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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베트남, 도이모이 개혁 개방] 북한, 도이모이를 벤치마킹 할 가능성 높아

 


2차 북미정상회담이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 북미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등이 핵심의제로 제시된 가운데, 북한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인 도이모이 개혁 정책을 벤치마킹 할지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이모이 개혁은 급진적 페레스토로이카 대신 등소평 식의 ‘체제유지 속의 개혁’을 도모하였습니다. 


대내적으로 국영기업의 사유화・ 가격자유화등으로 생산력을 제고하고, 대외적으로 해외자본을 유치하여 투자재원을 마련한 것입니다. 


결국 국가의 사회적 보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과 경쟁을 추진하여, 그 양자를 조화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도이모이 개혁 이전 베트남 경제


①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1976~1980)의 실패 :사회주의 비효율성- 노르마 제일주의 


베트남은 1975년 미국이 퇴각하여 남북 베트남이 통합된  이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SRV)으로 출발합니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1976~1980)은 생산양식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전국적으로 신속히 단행하면서 중화학공업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스탈린식 경제발전 전략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심적이었던 SRV경제개발계획은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중공업우선정책은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투자재원 부족과 낙후된 사회간접 탓으로 무모한 정책으로 판명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내재적인 비효율성이 실패를 유도하였습니다.  국영기업들의 노르마제일주의와 국가보조의 지속적 증대에 따른 재정적자의 누적 현상등이 경제실패를 초래한 겁니다.  


노르마제일주의란 국가의 계획경제의 한 부분으로, 각 생산단위들은  위로부터의 생산량 지시 또는 명령(노르마)에 의해 생산활동을 합니다. 이는 인민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아, 생산력 제고에 한계를 노출시켰습니다.


게다가 베트남의 당간부와 국가관료들의 경제능력의 부재도 경제실패의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이들은 전사로서는 유능했지만 경제인으로서 함량미달이었다는 분석입니다. 

이렇게 제2차 5개년 계획은 결국 1979년 여름에 사실상 중단됩니다.



②신경제정책


1979년 9월 베트남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제6차 총회는 제2차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스탈린식 사회주의 경제발전전략을 재고합니다.


그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입니다. 1982년 3월 베트남 공산당 제5차 당대회는 신경제정책에 입각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81-85)을 추인합니다.


신경제정책은 자원배분 우선 순위에서 농업 및 경공업발전을 중시하고 중공업건설을 뒤로 미루는 등의 정책조정을 행하였습니다.


특히 ‘국가, 집단 그리고 개인의 3자 이익의 결합’으로 표현된 신경제정책은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의 실용주의적 성향을 나타냅니다.


정책의 주요 내용에는 국가경제에서 사적 부문의 역할 증대, 노동생산성 증대를 위한 물질적 인센티브 도입, 남부 베트남 내 생산양식의 사회주의적 속도 완화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우선 농민들에게는 농지경작권의 부여와 초과생산물의 자유판매를 허용하는 생산물 계약제도 (Output Contract System)가 도입되어, 시장의 역할과 물질적 자극을 연결하였습니다. 생산물계약제도는 토지와 종자등을 사용하는 대가로, 할당된 곡물을 협동농장에게 제공하고 초과생산물은 자가소비나 자유시장판매를 위해 보유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서 다시 도입된 포전담당제와 유사합니다.


포전담당제는 주민들이 분조에서 생산한 곡물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잉여분을  배분받는 제도입니다.  국가가 가뭄등으로 약속한 이윤배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어, 농민들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포전담당제는 나름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개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③신경제정책의 문제 → 통제회귀정책 → 신경제정책의 소환, 도이모이의 등장


이와 같은 개혁조치에 따른 경제 활성화는 부작용이 수반되었습니다. 신경제정책의 유통통제완화로 인해 시장이 팽창하여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빈부격차등 농민간의 계층분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도부는 다시 통제정책으로 회귀하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1983년부터 사회주의 질서가 강화되어, 농업 집단화의 재강화, 농민 노동자의 초과수입 한도액등을 설정하는 통제정책이 실시되었습니다.


경제의 통제로의 회귀는 인플레이션 수습등 경제에 일정 공헌을 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베트남 경제는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대등으로 1985년에 이르러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1986년 12월에 열린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당대회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6~90년)기간 동안 신경제정책을 소환하게 됩니다. 이 정책이 ‘쇄신’ 혹은 ‘개혁’을 의미하는 ‘도이모이’(doi 변경, moi새롭다)입니다.



◆도이모이 개혁정책


1986~1990년의 제4차 5개년 계획에서 처음 등장한 도이모이정책은  등소평의 ‘체제유지 속의 개혁’(change with the system)에 가까운 개혁정책입니다.


도이모이의 추진세력은 베트남을 이끌었던 보수 이념파를 대신하여 새로운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구엔 반린을 위시한 실용주의 개혁파였습니다.


이들은 공산당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생산력을 높이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었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체제의 안정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책 접근은 중국식 개혁개방과도 흡사하고, 일당독재형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이 공존하는 싱가포르 방식 자본주의 체제와도 유사하였습니다.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동구나 소련이 몰락한 것은 경제제도와 정치영역을 동시에 자유화했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체제안정과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경제활력을 동시에 추구한 것입니다.



◆도이모이의 공헌


도이모이 정책의 핵심은  대내적 경제개혁,  대외적 개방의 동시 추진에 있습니다. 


