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목표인가?”
이 질문에 그리스도인의 답은 무엇일까요?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은 우리의 생명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합니다.
칼빈에 의하면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은 그리스
도인들의 성화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의 생활 속에서 거룩한 사람으로 우리 자신이 성화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칼빈이 의미하는 성화
칼빈은 성화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자기 헌신으로 파악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을 거룩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성화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라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한 전제는 자신이 오염으로부터 깨끗이 씻김을 받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화란 세상을 버리고 육체의 오염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고 마치 제물처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순수하고 거룩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합당하게 그 분께 드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CO52,161)
따라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결국 성화는 하나님께, 거룩한 몸을 드리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자신을 드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헌신하는 삶이 성화의 삶인 것입니다.
◆ 거룩이란?
성화가 거룩한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거룩의 시작은 무엇일까요? 이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①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자신이 신이 아님을 부인하는 것
우선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가를 느끼고 깨닫기 시작한다.”(CO36,13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스스로가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의 능력은 자신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 17살의 다윗은 거인 골리앗과 맞서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17:45)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다윗은 이처럼 싸움의 무기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And everyone assembled here will know that the Lord rescues his people, but not with sword and spear. This is the LORD’s battle, and he will give you to us!”
이렇게 다윗은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것이라는 점을 외친겁니다. 즉 역경과 두려움과 싸울 때, 다윗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의지와 힘과 능력이 싸움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그 싸움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거인의 이마에 박혀, 3m에 가까운 골리앗이 땅바닥에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을 물리친 것은 다윗의 물맷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골리앗과의 싸움에 개입하시어 하나님의 이름이 그를 물리치신 겁니다.
이처럼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이 신이 아님을 부인하는 것이며, 자신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싸움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②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 be differnt, be set apart
또한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다르다, 분리되다’(be differnt, be set apart)는 의미입니다.
聖化 (sanctification)는 거룩하게 변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성서에서 거룩함은 근본적으로 속된 것으로부터의 구별을 뜻합니다.
거룩함을 가리키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kadosh’는 세속적에서 ‘구별한다, 끊어내다, 분리시키다’를 의미합니다.
신약성서에 235회에 사용되는 헬라어 ‘hagios’는 형용사‘holy’로 번역되는데, ‘다르다, 분리되다’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6:17a가 ‘하기오스’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고.” “Come out from them and be separate.”
이처럼 ‘하기오스’는 ‘그들과 떨어져 있으라’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3도 하기오스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러므로 너의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베드로전서1:13)
“Therefore gird up the loins of your mind, be sober,”(NKJV)
“Therefore, with minds that are alert and fully sober,”(NIV)
이 구절의 의미는 로마서 12:2의 의미와 유사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하라”(롬12:2)
“Do not conform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이처럼 ‘거룩하다’는 세상의 양식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이에는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세상의 정욕, 즉 소유와 권력을 향한 욕심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추앙받고자 하는 명예욕등을 내려놓은 것이 자기 부인의 기본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누가복음 9:23에서 자기부인, 자기십자가를 강조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Then he said to them all : ‘Whoever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daily and follow me.’”
이러한 자기 부인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통제하지 않은 상태에선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칭의는 전가를 통해, 성화는 부여를 통해 가능
성화는 거룩의 시작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칼빈은 우리가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거룩이 우리에게 주어짐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등을 통해 그(그리스도)는 이 거룩이 어떤 근원에서 흘러 나와서 복음의 교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가를 분명하게 설명한다. 그의 거룩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그는 아버지께 자신을 드리셨다. 첫 열매로부터 모든 축복이 모든 추수로 퍼져 나가듯이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거룩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며 우리를 이 거룩에 참여하도록 만드신다.”(CO47,385)
이처럼, 칼빈은 칭의와 성화를 얻는 방식을 명백히 구분합니다. 죄사함, 즉 칭의는 ‘전가’(imputation)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거룩한 백성이 되는 성화는 거룩함의 ‘부여’로 가능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대속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스스로 피를 흘리심으로 스스로 깨끗하게 되셨고, 그의 이러한 성결이 우리에게 부여됨으로써 우리는 성화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얻는 거룩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한없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성결의 부여의 수단은 말씀
우리의 거룩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성결이 선물로 부여됨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성결이 우리에게 은혜로 부여된 것은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어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거룩을 우리에게 부여하도록 한 수단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을 수단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거룩을 우리에게 부여하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칼빈도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 보호의 방법은 말씀에 달려 있는데 이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자마자 그는 우리 구원을 보존하는 수단으로서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신다.”(CO 48,472)
결국 그리스도의 성결의 부여의 수단, 곧 은혜의 수단은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 안에 은혜가 놓여 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약속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말씀은 그의 선하심에 대한 확신을 도출해내는 원천”(CO32, 281)입니다.
◆ 아버지 하나님의 부성애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믿는 것
성화는 성령을 통해, 거룩한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입니다.
이러한 거룩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진리의 말씀을 믿을 때 부여됩니다. 성령이 말씀의 순종을 가능하게 하고, 이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우리에게 부여됩니다.
특히 말씀을 믿는다고 할때 그 정수는 아버지 하나님의 부성애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체험할 때, 그리스도의 성결은 우리의 성결로 부여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거룩한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헌신할 때, 세상의 백성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성화됩니다.
<참고문헌>
이신열, “성화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칼빈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