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면역을 ‘실험’하고 있는 스웨덴당국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집단면역의 성공기준은 50~70%의 항체생성입니다. 그런데 스웨덴에선 3500명이상이 희생하여 항체를 가진 인구가 약25%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연대와 공동체주의에 근거하여 사민주의정신을 추종하는 스웨덴 당국이 오히려 공리주의자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웨덴당국을 집단면역 실험으로 몰고 갔을까요? 이는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정책과 무관하지 하지 않습니다.
◆ 스웨덴의 가치들의 결합 : 집단가치+ 개인가치, 사민주의+ 신자유주의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지속시키기 위한 조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보편적 의료는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공재입니다. 누구나 공동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누구도 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합니다. 때문에 모든 국민이 소득·자산의 크기와 무관하게 고부담의 수술을 거의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의료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재정으로 운영되는 의료공급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때문에 스웨덴의 의료체계는 세금으로 충당되는 재정의 고갈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게다가 1990년대 이후 경기침체가 스웨덴을 복지재정의 긴축으로 내몰았습니다. 1991년~93년 사이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2%였으며, 실업률은 1.4%~9%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보편주의 한계의 극복은 모순되어 보이는 이질적인 가치들의 절충으로 나타납니다. 집단가치에 개인가치가,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가 결합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 개인 자율책임의 강조 :“부러지지 않는 한 치료하지 말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
먼저 스웨덴은 보편주의가 낳은 난제를 개인가치와 집단가치의 결합으로 해결합니다.
자기결정과 자기 책임이라는 개인가치가 문화로 정착되어 있는 스웨덴에선, 국민들은 자율적인 건강관리를 요구받습니다.
개인선택, 개인책임이 우선시되는 스웨덴의 문화에선, “부러지지 않는 한 치료하지 말라.(If it ain’t broke, don’t fix it)” 는 말이 당연시됩니다.
대다수의 환자는 약 처방 없이 ‘집에서 쉬고 관리’하도록 권고 받습니다. 아주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수술을 받기보다 일단 경과를 지켜보거나 자연치료를 기대합니다.
병원은 중증 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어, 경증 일반 환자는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의료처치에서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보니 어려서부터 운동이 관습화됩니다. 스웨덴은 19세기 초부터 건강과 군사적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체조를 비롯한 스포츠를 권장하여, 인구의 약40%인 340만 명(7세~70세)이 스포츠클럽 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건강관리에 있어 개인가치의 강조는 보편주의 의료체계의 지속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건강의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환자의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하고, 그 결과 의료 공공재정을 줄이는데 기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스웨덴이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중점을 두고 코로나19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정책행위자들이 보편주의 지속성의 전제가 되는 개인가치에 집착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보편주의와 이를 지탱하는 개인주의라는 스웨덴의 역사성에 매몰되어 경로 의존적 태도를 초래한 결과,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참담한 현실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 사민주의의 지속성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수용
또한 스웨덴이 택한 집단면역정책의 배경은 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 결합의 부작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① 스웨덴이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결합한 배경
스웨덴은 경기침체로 인해 보편주의 의료서비스 체제를 지속시키는 공공재정의 결핍에 직면하였습니다. 전통적인 사회가치인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결합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가치의 절충은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스웨덴의 보편주의 복지가 실현가능하게 된 것은 완전고용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197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던 스웨덴의 완전고용은 계급 간 타협을 강조하는 렌-메이드 모델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노조등 내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외부자들의 고용을 우선시하는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였고, 이러한 계급 간 연대성이 고용과 복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시민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복지지출은 최소화되면서 복지비용은 세금으로 최대한 충당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웨덴은 1990년대 이후 복지체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보편주의 복지는 자산 소득조사에 의한 표적화로 바뀌고, 공공의료의 독점은 부분적 민영화를 수용합니다.
이는 보편적 국가의 핵심전제인 완전고용의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결국 스웨덴은 자원의 희소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민주의에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게 된 것입니다.
②NPM의 도입
이는 의료체제의 개혁에서 부분적 민영화의 하나인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NPM)의 도입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웨덴 의료체제의 대표적인 NPM은 ‘purchaser-provider split model’ (구입자- 공급자모델)입니다.
