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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커피이야기 ② ]이상의 다방 ' 제비'와 <오감도> 를 통해본 청와대 진돗개와 '각하'

“저... 시간 있으시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면서 조심스레 이런 말을 건네 본다. 

이처럼 커피는 음료의 기능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  상호 소통의 도구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커피라는 중매인을 통해  사이에 쳐진 마음의 커튼을 조금씩 열어 젖힌다. 


◆ 다방 ‘제비’와 관계의 모습

커피를 소비하는 공간은 커피하우스 혹은 카페이다. 이곳은  커피를 앞에 두고  생각들이 교류되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커피하우스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만든 공간이라고 말하여진다. 

조선이 개화하면서 감정의 교류와 정보의 교환의 장소로 다방이 등장한다.   전통 한옥이 양옥으로 바뀌면서   한옥의 사랑방이 사라진 결과이다. 

다방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사교의 장이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상징적인  다방은 시인 이상이 경영한 ‘제비’다방이다. 

그는 1933년에 다방 ‘제비’를 열고, 이어  ‘쯔루’(鶴) , ‘무기’(麥)를 열었다.

이상은 왜 다방에 집착했을까? 그는 무엇보다 관계의 본질을 깨닫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직접 설계한 다방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제비 다방은  건축을 전공한 이상이 직접 설계한 다방이었다. 이 다방은 닫힌 공간이 아니었다. 현재 거리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커피전문점의 외향과 비슷하였다고 한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은밀하고 으슥한 공간이 아니라 열려있는 공간이었다. 다방 안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동시에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다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상은 이처럼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였다.  사람과의  관계는  칸막이 쳐진 그들만의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확 트인 공간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상은 이처럼 터진 공간을 형성하고, 이 제비라는 소통의 공간을 통해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의  울분을 토하였다.  

그는 다방 ‘제비’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일제의 억압에서의 자유를 꿈꾸었다.  

이곳에서 그의 대표작인 날개의 무대를 만들었다.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저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는 그가 소망했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 오감도, 공포와 양가감정 

이상은  대표적인 모던보이였다. 여기서의 모던은 아방가르드의  모던이다. 이는 조선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 즉 군주와 농노의  봉건 관계에 대한 거부로서의 전위의 모던이었다. 또한 일본과 조선의 압박과 피압박의 관계에 대한 저항의 모던이었다. 전통의 군주와 봉건의 예속의 관계에서의 자유로운 꿈을 꾼 것이다. 

이상은 전위적인 이론을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여 「烏瞰圖」를 발표하였다. 

그의 시 ‘오감도’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상에 대한 험한 욕설과 비난이 빗발쳐 원래 계획했던 30회를 다 채우지 못하고 결국 제15호로 중단된다. 

그의 시는 아방가르드의 상징이었다. 문학평론가들은 그의 시는 당시에는 수용이 불가능한 앞선 시였다고 평가한다. 시에 숫자와 기호가 들어가고, 띄어쓰기도 없다. 틀어진 관계에 대한 저항은 휴식의 부재를 가져오고, 이는 쉼이 없는  띄어쓰기의 부재를  야기하였다고 한다. 

烏瞰圖(오감도)는 원래 鳥瞰圖(조감도)였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비스듬하게 내려다 본 것처럼 그린 그림인 조감도에서 따온 것이다.  ‘새’를 ‘까마귀’로 바꾸어 조감도란 신조어를 만든 것에 대해,  이어령 교수는 “까마귀와 같은 눈으로 인간들의 삶을 내려다본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암울하고 불길한 까마귀가 이미 부정적인 생의 조감을 예시하는 시적 분위기”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설명은 ‘오감도’ 시 제 1호에도 잘 표현되고 있다. 

「13인의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중략)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13인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위기에 당면한 인류 혹은 국민, 식민지 조국의 상징인 조선의 13도, 불길한 공포, 비정상적인 것, 실존적 불안, 13일의 금요일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수의 공포와 불안으로 요약되고 있다. 

여기에 13인은 아이의 낯설음의 ‘아해’와 결합한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에서  이 아해는 어떤 대상이 주는 무서움에서 도망가고 있다. 

그리고 “13인의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에서 13인의 아해들이  초조한 모습으로 질주하고 있다.  두려움에 떨며 달리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무섭다 중얼거리면서 도로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질주하는 행위는 그들이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를 잊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들의 질주는 공포로부터 도망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라고 이상은 말한다. 무서워하고 동시에 무서움을 주는 兩가치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 

이 구절은 공포가 극에 달할 경우 역으로 광기가 분출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이 무서워하는 아해는 무서운 아해로 전환된다. 결국 이는 동일 인물이다. 
이상은 사람은 양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무서운 진실을 말한 것이다. 


◆ 원칙과 신뢰

혼돈의 정국이다.  

대통령은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고 단언했다. 이 말을 듣는 이들은 문맥의 의미를 따지기보다 아마도 ‘개’라는 단어에 꽂혔을지 모른다.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다.  듣는 이들에게는 이 호칭의 사용은 존경의 표현이라기보다, 대상에 대한 공포의  발로로 느껴졌다. 여당 원내대표의 처신이 이 정도라면,  힘없는 민초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종로를 다닐 때는 숨 죽이고 피맛골로 다니는 수 밖에 없다. 

이상에게 커피하우스는  소통의 장소였다. 이상은  다방 ‘제비’에서 관계란 어떠해야하는지 정의 내린다. 또한 그의 시 ‘오감도’에서 민초의 내면을 절절히 그리고 있다.

이제 원칙으로 돌아야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아끼고 사랑한 것은 그녀의 ‘원칙과 신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지금도 이러한 결의에 찬 그녀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