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재정 위기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과거 1970년대 이래 그리스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단기적인 대처가 화를 초래하였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프랑크푸르트 사무소가 2012년 작성한 <그리스 경제의 현황과 구조적 취약성 형성배경>의 보고서(저자:홍경식차장)는 그리스정부의 80년대 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인한 유산이 현재 과도한 국가부채의 遠因이 되며, 90년대에는 유로존 가입 이후에 예측되는 구조적인 거시경제 문제에 대한 무시가 재정위기를 야기하였다고 지적한다.
▣ 1974~1980 정책
1974년 군사정권 퇴진 이후 집권한 신민당은 국가의 강력한 개입으로 생산성 향상, 대외교역확대,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경제발전을 도모하였다. 정부는 golden rule(공공투자지출에 대해서만 적자 허용)을 통해 재정적자를 통제하였다.
그 결과 재정수지는 GDP의 3%이하, 정부부채는 25%내외에 불과하였고,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였다. 실업률은 1975~78년에 1.9%, 2차 오일쇼크 이후인 1979~80년에 4%로 상승하였다.
▣ 1980년 포퓰리즘 정책
1980년대는 2차 오일쇼크의 영향 하에 과도한 경기부양으로 재정적자와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정부는 재정적자 확대, 통화완화, 환율평가절하정책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정부부채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급등
재정적자가 급격히 증가한 배경은 군사정부 이후 억눌렸던 소득 재분배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형성되면서 신민당정부의 초기 정책인 golden rule이 서서히 폐기된 탓이 크다. 공공부분 인원급증, 임금이 대폭 인상되어, 재정지출이 크게 확대되었다.
특히 총선이 있었던 1981년 중에 공무원등의 고용인원이 대폭 확대되어, 재정적자가 늘었다. 이는 그리스정치의 부패의 전형인 후견주의의 결과물이었다. 각 정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공무원을 더 많이 채용하고자 하는 전통이 재정적자와 정부부채를 촉발시킨 것이다.
정부부채가 급증한 것은 이러한 공공부분 임금인상의 재원을 부채로 조달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1981~90년 중, 기초 재정수지 적자비율 3%초과가 10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적자부분을 정부의 국내 단기재정증권 발행, EU의 자금지원, 중앙은행의 시뇨리지 수입으로 충당하였다.
이러한 부채증가로 이자지급이 증가하여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심화되었고, 이에 대한 재원을 다시 빚으로 메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또한 드라크마화 환율평가절하로 외채의 상환부담이 대폭 증가하여 자국통화로 표시된 정부부채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 완화된 통화 환율정책
이 시기는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유발되는 시기였다. 환율정책은 드라크마화의 지속적인 평가절하였다.
중앙은행은 적정 중간목표를 통화량으로 삼고, 보조지표를 신용증가율로 설정하였는데, 신용증가율 목표치도 높았고 게다가 목표치를 상회하기까지 하였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과의 딜레마에서 경제성장을 목표로 인플레이션을 수용한 결과였다.
환율정책이 평가절하정책을 시행한 것은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적자의 배경은 실질실효환율이 고평가되어,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대외경쟁력에서 뒤쳐졌기 때문이다. 실질실효환율의 고평가는 인플레이션과 임금인상으로 인한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교역상대국에 비해 크게 상회한 결과였다.
이렇게 되자 다시 드라크마화의 평가절하가 지속되는 악순환이 발생하였다. 대외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에다, 그리스의 물가가 유럽의 타국에 비해 높아, 그 격차를 환율 인상으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도한 임금인상과 통화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하고 대외경쟁력은 더욱 악화되었다.
◆물가 상승
이번에는 드라크마화의 평가절하로 인플레이션이 치솟게 되었다. 2차 오일쇼크로 수입물가가 높아진데다, 환율평가절하로 수입물가가 대폭 상승하였다.
이렇게 물가가 치솟자, 다시 물가-임금 자동연동제 도입으로 명목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하여 유로지역을 상회하였다. 하지만 높은 물가상승압력으로 실질임금이 정체되자, 다시 임금인상요구가 지속되었다.
정신없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정부의 무분별한 임금인상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정부는 통화 재정 긴축을 추진하였으나, 임금 인상요구가 확산되어 결국 1989년 선거에서 다시 임금인상을 수용하게 된다.
1985년 시행한 급격한 환율평가절하로 이듬해 물가상승률이 22.4%로 높아졌고, 1987년 부가가치세 도입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하자, 임금인상 압력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 80년대 평가
이 시기는 정부부채 증가, 인플레이션과 대외경쟁력 하락, 실질소득 위축으로 설명되어진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 및 생활수준 향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적절히 통제하는데 실패하여, 완화적 재정· 환율· 통화정책이 펼쳐진 것이다.
재정지출확대는 생산적 투자와는 무관하게 후견주의 등의 정치적 동기에 의한 소득재분배, 공공부문확대가 이루어졌다.
