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적치유란? 내적치유는 상한 마음의 정상적 회복 또는 어두운 그림자를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① 상한 마음의 정상적 회복 내적치유(inner healing)의 ‘내적(inner)’은 내부적인 것, 곧 마음의 작용에 관한 것이며, ‘치유(healing)’는 한 인간의 영적, 혼적, 신체적, 질병 또는 정상적이지 않는 불편한 것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내적 치유란 과거의 고통스럽고 어두운 기억이나 사건으로 인한 상한 마음(마음의 상처)으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상한마음에는 거절당함, 자기연민, 절망, 죄의식, 두려움, 슬픔, 미움, 분노, 열등감, 낮은 자존감, 수치, 정죄의식, 자신이 무익한 존재라는 감정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건강한 마음의 회복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적치유는,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뿌리 깊은 상한 감정들을 제거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상적인 모습은 단순히 병들기 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정상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② 어두운 그림자를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것 상한 마음의 치유는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어두운 그림자, 즉 불행한 삶의 운전사를 찾아내어 몰아내는 일”에 해당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내적치유는 쓴 뿌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상한 마음은 쓴 뿌리같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상처로 인하여 부정적 감정이 깊이 뿌리처럼 박혀서 자라고 그것이 사람을 괴롭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상한 마음이 쓴 뿌리 같은 이유는 이러한 상한 마음을 몰아내는 일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상한 마음은 사탄이 약한 심령을 이용하여 마음을 지배하여 나타나는 것인데, 이러한 사탄의 올무에 걸린 상한 마음은 하나님의 영이 역사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적 치유는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운전자를 우리 마음에서 제거하는 일입니다. ◆ 치유의 역사 ①구약에 나타난 치유의 역사 구약에서 하나님께선 당신 스스로를 ‘치유자’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이름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 라파”입니다. 이는 치유의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3:25는 치유자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Worship the Lord you God, and his blessing will be on your food and water. I will take away sickness from among you,” 또한 민수기 12:13은 모세가 하나님께 치료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So Moses cried out to the Lord, ‘Please, God, heal her!’” 이러한 기도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② 신약에 나타난 치유의 역사 신약에서 치유는 예수님의 치유사역과 관련됩니다. 마태복음 8:16b-17은 치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신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and he drove out the spirits with a word and healed all the sick. This was to fulfill what was spoken through the prophet Isaiah: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bore our diseases.” ◆ 내적상처의 원인 : 자아의 성숙도 정도가 내적 상처의 정도를 결정 내적상처는 어떠한 직접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것일까요? 상담과 치유에 관한 여러 책(“Understand leadership”등)을 서술한 Tom Marshall은 이를 아래 여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감정상의 충격은 마음의 상처를 남깁니다. 여기서 감정상의 충격에는 사별, 결혼 실패, 사고, 지위상실, 건강등이 포함됩니다. 둘째,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지냈을 때, 마음의 상처가 생깁니다. 잦은 집안의 불화, 심한 잔소리, 엄한 권위적 양육등이 심한 스트레스가 되어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셋째, 꼭 채워져야 하는 필요가 어느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만 좌절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넷째, 자신이 세운 목표를 충분히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외부환경이나 다른 사람 때문에 좌절되었을 때 원망과 분노의 적대감이라는 쓴 감정이 생깁니다. 다섯째, 계속되는 두려움이 되는 일을 접해야하는 상황이나 또는 장기적으로 자신의 기본적인 자화상이 건드려지는 일이 생길 때, 불안과 긴장이란 내적상처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섯째, 자신 안에 있는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을 저질렀을 때의 죄책감은 고질적인 병처럼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원인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지만, 실제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성숙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는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보다도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성숙한 반응에 좌우된다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어서 상황을 잘 해결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부정적인 사건 일지라도 상한 마음을 갖지 않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새겨집니다. 결국, 자아의 미성숙과 그로 인한 자기해결 능력의 결여가 마음의 상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미성숙’이란 성경적인 시각 혹은 하나님의 관점이 결여된 상태‘를 말합니다. 건전하고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의 상처에 능동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이 가진 인간적 잠재능력 뿐만 아니라 영적인 능력까지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신앙에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만 부정적 사건에 직면하다보니 마음의 상처를 쓴 뿌리로 남기게 됩니다. ◆ 치유의 전제는 믿음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마음의 성숙도가 낮다면 마음에 상처가 깊이 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있어 마음의 성숙도가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그가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치유의 전제는 믿음이라고 단언하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가복음 5:34은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sozo)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healed you. Go in peace and be freed from your suffering.’”(NIV) 여기서 구원은, NIV의 표현에 따르면, 치유를 말합니다. 야고보서 5:15에서도, 구원은 치유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And the prayer offered in faith will make the sick person well.