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분기 통화유통속도는 2분기 통화유통속도인 0.74보다 낮아져 0.73을 기록하였다. 돈을 한 단위 늘려 증가하는 국민소득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명목GDP를 통화량(M2)으로 나눈 값인 통화 유통속도는 돈이 여러 사람 손을 거치게 되면 증가한다. 통화량을 늘려 돈의 회전속도가 빨라지면 명목국민소득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량을 늘려도 유통속도가 떨어지면 국민소득은 그것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준금리를 낮추어도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는 실제 경제지표보다 우리 경제주체들의 심리위축으로부터 비롯된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 불황형 흑자와 저출산·고령화
우선 우리나라가 불황형 흑자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수출 호조 때문이 아니라 내수부진으로 수입이 감소했기 때문에 경상수지가 증가하였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불황형 흑자는 저출산 고령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소년 비율은 줄고 베이비 부머 세대가 중장년층으로 접어든 현 시점에 투자보다 저축이 증가하여 경상수지흑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중장년층의 증가는 상대적으로 저축 증가를 가져온다. 중장년층이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과 노후에 대한 대비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탓이다.
반면에 유소년층의 감소로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유소년 감소로 주택에 대한 수요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저축이 증가하고 투자가 감소하자 경상수지가 지속적인 흑자를 초래하게 된다.
◆ 디레버리징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에 대한 예측도 경제주체들의 심리위축을 야기한다.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게 되고, 이로 인해 유효수요 감소와 경기침체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지난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의 완화로 가계대출이 106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29일 디레버리징 유도를 공식발표하였다.
장기 고정금리에 원금도 이자와 함께 분할 상환하는 대출 갈아타기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변동금리에 원금을 만기에 일시에 갚는 대출방식에서, 매월 원금과 이자를 갚는 대신 만기를 20년까지 연장하면서 저리의 고정금리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결국 당근을 주고 디레버리징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디레버리징은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도 금융위기이후 디레버리징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 양적완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현재 미국은 디레버리징이 마무리되는 단계여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로 금리인상의 출구전략을 가시화하고 있다.
디레버리징은 가계가 자발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높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는 우리나라의 금리인상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 대출자들이 자발적으로 미국 금리 인상 전에 디레버리징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결국 소비는 감소하게 되고, 이는 결국 전체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재정건전성
또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민간주체 심리 위축과의 관련성이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어, 정부가 기업과 가계로부터 징수하는 조세수입이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세수결손은 11조 1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입추경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는 국채 발행 대신, 예산을 쓰지 않는 불용액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 결국 재정지출이 감소하고 유효수요가 줄게 된다.
이와 같은 세수부족은 정부의 세수추계에 대한 과대평가에 비롯되었다는 분석도 있으나, 세수결손의 근본원인은 세수를 늘릴 실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 인상, 고소득자 세율 인상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부의 세수부족과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민간의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게 된다.
◆ 정책의 불확실성
무엇보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주체들의 심리에 자리 잡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공표하게 되면, 민간 주체는 이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정부가 그 정책을 번복하거나 발표한 내용과 다른 결론을 내리면, 주체들은 향후 소비 투자 의사결정을 유보하게 된다. 경제주체들이 정부의 향후 정책에 대한 예상을 할 수가 없어 민간 경제주체들은 투자 소비 의사결정을 보수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유일한 대안은 돈을 안 쓰고 들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 이번 연말정산 파동 뿐만 아니라,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철회도 주체들의 기대를 어긋나게 하고 있다. 고소득자의 건보료를 높이고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를 줄이는 개혁안의 중단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높여, 주체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접게 되고 비관적인 태도를 형성한다.
결국 민간 주체들의 낙관적인 경제 기대 심리가 위축된 것은 저출산 고령화등의 구조적 요인과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긍정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위의 구조적요인의 해결과 정책의 예측가능성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