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인 기대값 대신 심리적 가치에 의해 좌우됨을 보여줍니다. 이 이론의 핵심인 가치함수(Value Function)는 참조점(Reference Point, 0)을 기준으로 비대칭적인 S자 형태를 띠며, 인간의 두 가지 주요 심리적 편향인 손실 회피와 민감도 체감(참조점 이동 효과)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 λ (람다): 손실회피 (Loss Aversion)
①λ (람다)
전망이론이 보여주는 핵심 변수는 람다(λ)입니다. 람다는 인간이 손실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나타내는 ‘손실회피 계수(Loss Aversion Coefficient)’입니다.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약 두 배 이상 크게 느낍니다.
즉 손실의 심리적 무게는 이득보다 평균 2.25배 더 큽니다(λ ≈ 2.25).
예를 들어 공정하거나 유리한 베팅 기회라도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경향도 손실 회피와 관련 있습니다.
만약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만 원을 얻고, 뒷면이 나오면 5만 원을 잃는다"는 베팅(기대값이 양수)을 제안받으면, 많은 사람이 손실의 고통이 훨씬 커서 거절합니다.
이는 잃을 때의 고통(-5만 원)이 얻을 때의 기쁨(+10만 원)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판단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개인이 현재 놓인 상태—즉 ‘참조점(reference point)’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손실회피는 단순한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본능의 표현입니다.
② 참여유도 최소 이득 계산
이렇게 손실이 이득보다 2.25배 더 크다면,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이득(손실의 2.25배)은 얼마일까요?
베팅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손실 금액 (L):-50,000 원
•손실 발생 확률 (PL): 0.5
•최소 이득 금액 (Gmin): ?
•이득 발생 확률 (PG): 0.5
•기대 효용 공식: EU = (Gmin ×PG) + (λ× L×PL)
•λ=2.25
이 식에 의하면, 손실의 심리적 무게(고통)는 이득의 심리적 무게(기쁨)에 손실 회피 계수(λ)를 곱한 것과 같습니다.
참여의 최소 조건은 기대 효용이 0이 될 때입니다 (EU = 0).
(Gmin×0.5) + (2.25 × (-50,000) × 0.5) = 0
Gmin =112,500
따라서 손실 회피 계수 2.25를 적용했을 때,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 뒷면이 나와 5만 원을 잃는 베팅에 기꺼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앞면이 나왔을 때 최소한 112,500(50,000×2.25)원의 이득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결국 이 베팅의 수학적 기대 가치 25,000 [ =(100,000 ×0.5) + (-50,000× 0.5)]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느끼려면 이득이 손실의 2.25배를 초과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③ 참조점과 손실회피의 의미
이 판단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개인이 현재 놓인 상태—즉 ‘참조점(reference point)’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이득/손실의 가치(V)는 절대적인 최종 재산(W)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참조점,W0)를 기준으로 얼마나 변화했는지(W - W0)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A, B는 시작 재산이 각각 900만원, 1,1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투자 이후 두 사람이 똑같이 1,000만 원의 최종 재산을 가지게 되었다면, A와 B의 가치는 각각 V(100), V(-100)입니다. 전자는 100만 원을 얻을 때의 기쁨을 나타내고, 후자는 은 100만 원을 잃을 때의 고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A와 B가 느끼는 심리적 가치는 같지 않습니다.
|V(-100)|≈ 2.25 × V(100)
즉, B가 느끼는 심리적 고통은 A가 느끼는 심리적 기쁨보다 약 2.25배 더 크므로, 최종 재산이 같더라도 B의 기분이 훨씬 나쁩니다.
따라서 손실회피는 단순한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본능의 표현입니다.
◆ 가치 함수 그래프
전망 이론의 가치함수(Value Function)는 행동경제학의 핵심 도구로, 참조점(0)을 기준으로 비대칭적인 S자 곡선을 형성합니다. 이 곡선은 손실 회피와 민감도 체감(참조점 이동)이라는 두 가지 주요 심리적 편향이 어떻게 인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축의 의미
원점(0, 0)은 현재의 상태로, 모든 심리적 평가가 시작되는 기준점입니다.
x축은 참조점 대비 이득과 손실의 변화를 나타내며, 오른쪽(+X)은 이득, 왼쪽(-X)은 손실의 크기를 나타냅니다. y축은 심리적 가치로, x축의 변화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크기(기쁨 또는 고통)를 나타냅니다.
② 손실 회피: 기울기의 비대칭성
가치함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참조점을 중심으로한 기울기의 비대칭성입니다. 손실 영역(x < 0)의 기울기는 매우 가파른 반면, 이득 영역(x > 0)의 기울기는 상대적으로 완만합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같은 금액의 변화라도 손실이 주는 심리적 고통이 이득이 주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선 연구 결과처럼, 평균적으로 손실의 심리적 무게는 이득의 약 2.25배이며, 이것이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 현상입니다.
