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는 서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런데도 하나의 경기가 성립하는 이유는 모든 선수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심판과의 친분을 이용하거나 반칙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경기가 아닙니다. 경쟁은 남아 있지만 협력의 질서는 무너진 것입니다.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 존 롤스가 말한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fair system of social cooperation)’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정한 규칙과 제도라는 안전판 위에서, 각자의 삶과 이익을 좇아 교환하고 연대하는 사회적 상호작용 체계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말의 핵심은 공정성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하고 투자하며 소비합니다. 기업 역시 이윤을 위해 생산하고 고용하고 경쟁합니다. 국가는 이 과정이 가능하도록 재산권·계약·교육·사법·행정·시장질서라는 기본적인 제도 틀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롤스에게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 아래에서 이익을 추구하는가”입니다. 국가는 재산권·계약·교육·사법·행정·시장질서라는 기본적인 제도와 규칙의 틀을 유지하여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상호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합니다. 투자가 성공하면 회사와 주주가 이익을 얻고, 실패하면 그 손실도 함께 부담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투자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나 세종메디칼에서는 그 상식이 뒤집혔습니다. 회사를 움직인 세력이 장기 위험은 법인에 남긴 채, 호재가 시장에 반영되는 순간 보유 지분을 처분해 먼저 빠져나가고 최종 손실만 일반주주에게 떠넘겼습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 구주 약 63억 원과 전환사채 약 50억 원, 합계 약 113억 원을 인수했습니다. 이 투자는 세종메디칼 법인의 자금으로 이뤄졌고, 장기적인 사업 위험도 회사 안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경영권 인수에 참여했던 주요 투자조합들은 제넨셀 임상시험계획 승인이라는 호재가 알려진 직후 이틀에 걸쳐 세종메디칼 지분을 집중 매도했습니다. 지배세력의 대량 매도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제넨셀 임상은 중단됐고, 세종메디칼이 취득한 제넨셀 지분은 전액 손상 처리돼 투자자산의 장부가액은 '0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챙겨 떠난 뒤, 투자 실패와 자산 훼손, 거래정지와 상장폐지라는 치명적 비용은 법인과 잔류 주주에게 온전히 집중됐습니다. 이는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
[ 기사 요약 ] 1. 문제의 핵심: 투자 결정과 위험 부담의 분리 정상적인 투자의 기본 원리는 의사결정과 위험부담의 결합입니다. 투자로 이익을 얻는 자가 실패의 위험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세종메디칼 사건은 상장회사의 지배구조 안에서 이 원리가 어떻게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 구주와 전환사채 인수에 약 113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이 대규모 위험은 세종메디칼 '법인'의 자금으로 선택되었습니다. 반면 경영권 인수에 참여했던 주요 투자조합들은 제넨셀의 임상시험계획 승인이라는 단기 호재가 터지자마자 자신들이 보유한 세종메디칼 지분을 대량 매도했습니다. 지분을 현금화한 통제권자들은 위험에서 유유히 이탈했지만, 훗날 제넨셀 임상이 좌초되며 발생한 63억 원(구주)의 전액 손상과 잔여 위험은 고스란히 회사와 일반주주들에게 버려졌습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닙니다. 회사의 돈으로 위험을 선택한 자와 그 최종 실패 비용을 떠안는 자가 완벽하게 분리된 '위험의 외부화(약탈적 엑시트)' 구조에 있습니다. 2. 단기적 수급 충격과 장기적 위험 독박 세종메디칼의 주가 급락과 제넨셀 투자 실패는 시간적, 원인적으로
◆ 말러를 잊게 만든 두 협주곡 — 예술의전당에서 들은 대비의 밤 9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정작 타이틀롤을 차지한 말러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관객이 말러 교향곡 1번 '타이탄'을 기대하며 자리를 잡았겠지만, 이 밤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1부에서 나란히 연주된 두 협주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명한 대비였습니다. 두 협주곡은 모두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기 협주곡이지만, 같은 무대에 나란히 놓이자 오히려 서로 다른 협주곡의 문법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주자 한 사람의 기량과 카리스마가 음악의 중심을 장악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앙상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말해 전자는 비르투오소의 협주곡이었고, 후자는 교향악적 협주곡의 전형이었습니다. ◆비르투오소적 협주곡 vs 교향악적 협주곡 비르투오소적 협주곡과 교향악적 협주곡의 두 경향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서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
