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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방어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 인간의 존엄으로 속을 채우며

방어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방어적, 투쟁적 민주주의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독일이 전체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즉 자유민주적 질서를 극단주의자들로부터 방어 또는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방어적 투쟁적 민주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헌법상 대표적 제도가 위헌정당해산제도입니다. 

바이마르 헌법 하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 나치의 만행을 겪었던 독일인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로 정당해산제도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 산물이 체재를 위협하는 정당을 구분해 내는 지침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feiheitlich-demokratische Grundordnung, fdGO)입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8조 제4항도 독일의 fdGO를 수용하여 만들어진 조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독일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10월 사회주의 제국정당(SRP)의 금지결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정의내립니다. 이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법치국가원칙과 민주국가원칙의 결합개념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모든 폭력지배와 자의지배의 배제 하에 국민자결권에 기초하여 다수의 의사 및 자유와 평등에 따른 법치국가적 지배질서”라고 정의합니다. 

이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요소를 “헌법에 구체화 되어 있는 인권들, 특히 생명권과 자유로운 인격발현권, 국민주권, 권력분립, 정부의 책임, 행정의 법률적합성, 법원의 독립, 다당제 원칙, 정당의 기회균등 및 야당의 헌법적 형성과 행위의 권리”로 파악합니다. 

이처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로운 인격발현권등 인권을 강조하는 법치국가원칙과 국민주권등 민주국가원칙의 결합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이후 2017년 1월17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민족민주당(NPD)에 대한 정당금지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을 인간의 존엄으로 설명합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인간의 존엄(기본법 제1조 제1항)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이란 상위의 어떤 힘에 의해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대우받는 경우에 누리게 되는 인격입니다. 따라서 집단등을 인간보다 우위에 두는 관념은 인간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것이므로, 이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는 자유 속에서 자기자신에 대하여 결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자기책임 하에 형성할 수 있는 주체성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의 객체화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집단 속 원자의 하나로  객체화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본적으로 위배하는 것이 됩니다.


◆ 대한민국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도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의 개념을 방어적 민주주의맥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체제가 수호하는 가치와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를 위배한 것은 체제를 위협하거나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파악되고 있습니다.  

①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대항개념: 1990년 국가보안법 제7조, 위헌심판사건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1990년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위헌 심판사건에서, 독일연방헌법법원의 fdGO의 개념을 차용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인민민주주의의 반대항으로 파악합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 국가단체의 일인 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 평등의 기본 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 변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헌재 1990.4.2. 89헌가113)

이 판시에서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은 법치국가 원리의 기본요소이며,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등은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헌재 2004.5.14. 2004헌나1) 따라서 헌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주의의 원리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판시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 fdGO의 개념정의와 거의 흡사합니다.  자유, 평등, 인권존중등 가치구속적 관점을 강조하여,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겁니다.  

이 판시와 독일 판례인 fdGO간의 차별점은 헌재의 판시에 자유민주주의의 요소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헌재 판시의 이러한 특징은 자유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의 대립항임을 명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②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내용: 2014년 통합진보당해산선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해산선고에서 헌법 제8조 제4항의 정당해산요건과 관련하여 ‘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정의 내립니다. 

여기서 ‘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의미상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민주적 기본질서도, 큰 틀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법치주의 원리와 민주주의원리를 구성요소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의 제8조 제4항은 독일 기본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원형으로 하였음에도 ‘자유로운’이라는 수식어를 삭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기본 표현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개정초안에는 ‘자유로운’이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어 있었으나 일부 혁신계정당의 기분에 맞지 않는다 하여 개정헌법에서 삭제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해산선고에서 헌법 제8조 제4항의 정당해산요건과 관련한 민주적 기본질서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당해산심판제도가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가 오늘날의 입헌적 민주주의체제를 구성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나 요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정치적 절차를 통해 국민적 의사를 형성 실현하기 위한 요소, 즉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요소들과, 이러한 정치적 절차를 운영하고 보호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 즉 법치주의 원리에 입각한 요소들 중에서 필요불가결한 부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 제8조 제4항이 의미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모든 폭력적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하며, 구체적으로 국민주권의 원리,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복수정당제도등이 현행 헌법상 주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헌재 2014. 12. 19, 2013 헌다1)

우선 위의 판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체제를 입헌적 민주주의의체제로 규정하고 이 체제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핵심요소를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적 기본질서란, 이 질서가 핵심요소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체제는 더 이상 입헌민주주의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민주주의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말합니다.  

이어 헌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의(89헌가113)와 유사한 맥락에 의거하여,  민주적 기본질서(2013 헌다1)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의와 흡사한 맥락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도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등 법치주의 원리와 국민주권주의등 민주주의 원리의 결합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 틀 위에, 위의 판시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가치가 정치적 견해에 대한 다원적 세계관임을 밝히고, 이에 기초하여 다수의 존중과 소수의 배려를 민주적 의사결정의 핵심요소로 설명합니다. 

결국 입헌적 민주주의의 핵심요소, 즉 민주적 기본질서는 정치적 견해의 다원적 사고 안에서 다수 존중, 소수배려에 따른 의사결정을 기본 원리로 구성하는 정치적 질서를 말합니다.  달리말해 다원적 정치관과 다수존중 및 소수배려의 요소가 없다면,  입헌적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존엄으로 속을 채우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의를 설명한 89헌가11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의에 대해 언급한 2013 헌다1는 기본 틀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인간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치주의 원리와 국민주권주의등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의 차이점을 굳이 따져 보면, 양측은 판시의 목적 면에서 강조점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선고에서 정의 내려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89헌가113)는 가치구속적 관점에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 체제와 대립하는 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정당해산 결정과 관련된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판시(2013 헌다1)는 입헌민주주의가 성립되기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구성요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체제 대결적 개념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후자는 체제파괴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둘은 모두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접근됩니다. 

즉 인격의 존중과 국민주권주의가 결합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로 불릴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정당이 국민주권주의와 나란히, 정치의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다수를 존중하고 소수를 배려하는 인권존중의 민주성을 구비하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정당은 민주적 기본질서가 부재한 정당, 따라서 정당해산의 요건의 일부를 갖춘 정당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민주권원리만을 내세우고 인권존중의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있는 정당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정당입니다. 

(최근 일련의 민주당의 행태는 민주성을 상실한 민주당의 모습을 쏙 빼 닮았습니다.) 

무엇보다, 인격을 무시하고 인간의 존엄을 소홀히 하는 근본주의 정당은 민주주의의 경기규칙에 상응하지 않습니다. 정치를 정지시키고 국민의 불안을 조장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격의 존중과 인간의 존엄이 배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겉만 있을 뿐 그 속은 텅 빈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정당에 대한 가치판단은  껍데기 안에 속을 어떻게 채울지에 달려 있습니다. 즉 그 속에 인간의 존엄이 채워질 때, 정당은 계속 정당으로 유지될 수 있으며, 동시에 국민들은 존중받는 개개인으로 대우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