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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QT

[ 말씀 QT ]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간구로 권능을 얻고 ( 고전 12장13절 )

성령세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령세례 표현이 언급되어 있는 고린도전서 12장13절의 해석을 두고,  구원의 경험, 교회공동체의 설립, 이 둘을 모두 부인등의 주장들이 상호 대립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구별되는가를 둘러싼 논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고린도전서 12:13을 구원의 경험과 교회 설립으로 이해하는 주장들을 모두 반박하고,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지합니다. 

이럴 때, 예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을 얻은 이들이, 힘든 환경에 부딪힐 때 쉽게 넘어지고 기쁨· 평강· 온유등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문제, 또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고린도전서 12:13을 둘러싼  성령세례 해석 논쟁 

성령세례에 대한 견해들은 고린도전서 12:13의 해석에서 명확히 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so as to form one body-whether Jews or Gentiles, slave or free-/and we were all given the one Spirit to drink.” (NIV)

①성령세례는 중생을 논하고 있다는 주장
성령세례는 성령의 내주(內住 :live in you)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구절이 중생할 때의 보편적 성령세례 경험을 표현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죄의 용서, 구원, 養子됨(adopted as his own children), 重生(rebirth, 새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남)등은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죄인들이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가 흘린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게 되면, 이들은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죄인들 속에 거하시게(內住 :live in you) 되는 겁니다. 

이러한 중생과 내주(중생과 내주는 동시에 발생)는 신자의 노력에 의해 의식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며, 의식 밑에서 홀연히 일어나는 신비스런 변화로 敎義학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성종)

즉,  양자됨과 중생은 신자들의 간절한 기도나 소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며, 신자들의 보편적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13절 상반절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음을 표현하였는데, 이는 누구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신자의 보편적 경험인 중생과 내주를 표현하는 문구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이 중생을 의미한다면,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구절에서의 ‘성령세례’는 회개와 중생을 뜻한다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성령세례가 중생을 뜻한다는 것은 사도행전 2:38,39절에서도 발견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하고”(2:38,39)

“This promise is to you, to your children, and to those far away – all who have been called by the Lord our God.”(2:39)  

이 구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령세례의 표현은 죄사함(38절)과 보편적 약속(39절)을 나타내고 있어,  성령세례를 중생과 내주로 해석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세례는 성령의 내주 곧 죄의 용서, 구원, 양자됨, 중생을 의미한다고 주장될 수도 있습니다. 

②성령세례는 유기체적 교회공동체를 논하고 있다는 주장
성령세례가 성령의 내주라는 주장과 달리, 교회론자들은 고전12장13절이 유기체적 교회공동체를 논하고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성령세례는 교회론적  연합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나용화)

13절 상반절의 ‘한 몸에 속하도록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여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며, 하반절의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선, 성령세례는 중생의 사건이 아니라 교회설립 사건으로 이해되어집니다. 

결국 교회론적 성령세례는 유기체적 교회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화목하고 통일을 이루어 한 몸 됨으로써 교회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교회를 성장시키며, 이에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넓혀간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③ 성령세례는 중생도 교회론적 연합도 아니라는 주장(오성종)
앞의 주장들과 달리, 성령세례는 중생도 그리고 교회론적 연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해석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2:38,39절에 근거하여 성령세례는 내주의 경험이라는 주장은   베드로의 설교인 2:14~39절 전체의 문맥을 이해할 때, 논박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강림에 대한 요엘의 예언을 설교하면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아 죄사함을 받고 나면 성령강림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약속(39절)은 성령내주의 은혜 받음이 아니라 성령강림의 은혜 받음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표현 그대로의 해석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 하는 것이 말씀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13절은, 앞의 교회론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게,  구원론적 의미의 성령세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 연합의 교훈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The Living Bible의 고전12장13절의 표현은  이 구절이 교회론적 관점의 해석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Each of us is a part of the one body of Christ .... But the Holy Spirit has fitted us all together into one body. We have been baptized into Christ’s body by the one Spirit.”

이 구절은 신자들 각자가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강조함으로써 교회의 한 일원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령세례 구절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지나친 해석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Each of us is a part of the one body of Christ .... But the Holy Spirit has fitted us all together into one body.”에서 의미하듯이, 13절은 성령세례를 정의하기보다 성령이 담당하시는 다양한 역할중 하나인 성도들의 연합과 통일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국 이 구절은 교회론적 연합의 교훈을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구절이 ‘성령세례=교회공동체’로 정의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지적입니다.    