1. 공연 개요 9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공연은 말러 교향곡 1번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1부에서 연이어 연주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협주곡이지만,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차이콥스키에서는 독주자의 기량과 카리스마가 음악의 중심을 강하게 차지했고, 라흐마니노프에서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역할을 교환하며 하나의 거대한 앙상블을 만들어갔습니다. 2. 비르투오소적 협주곡과 교향악적 협주곡의 대비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주 바이올린의 존재감이 강하게 부각되는 비르투오소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바이올린은 긴 선율과 빠른 패시지, 도약과 카덴차를 통해 음악의 전면에 서며, 독주자의 기량과 개성이 작품의 인상을 크게 좌우합니다. 반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보다 긴밀하게 얽힙니다. 피아노가 언제나 주선율을 독점하지 않고, 오케스트라가 선율을 노래할 때 이를 화성적·리듬적으로 떠받
[기사 요약 ] 1. 개요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는 투자자의 자기자본보다 큰 단일종목 가격위험을 파생상품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상품입니다. 투자자는 일반 ETF를 사듯 상품을 매수하지만, 펀드 내부에서는 현물주식과 총수익스왑(TRS) 등을 결합해 순자산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일일 가격노출을 형성합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상승장에서 수익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급락장에서는 순자산 감소와 담보·정산 부담, 일일 리밸런싱, 투자노출 축소가 연쇄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금융회사는 자신이 부담하는 시장위험을 헤지와 담보로 관리하는 반면, 확대된 시장위험의 최종 손익은 투자자의 순자산에 귀속됩니다. 따라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의 책임 문제는 단순히 “투자자가 스스로 선택했으니 개인 책임”이라는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에게 선택의 책임이 존재하는 것과 별개로, 자기자본을 넘어서는 위험을 일반 개인에게 손쉽게 제공하도록 상품을 설계하고 유통한 금융회사에도 별도의 책임이 존재합니다. 2. 주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어떻게 투자자의 1억원을 2억원의 가격위험에 노출시키는지 살펴보고, 급락장에서 손실·담보·정산·리밸런싱이 어떻게 이
김씨에게는 1억원의 여유자금이 있습니다. 반도체 업황의 상승을 확신한 그는 2억원을 투자하고 싶었지만, 마이너스통장 한도까지 소진해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김씨의 베팅은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가진 돈 1억원이 투자 규모를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금융시장이 김씨에게 우회로를 제시합니다. “1억원만 투자하십시오. 돈을 더 빌리지 않아도 2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슷한 가격노출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김씨는 주가 상승을 확신하고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를 매수했습니다.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 역시 두 배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들었지만, 눈앞의 ‘2배 수익’ 기대에 가려 그 위험은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시장이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정점을 찍었던 주가가 급락하자 김씨의 원금 1억원은 2억원에 가까운 가격노출을 기준으로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그제야 김씨는 자신이 떠안은 위험의 크기를 실감합니다. “나는 대출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주가변동에 대한 위험만 놓고 보면 내 돈 1억원으로 2억원을 베팅한 것과 비슷한 위험을 지고 있었구나.” 물론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실제 대출투자와 완전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 논란의 핵심은 단순한 ‘고위험·고수익’이 아니라 파생상품 위험의 소매화에 있습니다. 투자자는 일반 주식처럼 ETF를 손쉽게 매수하지만, 펀드 내부에서는 총수익스왑(TRS) 등 파생상품이 작동해 자기자본의 두 배에 이르는 시장위험을 부담하게 됩니다. 반면 상품을 설계하고 유통한 금융회사는 헤지와 담보를 통해 자신이 부담하는 위험을 줄이고, 거래 제공의 대가로 금융비용과 스프레드·수수료를 얻습니다. 개인은 확대된 시장위험을 떠안고, 금융회사는 자신의 위험을 관리하면서 수익을 얻는 구조적 비대칭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규모 손실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기 전에, 개인의 자본 제약을 파생상품으로 우회해 자기자본보다 큰 위험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상품을 설계하고 유통한 금융회사의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 1억원이 어떻게 2억원의 위험이 되는가 앞서 말한 ‘파생상품 위험의 소매화’가 실제로 어떤 구조인지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우선 투자자가 1억원을 넣은 가상의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는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자 순자산: 1억원 삼성전자 현물: 5000만원 현금·국채: 5000만원 삼성전자 TR