스웨덴이 추구해온 기존의 ‘독점통합모델’에선 공공기관이 서비스 재정과 공급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진 반면, ‘구입자-공급자분리’에선 서비스재정과 서비스 제공이 분리되었습니다. 이용자가 서비스를 구입할 때, 정부가 비용을 책임지고,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이 함께 서비스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분리모델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관의 효율성 달성에 있었습니다. 공급자의 대표적 선정방식은 입찰이었는데, 이는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의료기관간의 경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경쟁모형이 병원의 효율성을 높이게 되었고, 진료대기를 대폭 줄이는 생산성 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이규식외)
③자유선택법의 도입
또한 소비자선택시스템(자유선택법)의 도입은 의료기관간의 경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2009년부터 지역정부(Municipality, 기초자치단체)는 민간업체 의료기관을 개방하여, 이용자는 자신의 서비스를 스스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개정을 통해 광역시(County Council)는 1차 의료 진료소(Primary health care center)를 민간영역에 개방했습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민간이든 공공기관이든 질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은 효율성 증가, 서비스 질 개선, 이용자 선택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홍세영외)
④아델 개혁
특히 스웨덴은 1992년 의료와 사회서비스를 통합하는 비용-효과적인 아델 (Adel)개혁을 추진합니다.
이 개혁으로 고령자에 대한 장기 입원이나 돌봄의 주체가 CC에서 Municipality로 이관되었습니다. 아델 개혁의 성과는 병원에서 병상 장기 점유자가 감소하여 병상 수가 줄었다는 겁니다.
재정책임이 CC에서 Municipality로 넘어감에 따라, Municipality는 고령자의 병원에 대한 지불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역정부는 환자를 빨리 퇴원시키고 비용이 저렴한 홈케어를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병상 수 감소로 나타났습니다. 1992~2005년 기간 중에 병상수는 무려 50%나 감축된 것입니다.
⑤스웨덴이 집단 면역정책을 택한 이유
이처럼 스웨덴이 일련의 부분민영화를 추진한 것은 주류경제학의 용어로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편주의의 전제인 완전고용이 무너지자 자원의 부족이란 문제와 맞닥뜨린 스웨덴이 비용극소화를 통해 생산극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수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편주의가 안고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추진한 스웨덴의 절충적 의료체계는 평시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급격한 변동에는 작동을 멈춘다는 한계를 드러내었습니다.
효율극대화를 추구하는 병원시설의 감축이 코로나19등의 돌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한 것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표준적 대처 가이드 라인은 진단→격리→치료, 추적→진단→격리→치료라는 한국의 대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진단· 격리· 치료라는 경로를 따른다 해도, 의료 기관이 광범위한 환자들을 수용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그 방식은 무용지물입니다. 환자의 병원 접근성이 힘들기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하고, 그 결과 진단은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이 환자의 방임 아닌 방임이라는 집단면역정책을 결정하게 된 직접적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
스웨덴이 코로나19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보편주의 복지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스웨덴 정책행위자들은 보편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기책임이라는 개인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정책행위자들은 경로 의존적 사고에 묶여 자율적 개인가치라는 기존가치를 고수하였습니다. 이들이 경로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이웃 노르딕 국가처럼 강제력이 부과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행하였다면, 지금 같은 사망자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대상의 포괄성과 균등급여를 특징으로 하는 보편주의가 완전고용의 붕괴로 신자유주의와 짝을 이루게 된 결과, 스웨덴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절충도 코로나19와 같은 급격한 돌발 상황에서 대처능력을 상실하도록 합니다.
이처럼 공공성을 강조하는 스웨덴이 다수 고령층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은 한국의 미래 복지체제를 수립하는데 반면교사가 됩니다.
누구나 동등한 복지를 받는 보편적 복지는 한국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자율적 책임이 강하지도 않고, 경기침체로 보편적 복지의 전제가 되는 완전고용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게다가 내부 기득권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노동시장 외부인을 포용하는 연대성도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높은 소득세율과 소비세율 그리고 개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납세자의 풍토 속에서, 보편적 복지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욕심은 불행을 가져옵니다. 스웨덴식, 영국식 보편주의를 한국이 수용한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긍정적 차별’을 강화하는 잔여주의를 한국 실정에 맞게 적용시키는 복지체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홍세영,김철주,오수경(2018), “민영화 개혁과 스웨덴 의료체제의 지속성과 역동성”
최희경(2019), “북유럽 의료체계의 가치론적 접근”
이규식, 사공진, 한민경(2019), “의료와 사회서비스의 통합 제공:스웨덴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