결국 성령세례를, 고전12장13절에 근거해서, 중생의 관점에서 또는 교회연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력은 실패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세례의 의미

성령세례의 본질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성령세례의 용어보다 성령세례의 목적에 천착할 때 쉽게 발견되어집니다. 

성령세례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또는  유기체적 교회공동체 설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명은 사도행전1장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up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telling people about me everywhere-in Jerusalem, throughout Judea, in Samaria, and to ends of the earth.”

이 구절은 사도행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구절로 평가되고 있는데, 성령세례의 표현, 증거 그리고 목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나의 증인이 되리라’의 표현에 근거하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강림(the Holy Spirit comes upon you)을 의미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의 등식이 성립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에 따르면, 성령강림의 결과는 권능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권능을 받는 것’이라는 등식(a)이 이루어집니다. 

이어 ‘권능이 임하시면 나의 증인이 되리라’에 따르면, 권능이 임하심은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성령세례의 목적이,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그리스도의 증인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권능을 받는 것=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세례’(b)가 성립됩니다. 

결국 등식(a)와 (b)를 합하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권능을 받는 것=성령세례(c)’가 성립됩니다.

결국 등식(c)에 기초해 볼 때, 성령세례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며, 성령세례는 성령강림으로 표현될 수 있고, 성령세례의 증거는 권능을 받는 것이라는 점을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성령충만

그런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세례와 충만은 이미지에 있어 공통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권능을 받는 것은 성령충만의 영향이며, 성령충만의 목적 또한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이 점은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예수그리스도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증거하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4:8~10)

“Let me cleary state to all of you and to all the people of Israel that he was healed by the powerful name of Jesus Christ the Nazarene, the man you crucified but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4:10)(NIV) 

이 구절에서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 충만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권능을 받는 것=성령 충만=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d)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이 맥락에 의할 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권능을 받는 것=성령세례’(c)라는 등식과 ‘권능을 받는 것=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성령충만’(d)이라는 등식을 서로 연결하면, ‘성령세례=성령충만’이 성립합니다. 

이처럼 성령세례라는 표현을 성령 충만으로 어휘변용하는 것에는  그다지 무리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가 권능을 받는 것이며, 성령 충만의 목적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의미상 세밀히 구분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세례의 일회성, 입문성, 또는 최초성의 의미에 의지하여 최초의 성령충만을 받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에 반해 성령충만은 성령의 지속적인 재충만을 뜻합니다. 배터리가 소모되면 거듭 재충전되어야 하듯이 성령충만도 지속적으로 채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성종) 

종합하면,  ‘성령세례=성령충만=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 권능을 받는 것’이라는 등식(e)이 최종적으로 성립됩니다. 


◆ 역동적 성령 충만과 상태적 성령 충만(나용화)

성령세례를 의미하는 성령충만의 의미는 역동적 성령충만과 상태적 성령충만의 의미를 각각 파악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달리 말해 성령세례를 성령충만으로 변용한다면, 역동적 성령충만과 상태적 성령충만의 각각의 증거와 목적을 파악할 때, 성령세례의 의미는 명확히 드러납니다. 

①역동적 성령충만 
역동적 성령충만은 성령이 그리스도를 증거 할 목적으로 신자들 위에 임하여 이들에게 권능을 입혀 준 사건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의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일입니다.(행2:1~4)

또한 베드로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요엘을 인용한 내용에도 역동적 성령충만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2:19)”

“‘In the last days, God says,‘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young man wi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 And I will cause wonders in the heavens above and signs on the earth below – blood and fire and clouds of smoke.(NIV)”

이처럼 역동적 성령 충만을 얻는 이들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⑴역동적 성령 충만의 증거
역동적 성령 충만에 이른 자들은 내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 사건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예수의 위엄과 영광에 대한 경험에 의해 감동되는 사건(벧후 1:16,17)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역동적 성령 충만에 이르게 될 때, 은사적 증거가 나타납니다. 

