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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부산 아미동 ②, 주변부와 중심부] 정당한 세상은 개인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

추방당하고 있는 국민들 – 주변부와 중심부- 그리고 <代立軍>

부산 아미동 산 19번지의 일본인 공동묘지가 사람이 사는 정착지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은 먼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일본인들의 조선인 추방과 관련되어 있다. 부산부는 1937년 간선도로와 광장의 건설을 위해 매축지나 도로변에 있는 조선인들을 곡정(아미동)등 산속으로 추방하였다. 또 부산의 많은 토지를 소유한 일본인들은 차지료를 인상하여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조선인들을 산속으로 내몰았다. 이렇게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장악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평지에서 아미동등 산속으로 쫒아낸 것이다. (차철욱)

 

6.25전쟁 이후 아미동은 1950년대 이후로 인구 증가를 맞게 되는데, 이는 휴전이후 시내 판잣집들의 철거와 관련 깊다. 철거민들이 아미동등으로 이주해 온 것이다.

 

정부와 부산시는 도시미관, 위생문제, 교통난을 이유로 들어 판잣집을 철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피난민들은 밤에 집을 다시 세워 부산시의 행정력에 도전하였다. 한 증언에 의하면, 이승만 관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보수동 산동네에 판잣집이 세워지는 것을 싫어한 이승만대통령이 판잣집 건축을 제지하도록 지시하였지만, 피난민들은 밤에 외관을 만들고 낮에 내부공사를 하여 판잣집을 지었다고 한다.

 

정부의 철거명분을 보장한 것은 화재였다. 판잣집 내 초롱불, 촛불, 아궁이불등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특히 195311월 부산역전대화재는 대규모 판잣집 철거의 구실을 안겨주었다. 부산시는 12월부터 복병산, 보수천 주변, 해안가 등지에서 철거를 시작했고, 이듬해 초량, 영도, 부산진까지 확대하였다. (차철욱외)

 

철거민들이 산속의 아미동등으로 이주한 것은 이 지역이 그들의 생계근거지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부산시는 철거민 이주지역으로 사하구 괴정, 부산진구 양정, 영도 청학동 등 세 곳을 지정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철거민들의 생활 근거지에서 멀어 이주하기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피난민들은 주로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무허가 행상, 부산부두에서 부두하역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은 생계수단이 국제시장· 부두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그들의 주거지는 이곳과 통행이 가능한 곳이어야 했다. (차철욱외)

 

아미동 일본인 공동묘지가 철거민들의 정착지로 활용된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난민들은 부두와 시장이 가까운 산동네를 선호한 것이다.

 

결국 아미동 산19번지에 죽음과 삶이 공존하게 된 것은 국가로부터 국민이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함에도, 외려 국민을 추방하는 절대 권력의 횡포를 부린 것이다.


 

 

추방당하고 있는 국민들 주변부와 중심부- 그리고 <代立軍>

 

국민의 추방은 현재진행형이다.

 

현대의 추방은 주변화를 의미한다. 주변(margin, peripheral)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부차화 된 집단의 지위를 말한다. (고병권) 집단이 주체로서 중심부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주변부의 낮은 지위로 내몰린 것이다.

 

중심부의 범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부로 내몰린 집단의 예가 여성이다.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처럼 여성은 중심부인 남성에게 이바지하는 존재, 남성의 번식 작업의 조력자로 전락한다. (박종대) 이러한 주변부의 여성은 중심부인 남성이 공적영역을 담당하는 것에 비해 사적영역에 묶여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라 타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도 중심부의 완충역할을 담당한다. 비정규직은 주변부에 위치하여 주변적 업무를 담당하며 중심부에 위치하는 정규직의 고용을 보호한다. (노세리외) 중심부의 임금수준을 시장가치 혹은 그 이상의 효율임금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또 자본을 보유하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부로 팽개쳐 버린다. 부모의 우수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혜택을 받는 자녀는 차별화된 교육기회를 통해 우월한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을 대물림 받게 된다. 축적된 자본 덕택으로 중심부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자본에서 배제된 이들은 중심부의 보조역할을 담당하며 주변부의 삶을 재생산하게 된다.

