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할 때,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해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죄는 신자들 안에 여전히 거주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죄는 단지 지배력을 잃을 뿐이지 성도의 내면에 죄의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는 매일매일 유혹을 부르는 죄의 세력과 싸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싸움의 무기는 승리에 대한 확신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죄에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은택을 ‘이미’ 공급‘받았다’는 결정적 성화로부터 비롯됩니다.
◆ 성화란?
성화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이르게 될 때까지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변화는 마치 곡식가루 반죽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는 것 처럼, 성질을 좋게 변화시킨 발효적 변화와 유사합니다.
즉 거룩한 변화는 생각과 마음이 바뀌는 ‘전향’으로부터 시작하여 옛날의 자기를 죽이는 ‘변용’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비상’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자기를 죽입니다(mortificatio). 이어 자기를 죽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납니다(vivificatio).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결국 성화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거룩한 변화인데, 그리스도인이 옛날의 자기를 죽이고(mortificatio) 그리스도의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vivificatio)을 말합니다.
◆ 그리스도와의 연합 → 성화
그런데 mortificatio과 vivificatio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교제와 연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즉 칼빈은 “우리가 그 자신과 하나로 결합되기 전에는 그가 소유한 것이 우리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신자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머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을까요? 칼빈은 가장 먼저 성령의 사역을 언급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성도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 위해 성도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좀더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가 먼저 자신을 성도에게 접붙이시어 성령으로 역사하여 신자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에게 접붙이시고, 신자는 그리스도의 은택을 받아 누리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성화의 출발은 결국 그리스도의 성도에 대한 긍휼과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로 인해 성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
칼빈은 성화를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결정적 성화는 칭의의 사건과 함께 이미 결정적으로 일어난 성화를 말하며, 점진적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점진적으로 구체화되어야 할 과정으로서의 성화를 말합니다.
① 결정적 성화
결정적 성화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죄에 대하여 이미 단번에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의 성화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단회적으로 이미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 성화는 ‘이미(already) 일어난’ 성화로 불립니다.
여기서 ‘이미’의 의미는 성도들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죄에 대해 죽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we who died to sin)라는 로마서 6:2의 말씀처럼, 성도는 죄의 지배에서 ‘이미’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방된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이미’ 죄와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제 죄와 죽음의 세력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 곧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 됩니다.
따라서 칼빈은 성화를 ‘과거’나 ‘과거완료형 시제’로 묘사함으로써, 신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하게 된 존재로 이해합니다.
② 점진적 성화
점진적 성화는 결정적 성화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구체화되고 현상화 되어야 할 성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는 ‘아직 아님(not yet)’의 성화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직 아님’의 성화는 성도가 ‘이미 일어난’ 결정적 성화를 삶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점에서의 성화를 말합니다.
이러한 증명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와 결정적 성화를 통해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미 받은 구원을 구체화해야 합니다. 그들의 성화는 삶의 과정을 통해 현상화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매일매일 성도의 구체적 삶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대어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되어야 합니다.
◆ 점진적 성화에 대한 명령
그런데 점진적 성화에는 ‘~어야 한다’의 명령형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결정적 성화’가 성화의 서술형에 해당한다면, ‘점진적 성화’는 성화의 명령형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서술형(indicative)이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며, 명령형이란 “그러므로 구원의 완성에 도달해야 한다”는 정언명령(imperative)을 의미합니다.
점진적 성화에 명령형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성경이 성도들을 향해 점진적 성화를 명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신자에게 삶의 과정에서 자신을 죽이고 새생명을 얻을 것을 명령하는 이유는 성화 이후에 죄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죄의 법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지만, 다소의 죄의 흔적이 남아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의 짐에 싸여 있는 한’ 죄의 유혹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같은 죄의 발화재의 존재로 인해,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매일매일 계속 성화의 길을 나아가야 하며, 매일 모든 죄 짐에 대항하여 싸워야’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성화는 이미 일어난 결정적 성화의 ‘서술형’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점진적 성화에 대한 ‘명령형’의 변증법적 상관관계 속에 있다고 설명됩니다.
◆영적 투쟁과 결정적 성화
그런데 칼빈은 왜 성화를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로 구분하였을까요?
이는 결정적 성화, 곧 이미 일어난 성화가 점진적 성화, 즉 ‘아직 아님’의 성화에 대한 기초와 약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신자가 삶의 과정에서 죄의 흔적과 싸워 나갈 때, 이미 죄에서 죽고 이미 일어난 부활의 승리가 매일의 영적 투쟁에서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정적 성화를 통해서, 신자는 죄에 대해 죽었고, 죄의 통치로부터의 결정적인 단절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 때 성도는 더욱 힘 있게 거룩한 삶을 위한 도전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됩니다.
즉 결정적 성화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성도는 죄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지배자가 되지 못한다는 확신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확신의 힘으로, 성도는 영적 투쟁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결정적 성화에 대한 믿음은 성도들에게 점진적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동력원을 제공하게 됩니다.
◆ 승리의 확신
신자들은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항상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곳곳에서 솟아나는 두려움과 염려들로 인해 또한 죄의 ‘발화재’의 잔존으로 인해, 다시 어둠의 세력에 의해 지배되거나 억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영적 연약함의 상황속에서 성경은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사탄과의 영적 투쟁을 명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딤전6:12)라고 명령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은 아담의 타락을 유도한 교묘한 유혹으로 성도의 실족을 순간순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영적 싸움에서 필요한 요소는 승리의 확신입니다. 마귀와의 싸움에서 굴복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성도들은 담대히 영적투쟁에 나설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패하여 좌절과 낙심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방치하지 않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은혜는 성도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싸움은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심으로, 성도가 두려움과 절망과 싸울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실패로 좌절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 영적 싸움의 동력인 승리의 확신을 갖게 하심으로, 성도들이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워 이기도록 하십니다.
이러한 확신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결정적 성화가 가져다주는 유익입니다.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존재인 성도는 이미 ‘죄에 대한 죽음’과 ‘하나님을 향해 살아남’으로 인하여, 죄의 지배와 세력으로부터 즉각적이며 결정적인 단절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결정적 성화가 승리의 확신을 보증해주는 겁니다.
결국 성도가 싸우는 죄와의 투쟁은 승리가 보장된 것입니다. 죄에서 죽고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는 이미(already) 결정적 성화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는 매일 죄의 흔적을 씻고 생명을 얻는 부활을 경험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의 부활을 건져 올리게 됩니다.
때문에 신자는 두려움과 염려들 가운데서도 그것들에 의하여 결코 지배되거나 억눌림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어둠의 세력과 당당히 싸워나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는 날을 기다릴 뿐입니다.
<참고문헌>
이승언, “ 칼빈의 성화론 이해와 오늘날의 의의 ”, 장신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