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영화

[영화 리뷰 '프랭크'] 가면 벗은 천재의 모습은 황홀하다.



발음조차 힘든, 그래서 마치 대중들이 그들을 기억해 주기를 거부하는 듯한 록밴드 ‘soronprfbs’의 매니저 Don은 이 밴드의 키보드연주자가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고자하는 광경과 우연히 마주친 Jon에게 제안한다. “당신 C음(도),F음(파) 그리고 G음(솔) 연주할 수 있나요?”

히트곡을  작곡하여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꿈꾸는 Jon은 이 엉뚱하고 어설픈 제안을 뜻밖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그 이후 호숫가 외딴 집에서 11개월간 밴드의 새 앨범 녹음에 참여하게 된다.  게다가 빈곤에 허덕이는 이 밴드의 재정적 후원자로 나서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감미로운 음악들에 빚진 진부한 로맨틱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음악영화가 아니다. 

기괴하고 특이한  음악밴드의 좌충우돌 스토리로 보일 수도 있고, 평범하지만 음악을 통해 명성을 얻고자하는 평범한 한 인간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기발한 괴짜 천재의 세상과의 단절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 존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스토리를 끌고 가는 화자인, 음악에 비범하지 못한 Jon의 자아각성 성장스토리로 느낄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샤워를 할 때도 큰 수박크기의 호박모양 가면을  쓰고 있는  괴짜 천재 뮤지션  Frank로부터 그의 평범한 음악성에  재능을 덧입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음악성의 한계를 깨닫고, 잠재성을 키우는 노력 대신 프랭크의  천재성을 이용하여 그의 소망인 대중의 스타가 되고자 한다. 

그는 밴드의 녹음과정을 트윗에 올리며 밴드와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간다. 이의 결과로 밴드는 미국 오스틴에서 개최되는 음악페스티발인 ‘South by Southwest’에 초대받게 된다. 하지만 비록 세상이 자신들의 노래를 들어주지 않아도 자신의 작가적 음악을 추구하고자 하는 멤버들은 그의 이러한 돌출행동에 그를 멀리하고 떠난다.  프랭크도 존에서 도망친다.  

결국 이 영화는 존이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접고,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영화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인간의 성품에 대한 극명한 대립이 주목된다. 감독은 프랭크 VS 존, 천재 대 범인, 순수 대 스포트라이트, 인정받지 못하는 독창성 대 타협, 자신만의 음악 대 세상이 듣기 좋아하는 음악, 고결함 대 욕망, 그리고 자아 대 인정등의 이분법을  부각시키며,  세상과의 협상을 거부하는 진정성을 탐구한다. 

세상이 무어라 강요하고 비난할 지라도 자신의 순수하고 고결한 길을 찾아간다는 것, 아무도 자신의 일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걷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오솔길을 걸어가겠다는 것,  이러한 독불장군의 고집은 절룩대는 비참함에도 묵묵히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인사이드 르윈>을 떠올리게 한다. 


▶ 프랭크의 관점에서 

이야기의 주체를 프랭크로 돌린다면 이 영화의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서막은 존이 밴드에 고용되는 계기가 된 키보드연주자의 자살시도이다. 키보드 연주자는 왜 자살을 시도했을까? 그리고 돈은 왜 밴드의 녹음 작업 중에 프랭크의 가면을 쓰고 자살을 했을까?

이 영화에는 프랭크의 소울 메이트인 폭력적이며 전투적인 Clara가 등장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밴드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클라라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으나, 실제는 프랭크의 독특성과 연관되어있다. 

이 영화는 존의 자각보다 차라리 프랭크의 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수께끼 인물, 가면의 인물, 천재성, 광기, 완벽, 기발함의 프랭크가 지닌  ‘병’으로부터의 탈출 스토리이다. 

그는 밴드의 정신적 지주이면서 스승이며 ‘교주’이다. 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 대한 주위의 복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의 완벽과 천재성은 주위를 숨 막히게 한다. 

프랭크는 천재이나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에는 인간의 얼굴이 없다. 가면에는  미소와 눈물을 찾을 수 없다.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기괴한 천재적인 행동뿐이다. 

그래서 비록 그가 빈틈없는  천재적인 지도자일지라도, 인간의 향기와 냄새를 맡을 수 없다.   

키보드연주자와 돈의 자살은 프랭크의 천재성에 비해 자신의 평범함에 대한 절망으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는 인간성이 상실된 완벽을 추구하는  천재에 대한 숨 막힘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단지 그는 천재성을 가진 기계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천재성은 ‘병’이다.

가면은 천재성과 완벽을 유지하는 발전기역할을 하였다.  가면은 천재성에 인간의 연약함이 스며드는 것을 차단한다. 프랭크는 천재성을 바랬을 뿐, 허점 있고 실수하는 그리고 세상과 대화하는 인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성보다 독불장군의 고고함을 꿈꾸었다. 

존은  마침내 그의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본다.  프랭크는 가면이 아닌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며, 허름한 카페에서  멤버를 만난다. 그곳에서도 그는 즉흥으로 노래를 부르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과거의 기괴하며 실험적인 노래들과 숨결을 달리한다. 이는  인간의 향기가 나는 노래이다. 이는 대중과의 타협이라기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세레나데이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미소 짓는다. 

그가  호박 가면을 벗자, 그는 마침내 사람으로 돌아온다. 미소가 담긴, 허점과 실수에 멋쩍어하는  사람의 얼굴이 돌아온 것이다.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매혹적인 참 얼굴이다. 그래서 가면 벗은 천재의 모습은  황홀하다.

그가 가면을 벗고 부른 노래는  그가 그렇게 찾던  정직과 순수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 제목은 ‘I Love You al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