①대내 경제개혁의 핵심- 국유기업  사유화


국유기업의 사유화는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국영기업은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보조금 수령등으로,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였습니다.


사회주의 국가 보조금 문제는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예산 제약 하에서 지출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경성예산제약과 달리, 연성예산 제약에선 기업은 사전적으로 예산 범위에서 운영하여도 사후에 보조금이나 채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연성예산제약이  과도하거나 비효율적인 투자성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산요소 부족 시 추가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정부기관으로부터 언제나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의 자력갱생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베트남 정부는 국영기업의 이 같은 폐해를 고치고자,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665개의 국영기업 중 2810개의 기업을 주식회사화, 매각 양도, 청산등으로 구조 조정하였습니다.


국영기업의 사유화는 주주의 등장으로 자력으로 자원을 충당하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적인 운영을 통해 효율적인 예산운용과 투자를 유도하여 기업의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연성예산제약의 탈피는 국가보조 감소를 통해 재정적자 축소와 국민복지를 높이는데 기여하였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②대내개혁의 핵심 – 가격 자율화


도이모이 개혁은  가격통제를 철폐하여 시장가격을 공인하였습니다.


사회주의에선 가격이 정치적으로 결정됩니다. 이는 가격기능의 상실이라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가격은 어떤 재화가 희소한지 정보를 경제주체에게 알려줍니다.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면 그 재화의 생산은 늘고 가격이 하락한 재화의 생산은 감소하게 됩니다. 생산이 감소한 재화에 대해서는 점점 더 적은 양의 자원이 사용됩니다.  이로 인해 희소한 자원 중 얼마만큼이 각 재화 생산에 사용될지가 가격에 결정됩니다.


사회주의는 이 같은 가격의 신호효과의 상실로 인해 만성물자부족, 투자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전력 연료등 일부 품목 외 대부분에 대해 가격통제를 철폐하였고 쌀 배급제도를 폐지하여 시장가격을 공인하였습니다.


③ 대외 개방 – 해외 자본 유치로 투자재원 확보


도이모이 시행으로 베트남은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통해 해외자본을 유치하고있습니다.


베트남은 개방 초기(1986~94)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하여 국가투자협력위원회를 설치하는 한편, 외국인 투자 사업은 국유화 하지 않는다는 법규 신설로 외투 자본의 보호를 명문화하였습니다.


또한 1991년 수출가공구(Export Processing Zone)를 법제화하여, 탄투언(Tan Thuan)에 소프트 웨어, 하이테크, 기계, 섬유, 플라스틱, 의료장비를 육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도이 모이 정책의 출범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투자법」 채택이 자본주의권의 투자를 이끌지는 못한 것입니다. 원인은 미국의 경제제재였습니다.


게다가 구소련의 원조감소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베트남은 개혁을 위한 재원 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베트남의 대외개방의 기폭제는 대미관계 개선이었습니다.


1991년 캄보디아 평화협정을 계기로 1992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의 경제제재가 해제되자,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금융지원이 재개되었고 외국인직접투자가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은 이러한 해외자본 유치로,  1999년 띠엔선(Tien Son) 산업단지를 시작으로 전자제품조립, High-Tech 전자제품, 기계제조업을 육성합니다.  2002년엔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SHTP)를 설립하여 전자정보 기술, 정밀공학, 자동화, 생명공학기술, 신소재, 신에너지, 나노기술을 집중 육성합니다.


이처럼 베트남은 대미관계 개선과 해외 투자유인 제공을 통해 경제문제를 적절히 타개하는 개혁개방 모형을 제시하였습니다.



◆도이모이 성공의 배경


베트남은 도이모이 개혁 개방 이후 6~7%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혁 개방초기(1986~1994)에 연평균 6.1%, 중기(1995~2007) 7.3%, 장기(2008~2016) 5.9%등의 높은 성장률은 도이모이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이모이 성공의 배경으로, 지도부가 내부적으로  실용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가격 자유화・ 국영기업 사유화등의 개혁을 주도하고, 외부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외자도입을 추진하여 개혁과 성장의 재원을 마련했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해외 베트남 교포들의 본국 송금액, 그리고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활용하여 경제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였습니다.



◆ 북한과 베트남의 개혁개방 배경의 유사점


북한이 경제성장을 위해 베트남의 도이모이 개혁개방 정책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 도입 시점의 대내외 상황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북한에는 베트남의 도이모이 지도부와 유사하게, 김정은 위원장이 실용주의적 개혁 사고로 개혁개방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또한 대외의존의 비중이 높은 북한은 해외투자유치로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투자재원의 부족으로 성장에 제약을 겪었던 베트남의 도이모이 초기 단계 상황과 흡사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베트남이 개방초기에 미국제제로 인한 어려움에 직면하였듯이,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난을 겪고 있습니다.


때문에 베트남의 도이모이 개방정책에 활로를 열어 준 매개가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제재 해제였듯이, 북한의 난제에 대한 해법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제재 해제입니다.


결국 북한은 미국과의 상호신뢰에 기초하여 비핵화 프로세스를 능동적으로 전개할 때, 베트남 경제 개방 개혁 모델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의 결과물로 예상되는 경제제재 완화와  ODA, FDI를 경제 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참고문헌>
양운철(2011), “베트남 도이머이 정책의 북한적용 가능성”
이해정외(2018),“베트남의 개혁 개방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
전상인(1995),“북한과 베트남의 개혁 개방 비교연구”
원용찬(1998),“동아시아 사회주의의 개혁모델과 북한 경제구조의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