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은 단순한 사회적 집단을 넘어, 인간의 복수성(plurality)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공동세계를 유지하고 형성하는 역동적이고 정치적인 실체를 의미합니다.
아렌트의 공동체 개념을 핵심 요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복수성 (Plurality/Distinction)
①복수성이란?
공동체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각 복수성(고유성)을 존중하여 소통하면서 형성됩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복수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소통하며 형성됩니다.
여기서 아렌트가 말하는 "복수성(Plurality)에서 '복수'(複數)는 단순히 '인간들'(human beings)의 의미를 넘어 인간조건의 복수성을 가리킵니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들은 다름과 동등성이라는 두가지 인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복수’의 인간들은 대체 불가능한 개별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름을 드러냅니다. 즉 인간들이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unique individuals)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복수'의 인간들은 서로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동등(equal)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함께 행위할 수 있는 동등한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동등성은 협치의 전제가 됩니다.
결국 아렌트의 '복수성'에서 '복수'란, 사람들이 동등하면서도 '다수의 고유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간 조건을 의미합니다.
②‘같으면서 다르다’의 정치철학
이처럼 아렌트의 복수성(plurality)은 단순히 “여럿이 있다”는 양적 의미를 넘어서, "같으면서 다르다"는 인간 조건의 본질적인 이중성을 담고 있습니다.
‘같으면서 다르다’의 정치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같음(equality)’이란 인간이라는 종(species)의 동등성을 말합니다. 여기서인간이 같다는 의미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 그리고 정치적 참여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같음’은 아렌트가 말하는 공적 공간에서의 대화와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로써, 정치의 필요조건입니다. 만약 대화의 일방이 보다 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대화는 일방의 생각이 강요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대화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다름(distinction)’이란 각자의 고유성과 유일무이함을 말합니다. 인간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가 각각의 관점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아렌트에게 있어 '다름'은 정치의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동질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정치는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사람들이 ‘말과 행동’으로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드러내고 이러한 관점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는 원래 개별인간들이 충돌하는 관점들의 집합체이지만, 상호 조정을 통해 共同體로 거듭나게 됩니다.
결국 복수성은 ‘같으면서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두 인간이면서 누구나 같은 인간은 없다는 인간조건을 의미합니다.
◆공적 영역 (Public Realm)에서의 말과 행동
이러한 복수성이 실현되는 공간은 사이공간(space in-between), 즉 공적영역(public realm)입니다. 여기서 공적영역이란 공개성과 공통성을 속성으로 하여,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공통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공간을 말합니다.
즉 개인은 사람들이 모여 말하고 행동하며 공동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공적영역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타인에게 드러내며 타인의 시선과 반응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받습니다.
이처럼 복수성은 인간들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인식됩니다.
결국 공적 영역은 공동체라는 ‘공연’ 및 ‘관계’를 탄생하게 하는 필수적 ‘무대’를 말합니다.
◆공동 세계 (Common World)의 구축과 유지
공동 세계란 개별자들의 주관적 관점이 모여 형성하는 객관적이고 공유된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공적영역의 속성인 공통성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
즉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 세계를 매개로 연결되고 소통되는데, 공동세계는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공간을 말합니다.
이처럼 공동체는 공적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 세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며,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 충돌을 조정을 통해 공동체 형성
공적 영역에서 고유성을 가진 개인들의 상호작용은 필연적으로 충돌과 갈등을 초래하지만, 이는 공동체의 역동성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구축 유지되기 위해선 충돌을 폭력적으로 억누르지 않고 조정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 아렌트의 공동체 요약
정리하면, 아렌트의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우선 정체성의 관점에서, 공동체는 미리 주어진 동질적 집합체가 아니라, 고유성(다름)을 기반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 및 정치적 실체를 의미합니다.
과정의 관점에서, 공동체는 충돌과 조정을 통해 역동적으로 구축되고 재창조되는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
목적과 관련하여, 공동체는 공동 세계를 통해 개인의 고유성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자유를 실현하는 관계망입니다.
결국 아렌트에게 공동체란, 인간의 다름(고유성)을 바탕으로 공적 영역에서 말과 행동으로 개인들이 상호작용하여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관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