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이처럼 구원 곧 치유(헬라어 sozo: 구원 치유하다)는 본인이 품은 믿음의 열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본인의 믿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병을 낫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5:17~25에서처럼,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1~10에서도, 주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하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7:7) “Bu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7:7b) 이처럼 믿음이 치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 내적치유의 과정 믿음이 구원 곧 치유를 가능하게 할 때, 치유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 질 수 있을까요? 이는 내적치유의 핵심으로 꼽히는 과거 사건의 재조명에 의해 가능하게 됩니다. ① 내적치유의 핵심 : 사건의 재조명과 관점의 변화 내적치유의 핵심은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하여 관점을 변화시키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재조명이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어떤 사건을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건과 상황에 지배되지 않고 사건을 재조명한 대표적 성경의 인물이 요셉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과거 불행했던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은 형들에 의해 죽을 위기를 경험했다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인정을 받아 살만 했는데, 이번에는 백부장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은 형들의 시기 질투 미움을 받아 죽음의 위기까지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상처를 준 형들에게 의외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서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창세기45장 7-8절에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렇듯 요셉은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사건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 치유를 경험한 것입니다. ② 나의 상한 마음을 그리스도께 이전하기 내적치유란 상한 마음을 초래한 과거의 사건이나 어두운 기억들에 대해, 성경적 관점을 갖도록 재조명하여, 상한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조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재조명은 단순한 지식적 이해를 통해서 행해지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 성령의 임재 안에 있는 것(요14:16,17), 예수 안에 속하는 것(요15:5)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참여하여,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예수 안에 속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에 죽는다는 것은 나를 속박한 주체들을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뜻입니다. 우상· 나의 지식· 경험· 습관· 자아· 의지· 상한 감정등 나를 옭아맨 주체를 주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상한 마음을 그리스도께 넘겨 드리는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 열등의식, 멸시당함, 거절당함, 수치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이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한 마음의 이전은 치유와 교환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수치를 그리스도께 넘겨드리고,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수치와 경멸과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우리는 수치에서 나음을 교환받게 됩니다. 즉 이사야 53:3에서 우리는 당한 멸시를 그리스도께 넘겨 드립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He was despised and rejected by mankind, a man of suffering, and familiar with pain. Like one from whom people hide their faces he was despised, and we held him in low esteem.” 이에 따라, 이사야 53:4,5절에서, 상한 마음의 허점을 노리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사탄에서 해방되어 나음을 얻게 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어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Surely he took up pain and bore our suffering, yet we considered him punished by God, striken by him, and afflicted.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n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이렇게 우리의 상한 마음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께 이전할 때, 그리스도가 당하신 상처로 인해 우리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상처를 몸소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 곧 치유를 얻는 겁니다. 이러한 치유는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가져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을 가진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는 겁니다. ◆ 내적치유는 성령의 역사 사건의 재조명과 관점의 변화는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생겨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신자를 낙담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신자의 연약함에 대해 로마서 8:26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through wordless groans.” 여기서 연약함이란 질병등 육체적 약함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연약함을 말합니다. 성령은 믿음의 부족으로 연약해진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도우시나니’로 번역된 헬라어 ‘쉬난티람바네타이’는 ‘~와 함께’란 의미의 전치사 ‘쉰’과 ‘돕다’라는 의미의 ‘안틸람바노마이’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함께 가담하여 열심히 돕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돕다’란 단순히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함께 짐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압박하는 짐의 일부를 감당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친히 간구하심’등의 성령의 도우심이란 성령이 자신을 낮추어 몸소 간구하신다는 뜻이라기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기도를 하도록 이끄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우리는 믿음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심에 따라, 우리가 믿음의 전사로 거듭나게 되어, 우리는 상처를 치유받고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성령충만= 말씀충만하여 믿음이 충만해 질 때, 상한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으로 회복되게 되는 겁니다. <참고문헌>김홍애, 「내적치유의 목회적 적용」, 고신대 선교대학원 석사논문강영애, 「내적치유에 대한 선교 상담이론과 실제」, 총신대선교대학원 석사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