1. 개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손실을 투자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책임의 전체 구조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투자가 자신의 판단으로 매수 버튼을 눌렀다면 그 선택과 손실에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투자책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상품을 허용하고 설계하고 상장·유통·감독한 정책당국과 금융기관의 책임까지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와 ‘오직 내게만 책임이 있다’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권력·오인·상징폭력은 개인책임이라는 부분적 사실이 어떻게 전체 책임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상식으로 굳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울리히 벡의 ‘조직된 무책임’은 여러 제도적 주체가 함께 위험을 만들어 놓고도 위험이 현실화되면 책임이 분절되면서 최종적으로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를 설명합니다. 2. 개인책임과 제도책임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목적과 손실 감내 능력, 상품에 대한 이해 수준, 매수·보유·매도 판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위험한 상품을 샀으니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판단은 타당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곧바로 “내가 직접 샀으므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고, 상품을 허용하고 설계한 다
낭떠러지 앞에 ‘급커브 주의’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도로의 굴곡은 지나치게 심하고 경사는 가파릅니다. 차량이 튕겨 나갈 때 막아줄 안전난간은 종잇장처럼 얇습니다. 그곳에서 차량 사고가 났다면 책임은 운전자에게만 있을까요. 운전자가 과속했거나 경고를 무시했다면 운전자의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안전운전 안내문을 읽게 했다고 해서 도로 관리자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팻말의 존재와 상관없이, 부실한 도로 설계와 안전시설에 대한 관리자의 책임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 상황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투자자가 매수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은 개인의 투자 판단과 손실 책임을 증명할 뿐입니다. 그것이 고위험 상품을 시장에 허용하고 설계하며 유통한 정책 당국과 판매사의 제도적 책임까지 배제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투자자 네가 매수 버튼을 눌렀으니 네 책임”이라는 말은 절반만 진실입니다. “네가 샀으니 네 책임”이라는 명제를 무기 삼아 “그러니 다른 누구의 책임도 없다”는 결론으로 직행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 아닙니다. 위험을 허용하고 설계한 주체의 책임을 지운 채, 손실의 비용을 마지막에 버튼을 누른 개인에게 몰아넣으려는 권력의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 완화를 요구한 것은 단순한 세율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좌파진보 진영이 오랫동안 내세워 온 ‘토지공공성’이라는 정치적 정체성을 스스로 후퇴시키는 행위라는 비판을 낳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이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1주택 종합부동산세의 거주·비거주 구분을 없애 달라고 정부에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이번 수정 시도는 부동산 민심을 반영한 정책 조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토지공공성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본질은 달라집니다. 정부의 원래 세제개편안은 부분적으로 진보좌파의 토지 개념에 조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지주의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오래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토지에서 얻은 이익을 우대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조지주의적 방향을 담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수정 요구는 그 ‘반쪽 조지주의’를 다시 후퇴시키는 방향입니다. ◆ 조지주의 (地公主義) 헨리 조지의 토지사상, 곧 지공주의(토지는 공공의 것)를 한국 부동산 현실에 적용하면, 국가는 실거주 여부나 보유기간과 관계없이 토지에서 발생하는 경제지대에 일관되게 과세해야 합니다. 따라서 ‘1세대 1주택 실거주’나 ‘장
1. 개요 더불어민주당의 2026년 부동산 세제개편안 수정 요구는 단순한 종부세·양도세 조정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오랫동안 내세워 온 토지공공성이라는 정치철학과 실제 정책 선택 사이의 일관성입니다. 민주당은 1주택 종합부동산세에서 거주·비거주 구분을 없애고 비거주자의 부담 증가를 완화하는 방향을 요구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부동산 민심을 반영한 정책 조정이지만, 토지공공성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원칙을 정치적 부담 때문에 후퇴시키는 것인지가 문제로 남습니다. 2. 핵심 문제 — 토지공공성은 원칙인가 정치적 수단인가 토지공공성을 진정한 정치철학으로 받아들인다면 민심이 좋을 때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리할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경제지대를 공동체가 환수해야 한다는 원칙이 옳다면, 세 부담이 커져 조세 저항이 발생했다고 해서 그 원칙 자체가 달라질 이유는 없습니다. 반대로 개인의 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를 토지공공성보다 더 중요하게 보겠다고 판단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철학적 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비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만 선택적으로 완화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동산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