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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대의민주주의와 입헌민주주의 ] 헌법재판소의 전망적 심판을 기대하며

◆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입헌 민주주주의의 역할

민주주의의 정의는  ‘인민에 의한 자기지배입니다. 인민에 의한 자기지배는 대의제에 의해 실현되고 있으며, 대의제는 다수주의에 의해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수주의 원칙에 의해 작동되는 대의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의사를 일원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집단적 획일성과 소수의 이익에 대한 침해가능성을 초래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또한 대의제는 다수당의 의사가 국민전체의 의사로 치환되는 위험을 낳습니다. 특히 다수당이 정파적 이익에 의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다수당의 이익이 국가전체의 이익을 훼손하는 다수당 독재를 촉발시키게 됩니다. 

이같은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헌법에 의한 민주주의의 강조입니다. 즉  대의민주주의의가 법의 지배에 의해 제약될 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는 입헌민주주의에 의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치주의는 대의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표들의 의사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법학자 알렉산더 비켈(A.M.Bickel)은 헌법재판의 ‘반다수결적인 문제’(counter-majoritarian difficulty)를 지적합니다. 비켈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다수제가 원칙인데, 헌법재판소가 다수당의 결정을 무효화하거나 제재하는 것은 다수의 의사를 거스르는 행위로 보인다는 겁니다.

이러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길항관계는 다수당의 절제와 소수자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불가피한 현상으로 파악됩니다. 


◆ 법치에 의한 민주주의 문제점 완화, 어떻게?

그렇다면 법치는 어떻게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해소할까요? 대표적으로  다음의 두가지가 꼽힙니다.  △대의의 결함 보완 △ 대의민주주의에 내재한 과두제적 성격의 해소 


①헌법재판소는  대의의 결함을  보완하는데 기여 

헌법재판은 대의민주주의의 토대인 ‘대의’ 방식의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표는 원론적으로 전체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선출되든 자신의 소속정당 출신이든, 대표는 전체 국민을 위한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대표에 의해서든, 모든 국민은 ‘의회에서 동등하게 대의될 권리’(right to equal representation in parliament)를 가집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선 이러한 이상과 현실 간의 갈등은 노정되고 있습니다. 동등한 대의라는 규범적 이상이 현실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대의민주주의는 다수주의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정당은 자신들을 옹호하는 유권자의 이익만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의사를 등한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부분적 의사가 전체 국민의 의사로 간주되는 위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수당은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곧 국민전체의 의사로 환원하여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정책을 입법화하는 겁니다. 
  
헌법재판은 이같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중립성(neutrality)에 의거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엄격하게 심판한다면,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립성이란 헌법재판소가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선호로부터 거리를 두고,  특히 정치적 다수세력의 편에 치우치지 않는 속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선거로 확인되는 정치적 다수의사에 의지하지 않고 정의의 관점에서 이성과 논리의 원리를 통해 정당성을 추구할 때, 중립성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특성에 따라, 재판관은 다른 공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객관성이 요구됩니다. 재판관도 주관적 선호를 가질수 있지만, 자신의 주관적 선호를 최대한 배제하고 보편적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인  동등대의의 훼손을 바로잡는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즉 입법에서 과소하게  대의되었거나, 다수당의 이익을 위한 편향적 의사결정이 나타날 경우, 헌법재판소는 중립성과 정의에 입각하여 과소 대의된 소수자의 이익을 옹호하고, 다수당의 정파적 이익을 국가전체의 이익으로 환류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② 대의제에 내재한 과두적 성격 해소에 기여

대의민주주의의 정체는 “근대의 혼합정체”(mixed constitution of modern times)입니다. 여기서 정체의 혼합이란 민주적 정체와 과두적 정체의 혼합을 의미합니다. 

전자의 민주적 정체는 국민이 선거권을 부여받아 통치자를 임명하고 해임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후자의 과두적 정체는 선출되는 자가 통치권의 주체가 되고 선출하는 자가 통치권의 대상이 됨으로써  통치자(소수)의 피치자(다수)에 대한 권력적 우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의 두 지배원리 중 어느 한 면만 말하는 것은 대의제도의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다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슈미트(C. Schmitt)의 지적처럼, 대의민주주의를  단순히 민주주의의 亞種으로 취급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같은 대의민주주의에 내재한 과두제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대표들은 공익정신을 발휘해 자신에게 불리한 개혁을 주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반하는 개혁에 주저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개악 혹은 악용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겁니다.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적 증진이라는 과제를 선출된 대표들에게만 오롯이 맡겨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공익적 개혁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대표들을 대신하여, 대의민주주의의 민주적 증진의 역할을 담당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기관으로 부상합니다.  
 
우선, 헌법재판소는  대표들의 기득권 유지에 봉사할 가능성이 있는 입법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국민의 이익을 반영하는 입법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는 대표들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감시의 가능성을 확장하여 장래의 입법을 지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의회 다수파의 권력남용에 대한 경계를 강조합니다.  의회다수당이  정치적 경쟁의 조건에 관한 규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제정하거나, 특히 공익에 관한 고려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유지라는 목적에 따라 행동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 헌재의 전망적 심판을 기대하며

이러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지적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민주당은 탄핵심판을 조기에 마무리하여 조기대선이 열릴 것을 바라고 있는데, 조기대선은 국민이 열망하고 있는 권력구조 개헌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당이 곪을 대로 곪은 대통령제를 정파적 이익을 위해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이러한 행태는 대의제에 내재한 과두적 성격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것인 반면, 동시에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국민 전체의 열망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전체의 열망은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의 제약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가 한국 대의제의 과두적 성격을 극복하고 장래의 입법을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역사가 헌재에 부여한 사명인 것입니다. 

헌재가 과거의 사건에 대한 회고적 심판에 매달리기보다, 국가의 새로운 미래와 민주적 증진을 이끄는 전망적 심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이황희, “헌법재판과 대의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