즉 복음의 진리를 큰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포하게 되며(행2:4,14),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게 됩니다.(행2:12)  또한 기사와 표적들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행2:43)

이러한 은사(gift)에는,기능적인 성격으로, 섬기기(serving)·가르치기(teaching)·위로하기(encouraging)·구제하기(giving)·다스리기(leadership)등이 있습니다.(롬12:6~8) 또한 능력적인 성격으로, 병 고침· 방언 말하기· 능력 행함등이 포함됩니다. (고전12:28~31)

⑵역동적 성령 충만의  목적
역동적 성령의 충만을 받아 은사를 베푸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도베드로의 복음전도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담대하게 전파하고  권세 있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행4:8~12) (행28:31)

이처럼 은사받음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습니다. 

⑶역동적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한 방법  
역동적 성령을 받는 것은 초자연적인 구원의 은혜와 구별되는 것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은  성령의 은사를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고전 12:31)  은사를 갈망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이 내주하여도 기도하지 아니하면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복음전도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것은 기도 뿐이라는 겁니다.

②상태적 성령충만
상태적 성령 충만을 얻는 이들은 마음에 구원의 기쁨과 평강이 넘쳐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⑴상태적 성령 충만의 증거
상태적 성령충만에 이르게 되면, 우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이 샘솟으며 두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롬5:2,3)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찬양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육체적 소욕을 멀리하게 됩니다. 즉 음행(sexual immorality), 호색(lustful pleasuers), 우상숭배(idolatry), 분쟁(quarreling), 시기(jealousy), 분냄(outburst of anger), 당 짓는 것(selfish ambition), 분열(dissention), 술 취함(drunkenness)등의 육체의 욕망을 멀리합니다. (갈5:19~21)

신자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inherit the Kingdom of God)(갈5:21b)된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5:24).    

또한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에 지배된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즉 사랑(love), 희락(joy), 화평(peace), 오래 참음(patience), 자비(kindness), 양선(goodness), 충성(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절제(self-control)등의 열매(5:22,23)를 얻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상태적 성령충만의 증거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평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⑵상태적 성령충만의 목적 
상태적 성령충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유혹하고 참소하는 마귀와 대적하여,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그리고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사탄의 간계와 맞서 이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때 비로소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기쁨과 평강의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됩니다. 
 
⑶ 상태적 성령충만을 얻는 방법
상태적 성령충만은 단순히 성령을 사모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훈련에 의해 획득됩니다. 

이러한 훈련은 부단한 말씀묵상과 성령안의 기도를 통해, 마귀와 대적하여 자기를 죽이고 육신의 소욕과 싸워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달리말해 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갈2:20)을 말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구원의 은혜에 머물고 믿음의 훈련을 게을리 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여전히 육체의 소욕에 머무르게 됩니다. 


◆간구를 통해 권능을 얻고 

성령세례는 성령강림이며, 성령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못하고 평강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세례=성령충만=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성령강림= 권능을 받는 것’이라는 등식(e)이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등식에 의하면, 사도행전 1장8절에서 보이듯이, 성령이 신자위에 강림하시면 권능을 받는 가시적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신자는 이러한 체험과 함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사는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신자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평강을 얻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 하지 못하고,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성령세례=성령 충만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love), 희락(joy), 화평(peace), 오래 참음(patience), 자비(kindness), 양선(goodness), 충성(faithfulness), 온유(gentleness)등 성령의 열매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의 묵상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기도등 믿음의 훈련을 게을리 한 탓에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묵상과 부단한 기도등의 훈련이 없다는 것은 지속적인 성령충만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며, 성령충만이 없다는 것은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믿음의 훈련의 부재로 전신갑주를 입고 있지 않은 자들은 사탄의 먹이감이 됩니다.  마귀가 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툭 치기만 해도,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사탄이 열악한 환경을 이용하여 성령충만이 없는 이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능력 있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그리고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선, 신자는 성령강림·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받아 사탄과 맞서 이기는 권능을 얻어야 합니다. 

이러한 권능은  간구를 통해 받는 축복입니다.(오성종) 

누가복음 11장13절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So if you sinful people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NIV)    

종합하면, 성령세례를 덧입고 성령충만을 사모하여 지속적인 말씀묵상과 자신을 부인하는 기도를 드릴 때, 마귀의 공격과 간계를 물리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주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참고문헌>
오성종, “성령세례의 이해:교회사적 주석적 및 신약신학적 연구Ⅱ”
나용화,“성령세례와 충만에 대한 신학적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