환율평가절하정책은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환율평가절하→ 수입 물가 상승→ 인플레이션 →실질임금하락→ 임금상승→ 실질 실효환율 고평가 →가격경쟁력하락→경상수지 적자→ 환율평가절하」의 악순환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1980년대 그리스 정부의 과도한 경기부양정책의 결과가 현재의 과도한 정부부채, 낮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유산을 남겨, 2010년 이후의 국가채무위기의 遠因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1994~1999 유로 수렴정책
1993년 재집권한 사회당은 유로존 가입을 위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긴축을 요구하는 EU수렴정책을 펼친다.
유로존 가입조건이 규정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는 △재정적자한도를 GDP의 3%로 제한 △국가부채한도는 GDP의 60%까지 허용 △유로존 가입 이전 2년 이내에는 환율조정메커니즘의 허용범위를 초과하는 통화 평가절하를 금지 △인플레이션은 가장 낮은 3개국의 평균과의 차이가 1.5%이하이어야 하는등의 기준을 포함하고 있었다.
재정긴축에도 물가안정과 EU의 자금지원 확대로 경제가 회복 되었다. 하지만 환율 평가절하 제한으로 인한 대외경쟁력 하락으로, 실업률은 1994년 8.9%에서 1999년 12.0%로 상승하였다.
◆ 재정 건전성
유로 수렴정책 시기에는 정부부채가 하락하였다.
우선 기초재정수지가 1994년부터 흑자를 나타내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간접세 대신 직접세인 소득세 부과 확대, 국영기업의 자산 매각등이 재정수입을 늘려, 기초재정수지가 개선되었다.
또한 금리 하락이 정부부채 축소에 기여하였다. 물가상승률 하향 안정화로 명목금리가 하락하면서 이자지급 부담이 줄어들었고, 장기국채도입으로 발행금리가 하락하였다.
공무원급여와 연금지출을 억제하는 정책도 재정개선을 위해 시행되었다. 후견주의 부패를 막기 위해 공공부분의 채용을 감독하는 독립기관인 ASEP(인력 채용 최고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 통화정책
그리스 중앙은행은 1994년부터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하여 물가상승률 하향 안정화 경로를 제시하였다.
환율과 관련하여, 마스트리히트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hard drachma 정책을 채택하였다. 즉 환율을 통화정책의 중간목표로 설정하여, 이를 명목기준지표로 활용하여, 환율 절하폭을 연도별로 제한하였다.
하지만 hard drachma 정책의 환율 절하 폭 제한은 경상수지를 악화시켜 고용악화를 초래하였다.
환율평가절하가 제한되어, 실질실효환율이 고평가되어 1995년 이후 경상수지 적자비율이 확대된 것이다. 이는 물가상승률이 안정화되었지만, 물가와 단위노동비용 상승률이 교역대상보다 여전히 높아 실질실효환율이 상승하여 대외경쟁력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구직자가 취업자로 충분히 흡수되지 못하였다.
◆ 1990년 평가
그리스 정부는 유로화 가입조건인 마스트리히트 수렴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물가 및 환율안정, 재정건전화, 장기금리 하락등 거시경제 지표가 개선되었다.
하지만 거시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해소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상태에서 유로존에 가입하여, 2000년대 호황의 달콤함 후에 실질적인 디폴트와 채권단의 긴축요구 반대라는 격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우선 대외 경쟁력과 관련, 단일통화체제에서는 통화정책과 환율조정이 불가능하므로, 그리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무턱대고 유로존에 가입하였다.
유로가입 이후 환율평가절하를 통한 가격경쟁력이 불가능하여, 경기 호황시에 물가상승과 단위 노동비용 상승으로 실질실효환율이 고평가되고, 이로 인해 대외경쟁력 하락과 경상수지 적자가 명확히 나타날 것으로 예견됨에도, 그리스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없었다.
게다가 경상수지적자는 환율평가절하 제한으로 1995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어 갔음에도, 눈앞에 나타난 구조적인 취약성을 방기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어떻게 풀었어야 할까?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는 물가 및 임금상승 억제를 통해 실질실효환율이 평가 절하되어야 하지만,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국은행은 지적하였다. 긴축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도 긴축 이후에는 그리스 국민들은 그 기간의 고통에 대한 보상으로 소득 재분배 요구를 강력히 요구하여 선거를 기점으로 확장적인 재정과 통화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산업 구성의 틀을 바꾸는 노력에 집중해야 했다. 즉 그리스의 강점인 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 발굴 육성으로 수출확대와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여야 함에도 이를 무시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적자문제와 관련, 재정수지개선을 위한 재정규율(fiscal discipline)을 제도적으로 확립하지 못하였다고 한국은행은 진단한다.
명시적인 재정목표· 규칙· 재정상황에 대한 심사등의 보고서가 제출되어도 이를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정부는 이를 무시하게 된다. 실제로 2001년부터 명시적 재정목표로 ‘정부예산보고서(Government Budget Report)’가 도입되었다. 2000년 이후 이 보고서는 독자적인 통화 환율정책이 불가능하므로 경제성장의 지속을 위해서는 건전한 재정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수차례 명시하였음에도, 그리스 정부는 이에 대한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현재 그리스 위기는 유로존 가입이 단기에 샴페인을 터트리고 장기에는 궁핍이 예측됨에도, 이에 대한 대비책은 고려하지 않은 그리스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대중영합적인 정책 시행에 비롯된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