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도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일본은행이 시행하고 있는 양적·질적완화(QQE) 정책이 경제주체의 디플레이션 심리를 바꾸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는 QQE의 정책 효과는 단기금리를 0.25%포인트씩 10번 내리는 것과 맞먹는다고 평가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있다면서 디플레이션극복을 자신하였다.
한편 일본은행은 지난 2013년 QQE를 펴면서 전망하였던 ‘2년내 물가상승률 2% 목표’는 2016년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달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물가상승률 2% 달성, 마냥 즐겁지 않아
이러한 구로다 총재의 자신만만함과 달리, 일본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경제전망을 표명하고 있다. 물가상승률 2% 달성이 질적인 경제성장으로 연결될지 의문시된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2013년 시작된 QQE로 △금융시장 조절 조작목표를 단기금리에서 머니터리 베이스 확대로 변경하는 것 △확대를 위해 금융회사에서 장기국채 매입을 시행하고, 장기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것 △자산가격 상승을 노려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 매입을 늘리는 것 △물가상승률 2%목표를 위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지속적으로 계속할 것등의 4가지 정책을 제시하였다.
이중 현재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발휘하는 정책은 자산효과 정도이다. 장기국채매입을 통해 이자율을 하락시킨 결과, 낮아진 이자율이 할인율로 작용하여 자산의 현재가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낮은 이자율은 환율에 영향을 미쳐 엔 가치 하락에 기여하였다.
우선 현재의 물가 상승이 생산성과 혁신등 내재적인 힘에 의하기보다, QQE로 인한 엔저에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기업의 생산성 증대 → 임금증가 → 소득증가 → 수요증가 →균형소득증대」의 과정을 거친 총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기보다, 엔저로 인해 수입물가가 상승하여 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구로다 총재가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폭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 마치 소비자들이 디플레이션을 기대하여 소비를 지연시키는 소비행태처럼 장래 인플레이션을 예상하여 미리 앞당겨 소비를 할지는 의문시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 2% 달성은 정부 재정측면에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가상승률 2% 인상은 명목금리 2%인상을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QQE로 인한 국채의 이자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증가한 이자비용은 일본정부가 소비세 인상으로 거둔 세액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QQE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인 자산 가격상승도 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부의 효과로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자산 가격 상승이 부의 양극화를 야기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면, 이로 비롯된 경제주체들의 불안이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충격으로 갑작스런 자산버블이 터진다면, 소비의 급격한 침체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QQE가 궁극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2% 물가상승에, 자산버블의 붕괴로 초래된 경기침체가 덧붙여지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 물가가 예상대로 2%대로 오를지도 의문
물가가 예상대로 2%대로 오를지도 단정할 수 없다. 이는 물가상승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일본경제에 잠복해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와타나베 츠토무 동경대 교수는 지난 2013년 4월 시작된 QQE 시행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원인으로, 가격경직화 현상이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와타나베 교수는 <디플레이션기에 있어서, 가격의 경직화원인과 함의>라는 논문에서, 새케인즈학파의 메뉴비용이론과 유사한 가격경직화이론을 소비자물가상승 원인과 연계시킨다.
△ 제로근접품목의 가격 상승비중, 극히 적어
일본에서는 완만한 디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가격변동이 제로에 근접하는 품목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제로근접품목은 전년 동월대비 ±0.5%이내의 가격변동률을 보인 품목을 의미한다.
이러한 제로근접품목의 비중은 1995년부터 늘기 시작하여, 1999년 소비자 물가지수 구성품목 588개중의 55%로 증가하였다. 이후 2013년까지 제로근접품목의 이 비중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가격변동률이 거의 0%대에 근접하여, 가격이 사실상 고정되어 있는 현상은 일본중앙은행의 QQE정책 시행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즉 제로근접 품목의 가격경직성이 하락 혹은 상승품목에 비해 높았다.
2012년 12월 품목별 가격변화율이 제로인 품목에서, 14년 3월 상승한 비중은 16%에 불과하고 여전히 제로에 머문 비중은 79%였다. 반면 2012년 가격 변화율이 하락한 품목에서, 2014년 3월 상승비율은 48%를 보였다. 이는 제로 근접 품목의 가격변화율은 이후에도 여전히 제로품목에 머물렀고, 제로근접에서 벗어나 있던 품목은 상대적으로 가격변화율이 컸다는 의미이다.
△ 메뉴코스트 모델- 디플레이션기에 ‘가격인하예비군’ 누적
이러한 일본의 가격경직화 현상은 새케인즈학파의 메뉴코스트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제로에 가까우면 가격조정의 비용이 커지는 반면 이로 인한 수익증가는 크지 않아, 가격이 불변하는 품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메뉴코스트 모델은 디플레이션 기간(1995.1~2014.3)과 이전시점을 비교하여, 두 기간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제로근접 품목의 비중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하락한 디플레이션 기간에 그 이전 시기보다 크게 상승하였다. 반면 가격상승품목은 디플레이션 기간에 디플레이션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제로에 가까울 경우 가격불변 품목이 증가한다는 메뉴코스트 모델이 성립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메뉴코스트가 비대칭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물가상승기에는 가격 인상이 비례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디플레이션등의 물가 하락기에는 가격이 인하되지 않고 가격이 고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디플레이션 결과 실제가격이 적정가격을 상회하는 품목인 ‘가격인하 예비군’이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2016년도 2%물가목표 달성도 장담할 수 없어
실제가격이 적정가격보다 높은 품목의 비율이 높은 ‘가격인하예비군’이 누적되어 있는 경제 상태에서는 QQE정책등이 실행되어도, 가격인상이 이루어지는 비율은 매우 미미하게 된다.
즉 1%의 물가상승충격이 가해질 경우 가격인상비율은 0.2%p 혹은 이전과 동일하여 물가상승충격의 효과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QQE 시행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일본은행의 물가목표 2%를 크게 하회하는 상황은 이러한 가격경직화 현상에도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금년 2월 2.0%를 기록하였지만, 소비세율 인상효과 2%p를 제외할 경우 0%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QQE정책이 2% 물가상승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간 누적된 가격인하 예비군이 해소되어야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이는 2016년도 2%물가목표 달성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