머지 8%는 ECB가 매입하여 손실을 부담한다. 손실공유에서 제외된 매입한도 80%는 각 중앙은행들이 개별적으로 책임지게 된다.
◆ 양적완화의 긍정 효과
ECB양적완화로 기대되는 효과는 우선 신용확대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포트폴리오 rebalancing 효과라고 설명한다.
양적완화로 유로존 각국 중앙은행들이 국채등을 매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채를 매도하는 유로지역 금융기관들은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 현금은 다시 가계와 기업대출을 늘리는데 사용될 수 있다.
게다가 증가한 자금은 채권 시장등의 자본시장에 투자될 수 있다. 그 결과 기업의 신용공급이 확대 될 수 있다. 실제로 유로존에선 유럽중앙은행 양적완화 결정으로 인해 독일 10년물 국채금리가 9bp 하락하였다.
만약 은행들의 신용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기업들은 이 자금으로 투자를 늘려 생산을 늘릴 수 있어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총수요가 증가하여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양적완화는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증가된 자금이 대출되어 부동산과 주식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다. 부의 효과가 작동되어, 자산가치 상승으로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 이 소비는 다시 소득을 늘려 총수요 증대로 물가를 끌어 올릴 수 있다.
여기에 환율경로도 생각할 수 있다. 증가한 유동성이 외국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면 유로화의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 양적완화를 발표한 22일 7.4%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의 평가절하는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고, 동시에 수입물가가 상승하게 된다.
◆ 양적완화의 부작용
이번 ECB 양적완화는 미국의 양적완화에 비해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자산가치 상승으로 버블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증가된 유동성이 부동산과 증권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돈의 힘으로 자산 가치를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이 가치 상승은 기업의 내재가치 상승과 무관하여, 경제에 충격이 가해지면 이 거품은 꺼지기 마련이다.
한국은행은 “자산가격 버블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은행대출이 크게 증가하여한다”면서 “ECB는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잠재 리스크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ECB의 양적완화로 인한 금리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독일과 프랑스등의 10년 만기 국채가 양적완화 기대로 이미 0%대에 진입하여 추가 하락폭이 제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통화량을 늘린다고 하여도 금리인하가 사실상 불가능하여, ‘금리인하→ 자본비용하락→ 투자증대’라는 신용경로는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신용증대도 기대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이러한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미국기업의 자금조달이 자본시장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유동성 공급에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유럽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할 때 자본시장보다 은행에 의존하는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 그러므로 시중 은행이 엄격한 대출조건으로 대출을 늘리지 않으면 유동성 공급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불투명한 경제 전망은 대출 수요를 억제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가 간 재정이전문제(fiscal trasfer)이다. 불량 채권국 위험이 우량국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이 취약한 회원국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이 채무비용을 부담해야한다. 이러한 발생가능성으로 독일은 이 양적완화를 반대해 왔다.
반대로 독일등 재정이 양호한 국가로의 재정이전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정취약국은 국채금리가 높아 금리차이의 이익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양적완화로 환율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 유로화의 평가절하로 인접 국가들은 환율방어를 위해 금리를 낮추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예금금리를 -0.2%에서 –0.35%로 인하했다. 스위스중앙은행은 이미 유로존 양적완화를 예상하여 고정환율제를 폐기하였다.
◆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
ECB의 양적완화로 일단 우리기업들의 수출 호조가 기대 될 수 있다. 유럽의 경기 둔화로 유럽의 수입수요가 그동안 위축되어 왔으나, 양적완화로 인한 경기회복은 우리 수출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오히려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유로존의 풍부해진 유동성이 한국자본시장으로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이는 유로화 대비 원화절상이 예상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국내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정부는 이 환율 방어를 위해 원화절상을 막으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유럽국가들처럼 한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될 수 있다. 금리인하가 이루어진다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더욱 악화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