 

주변부의 삶은 영화 <대립군>에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代立軍들은 가족과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중심부의 軍役을 대신 담당하는 주변부의 삶을 살아나간다. 자본의 수혜를 누리는 이들은 자본의 힘으로 죽음조차 피해갈수 있지만, 자본으로부터 박탈당한 주변부는 중심부의 목숨을 보호하는 보조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를 다시 삶의 주체로 복원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 시대의 우선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간 경계가 침투가능성이 높아야

 

주변부의 부차화 된 삶의 지위가 주체적인 삶의 지위로 격상 된다는 것은 중심부와 주변부의 공고한 벽이 허물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예들로서, 사적영역에 머물러 있는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공적영역을 담당하는 것, 비정규직을 기업환경과 사회 환경에 맞는 적정수준의 정도로 낮추는 것, 기회의 평등에 머물지 않고 결과의 평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등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단초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개인의 집단 간 이동 가능성이 높은가에 주목하고 있다. 중심부와 주변부간의 경계가 침투가능성이 높아(permeable) 이동이 용이할 때 집단 간 장벽은 쉽게 허물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혜숙)

 

 

주변부의 이동 가능성 제한적, 함정에 빠져

 

하지만 실제로 주변부의 지위 이동가능성은 지극히 제한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의 이동가능성이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국가들은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보완하고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가교(Stepping stone to perment employment)역할을 한다. (노세리외 2015) 하지만 한국은 비정규직 고용을 기업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규직 대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은 가교보다 함정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진행하기 위한 함정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비정규직에 진입한 사람이 정규직으로의 진입을 원하지만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에 오랜 기간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권순식 2004)

 

그러므로 비정규직이 본연의 성격에 맞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다리가 되도록,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의 비정규직법은 풍선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최석현외) 이 법이 정규직 고용 촉진 및 비정규직 고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기보다, 정규직 고용의 감소와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법이 기간제로의 취업가능성을 낮추고 외주등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모순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의 풍선효과를 차단하는 새로운 비정규직법을 고안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부모의 자본 부족으로 자녀들이 주변부로 내몰리는 현실은 개인적인 사회이동의 가교가 끊겨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부족을 상쇄하기 위해 교육의 출발선을 같이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유보통합과 유치원의 공교육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금 강조되어야 할 정책 과제이다.

 

또한 대학의 인재 할당제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은 전국의 상위 1%의 우수한 학생을 모두 끌어들이지 않는다.(박종대) 하지만 우리의 대학은 마치 체에서 걸러내듯 순위 1번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학생을 걸러 내린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본으로 신분이 재생산되는 봉건적 잔재가 우리 대학에도 남아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오바마의 탄생은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다.

 

 

정당한 세상은 개인이동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

 

집단 간 이동가능성의 단절은 개인의 주체적 삶을 파괴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적 갈등의 진앙으로 커 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넘어 침투가능성이 낮을 경우, 주변부의 소수집단은 자신을 비하하며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현재의 불합리한 체제를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집단을 비하한다는 것이다. 이어 사회의 부당성을 인내하고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최혜숙)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과 같은 양과 질의 일을 했으면서도 남성들이 스스로 받을 만하다고 여기는 임금 수준보다 더 낮게 스스로의 임금을 책정한다고 한다. 이를 저하된 자격효과( depressed entitlement effect)로 부른다. 이는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이 아닌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삶에 적응하는 태도인 것이다.

 

반면 이와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나타난다. 개인이 사회 이동을 이루지 못하고 함정에 빠질 경우,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부당성에 대한 지각은 높아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가 그 정당성이 미약하다고 지각될수록 차별을 더 많이 경험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집단에 대한 정체성과 자부심이 높을수록 차별 경험이 더욱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불만족, 스트레스, 사회적 갈등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최혜숙)

 

그러므로 낮은 지위에 속하는 주변부의 개인이 중심부로의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건강성을 회복하며 사회의 지속성을 높이는 정당한 세상으로 지각된다.

 

물론 궁극적인 지향점은 주변부와 중심부의 구분이 허물어지는 집단 간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도래 이다. 이러한 과도기에는 개인이동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는 사회의 존립과 지속성을 위해 여전히 유효하다.

 

 

 

<참고자료>

차철욱외(2010), “아미동 산동네의 형성과 문화변화”, 문화역사지리 제22권 제1

차철욱(2011), “아미동 마을 형성의 역사와 배경”, 이향과 경계의 땅 부산의 아미동 아미동사람들

박종대, 김석수(2001), “생명과 사회정의”, 생명문화총서 4

김혜숙, 박수미(2006), “집단지위 정당성, 지위안정성 및 집단정체성이 차별지각에 미치는 영향한국심리학회지 vol 20

최석현외(2015),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위한 고용 사회정책적 방안 연구경기연구원

고병권(2007), “주변화대 소수화”, 소수성의 정치학

정윤철(2017), 영화<대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