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를 판단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가 위헌 위법하다면,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은 파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비상사태가 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의 판단은 대통령이외의 3자들이 아닌 국정을 직접 관장하는 대통령의 몫으로 남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칼 슈미트의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자다.”라는 통찰에 뒷받침됩니다.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 문리해석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에는 헌법재판소는 피청
구인을 당해 공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文理적 해석(법률의 문자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해석)에 의하면, 이 조항은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으면” 헌법재판소는 의무적으로“파면결정”을 선고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은, 탄핵피소추자가 직무집행에 있어서 위헌․위법행위를 행한 것이 인정된다면, 위헌 위법행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헌법재판소는 의무적으로 탄핵심판 인용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탄핵심판에서 파면여부 결정기준
이러한 문리적 해석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피소추자의 위헌 위법행위가 인정되면 그를 공직으로부터 무조건 의무적으로 파면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사건에서 파면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53조 제1항의 ‘탄핵심판청구가 이유 있는 때’란, 모든 법 위반의 경우가 아니라, 단지 공직자의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의 경우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즉 헌법 제65조 제1항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를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단순히 ‘헌법이나 법률의 위배’가 있기만 하면 어떤 위법 행위라도 탄핵사유가 되고, 헌법재판소는 반드시 파면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헌법 제65조 제1항의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헌재가 자동적으로 파면하는 경우, 이는 피소추자의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결국 헌재는 파면결정을 할 것인지의 여부는 공직자의 법 위반행위의 중대성과 파면결정으로 인한 효과 사이의 법익형량을 통하여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법익형량이란 법위반이 어느 정도로 헌법질서에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을 미치는지의 관점과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경우 초래되는 효과를 서로 형량(衡量:가치 비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 파면을 위한 법위반 정도 : 대통령의 법 위반 정도 vs 공직자의 법 위반
특히 대통령과 다른 공직자의 법위반 정도의 차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즉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공직자의 경우에는 파면결정으로 인한 효과가 일반적으로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미한 법위반행위에 의해서도 파면이 정당화될 가능성이 큰 반면, 대통령의 경우에는 파면결정의 효과가 지대하기 때문에 파면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중대한 법위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위반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헌재는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결정은 정당화된다고 지적합니다.
◆ 계엄법 요건에 기반한 윤대통령의 비상계엄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에 있어 대통령의 법 위반와 관련하여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회간에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항이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 위법한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계엄법에서 규정하는 비상계엄의 요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얻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계엄법 2조2항은 비상계엄 요건과 관련하여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시 적과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질서의 교란은 거대 야당의 반시장적 입법 폭주와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줄탄핵에 의해 야기된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 야당의 권력남용이 행정부의 기능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계엄법 요건에 근거한 계엄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 비상사태를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에 근거하여.
여기서 논쟁의 지점은 누가 행정기능의 현저한 곤란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한 해답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이 독일의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1888~1985)입니다.
그는 ‘주권자는 예외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라고 단언합니다.
이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슈미트에 의하면, 예외상태란 기존의 법질서가 의존하고 있는 정상적인 상태가 위기에 처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법질서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그런데 슈미트는 이 예외상태를 극복하고 평화와 안전과 질서가 회복되는 정상 상태를 만드는 것은 실정법이 아니라 주권자의 결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결단의 주체, 곧 주권자는 국가, 구체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통치자라고 강조합니다.
결국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 곧 예외상태 여부의 결정은 주권자, 곧 통치자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슈미트의 예외상태 이론은 현재 탄핵정국에 있는 한국정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설명입니다.
먼저 예외상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법질서가 의존하고 있는 정상적인 상태가 위기에 놓여 있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거대야당의 반시장적 입법 폭주와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연쇄 탄핵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흔들고 행정부의 권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거대야당의 이같은 亂動은 윤석열정부가 기능마비로 무너질 때까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정상상태로의 회복은 요원해 보이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상태로의 회복, 곧 예외상태로의 극복을 위한 해법은 주권자의 결단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거대 민주당의 폭주로 인해 행정부의 권능이 마비되고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결단은 슈미트가 지적한 주권자의 결단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예외상태 여부를 결정하는 자는 주권자이며, 예외상태로부터 평화와 안전과 질서가 회복되는 정상 상태를 만드는 것은 실정법이 아니라 주권자의 결단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슈미트의 통찰은, 윤석열 대통령의 혼돈된 정국 인식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의 예외상태, 곧 비상사태 여부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외의 제3자들의 단순한 추측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비상사태를 극복하고 정상상태로의 회복의 힘도 통치자 대통령의 권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윤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요건에 합당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슈미트의 이론에 따라 예외상태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극복하는 주체가 주권자 곧 통치자라면, 윤대통령의 계엄선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일부로 해석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