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그리고 놀라운 성과였다. 의회에서 정한 법률이 이제 속빈 강정이아니라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9일 새벽, 여야는 공무원 연금개정 합의 과정에서, 행정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의회가 정한 법률의 취지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의회가 행정부령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고 행정부는 이에 따라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즉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국회가 수정 변경을 요구하고 수정 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처리하도록 한다."라는 국회법 개정을 여야가 도출해 낸 것이다.
지금까지 입법 과정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의회가 법의 취지와 얼개를 제정하면, 대통령령과 장관령에서 법률의 세부적 내용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행정부는 법률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규정하여, 본법을 희석화시키는 경향이 발견되곤 하였다. 이름만 남고 실질은 사라진 빈 껍데기 법률이 된 셈이다.
그러므로 이 여야의 합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어, 명목과 실질이 일치하는 실질적인 법률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 연금 강화의 투 트랙 방식
공무원연금개정안을 통과시킨 여야는 공적연금과 노후빈곤 해결을 위해 국회중심의 특위와 사회적 기구 구성이라는 투 트랙 접근 방식에 합의하였다.
우선 ‘공적연금강화방안 및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여야 동수로 위원장을 포함하여 14인으로 구성하며, 특위 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위원이 맡게 된다.
사회적 기구로서의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을 위한 사회적 기구’는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와 그 밖의 합의 내용에 대한 적정성 및 타당성을 검증하게 된다.
또한 사회적 기구는 이해당사자 및 연금전문가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합리적 공적연금 강화 방안과 노후빈곤 해소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단 이 방안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사회적 기구에는 여야가 동수로 추천하는 20인의 위원들이 참여하게 된다. 위원은 △새누리당과 새정연에서 각각 지명하는 8명(국회의원 3명, 전문가 2명, 국민연금 사업장가입자 대표 2명, 지역가입자 대표 1명) △두 당이 공동 추천하는 전문가 2명과 관계공무원등 2명으로 구성된다.
특위와 사회적 기구는 각각 의결된 날로부터 10월31일까지, 구성된 날로부터 10월 31일까지 활동하기로 하였다.
◆ 의회의 행정부령에 대한 수정 권한의 의미
의회가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행정부의 법률의 자의적인 해석에 제동을 걸고 본래 법의 취지를 되살릴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문제점은 법령에 취지를 적시하고 그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규정하면, 행정부가 시행령과 규칙을 통해 본 취지와 무관하게 완화된 내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예로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들 수 있다.
법인세 제56조인 ‘기업의 미환류 소득에 대한 법인세’는 과세 대상의 대강의 산식만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 과세대상은 대통령령인 시행령과 장관령인 시행규칙에서 규정하였다.
법령에서 규정한 산식은 아래와 같다. 기업은 설비투자규모의 정도에 따라 아래 둘 중 하나의 산식을 선택할 수 있다.
①[당기소득 × 기준율 α(60%~80%)- (투자액 + 배당액 + 임금증가액) × 10%
②[당기소득 × 기준율 ß(20~40%)- (배당액 + 임금증가액) × 10%
여기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위임한 대표적인 내용은 △ α, ß 기준율의 결정
△기계장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산에 대한 투자의 범위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배당의 범위 등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행령은 ‘기업 미환류소득에 대한 과세’가 입법화되기 이전에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었다.
우선 기준율을 규정하지 않고 범위만을 법령에 규정한 부분은 이 법령의 취지를 퇴색시킬 여지가 높았다. 결국 시행령에서 α는 80%로 결정되었으나, ß 의 경우는 40%대신 30%로 결정되었다.
△ 시행령의 투자 범위 논란 =
특히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 과세대상에서 차감되는 투자의 범위였다. 법인세법에는 ‘기계장치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산에 대한 투자 합계’로만 규정하고 구체적인 투자의 범위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일임하였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토지는 투자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기업소득환류세제의 취지와 토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 법의 취지는 기업들이 유보금액을 업무와 무관한 자산으로 운용하여, 경제에 활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하였다.
유보의 발생은 기업의 노력뿐만 아니라 국민과 근로자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았다. 기업은 거액의 비과세제도의 수혜를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세수부족을 일반 국민들이 담뱃세 인상등으로 충당하였다. 또한 기업들의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의 고용은 노동소득분배율 감소와 자본소득비율 증대로 연결되었다. 이점들이 기업의 거대한 유보 누적에 기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이 유보금액을 영업과 무관한 현금 및 단기 주식 채권등의 현금성 자산, 장기 금융자산으로 운용하였다. 이러니 기업저축의 역설이라는 주장이 나올 법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 투자, 임금, 배당등을 독려하는 관점에서 위의 기업소득환류세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지하에서 바라보는 ‘기업 미환류 소득 과세’제도 산식에서의 투자는 당연히 설비투자를 의미한다. 즉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투자를 뜻한다. 하지만 토지 구입은 새로운 생산물이 아니므로 부가가치 창출과 무관하다. 단지 소유권이 이전되는 관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토지는 투자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하지만 시행령에는 투자 범위에 당당히 토지를 포함시켰다.
△시행령의 배당 범위 논란=
배당의 범위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법령에 배당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시 하지 않았고, 대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배당의 합계액’으로 하였다. 세부적인 배당의 범위에 대해, 법령은 잉여금처분에 따른 배당과 취득하여 1개월 내에 소각한 자기주식의 취득금액을 배당에 포함시켰다.
문제는 자기주식 취득이 배당인가라는 문제이다. 세법에서 배당을 미처분 잉여금을 배당으로 사외 유출한 부분, 자기주식처분이익등 익금항목을 자본 전입하여 무상주를 수령하였을 경우, 또한 합병등으로 피합병법인 주주들의 주식취득금액과 대가와의 차액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자기주식취득은 법인이 주주들에게 투자한 금액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이는 배당의 원천은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이라는 논리와 무관하다. 그러므로 자기주식 취득을 투자라는 이름으로 과세대상에서 차감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시행령에서 이를 차감항목에 포함시켰다.
△행정부령에 대한 의회의 수정 요구 권한, 또 다른 쾌거 =
이처럼 최근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내용을 비추어 볼 때, 국회가 법의 전체적인 얼개와 취지를 형성하고 행정부가 그 구체적 세부사항을 결정한다는 입법과정에서의 맹점이 나타나게 된다. 법령의 취지와 어긋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져 법의 본질이 퇴색되는 것이다.
위의 기업소득환류세제처럼 시행령에 토지와 자기주식취득을 각각 투자와 배당에 포함시킨 결과, 기업의 지나친 유보의 비생산적인 운용에 제동을 걸겠다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게 되었다.
기업은 최근 다시 이 기준율과 투자의 범위를 대폭 완화하여 시행령을 뜯어 고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무원연금합의안과 함께 행정부령에 대한 의회의 수정 요구 권한을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은 또 다른 쾌거로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정치가 이제 겉모습보다 내실을 따지는 정치로 진일보 하고 있다는 입증으로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개정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행령도 법령의 효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만약 본법의 보조 역할을 하는 행정부령이 본법에 어긋나는 내용이라면 당연히 입법권을 가진 의회가 시행령을 통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는 3권분립에 위배 된다는 주장 보다, 행정부가 이러한 의회의 권한을 염두에 두고, 좀 더 본법의 취지에 부합된 시행령을 마련하도록 촉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