③ 민감도 체감: 이득과 손실의 한계 효용 체감
두 번째 특징은 민감도 체감(Diminishing Sensitivity)으로, 각 영역 내에서 기울기가 점차 완만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득 영역은 오목한 형태(Concave)를 띠는데, 이득이 커질수록 추가 이득이 주는 심리적 기쁨(한계 효용)은 점점 줄어듭니다.
손실 영역은 볼록한 형태(Convex)를 보이며, 손실이 커질수록 추가 손실이 주는 심리적 고통 증가분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 볼록한 형태는 큰 손실 앞에서 오히려 위험을 추구(Risk-Seeking)하려는 경향을 설명합니다.
④ 손실 감소의 극대화된 가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손실 영역의 가파른 기울기와 볼록한 곡선이 결합할 때 나타납니다. 손실 영역이 볼록하다는 것은 손실이 깊을 때보다 참조점(0) 근처로 다가갈 때(손실 감소)고통이 감소하는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손실 회피 편향에 따라, 사람들은 손실을 줄이는 행위에서 같은 금액의 이득을 얻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더 큰 가치와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협상, 마케팅, 정책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손실 프레이밍'을 활용하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 손실 회피 이론의 협상 전략 적용
전망 이론은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크게 느끼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 원리를 협상에 적용하면 상대방의 심리를 움직여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협상전략의 핵심은 최초 참조점(Reference Point, Anchor)을 이동시켜 새로운 참조점을 상대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먼저 높은 앵커(참조점)를 설정하여 상대방을 심리적인 손실 영역에 진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후 이 앵커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양보를 하면, 상대방은 손실 영역의 가파른 기울기 덕분에 고통이 크게 감소되었다고 인식하여 높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상대방은 협상을 수용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양보로 인한 심리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초기에 A의 최소 이익 참조점은 500입니다. K(지불하는 자)의 최대지불의사금액은 500이며, K의 참조점은 지불하지 않은 현재 상태(0)로 설정되어 심리적 중립성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A가 700원이라는 높은 앵커를 던지는 순간, K는 A의 앵커 700에 의해 200만큼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를 가치함수의 그래프에 적용하면, K는 참조점 대비 700원만큼의 심리적 손실(V(-700)) 영역에 놓입니다. 따라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이 상태에서 A가 700원에서 500원으로 양보하면, K는 단순히 500원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700이라는 큰 손실(V(-700))에서 벗어나 손실을 200만큼 줄이는 (V(-500)) 데 성공했다"고 느끼게 되어 큰 심리적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만족은 손실 영역의 가파르고 볼록한 기울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결국 A의 입장에서 협상 성공의 핵심 전략은 앵커(참조점)를 최소이익점보다 높이 설정하는 것입니다.
◆ 한미 관세협상과 손실회피 이론
2025년 10월 말,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양국은 대미 관세율 인하와 무역조건 재조정을 골자로 한 잠정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이 과정은 전망이론의 손실회피와 참조점 이동 효과가 정교하게 작동한 전형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①미국의 초기 앵커링
애초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 규모를 ‘전액 현금 선불(up-front payment)’ 로 미국 정부가 즉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초강경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한국 측은 “3,500억 달러를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외환시장 안정과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고, 협상은 일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②참조점 이동
그러나 교착이 길어지자 미국 측에서도 입장 변화를 보였습니다. “전액 현금 선불 요구에서 물러나는 정황”이 감지되며 협상이 재개되었습니다. 마침내 APEC 한미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은 “향후 10년간 매년 최대 200억 달러씩 총 2,000억 달러를 현금투자 형태로 투입하고, 나머지 1,500억 달러는 조선·해양 등 전략산업 협력으로 대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초기 요구 대비 완화된 조건으로, 연간 지급 상한을 설정함으로써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한 핵심 성과로 평가됩니다.
③심리적 착시
전망이론을 이 과정에 적용해 보면 이번 APEC 한미 협상 과정은 손실회피와 참조정 이동 전략이 전형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미국은 비현실적으로 높은 3,500억 달러 현금 선불이라는 앵커(참조점)를 초기에 제시함으로써 한국을 심리적 손실 영역에 놓이게 했습니다. 이후 미국이 요구치를 단계적으로 낮추자, 한국은 실질적으로 큰 양보를 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손실을 피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 쉬운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이는 협상이론에서 말하는 참조점 이동(reference point shift)과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이 그대로 작동한 전형적 패턴입니다. 높은 앵커를 선제적으로 던지고, 이후 일부를 후퇴함으로써 상대가 ‘양보를 얻어냈다’고 인식하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결국 미국은 초반에 과도할 정도로 높은 참조점을 제시해 협상의 심리적 주도권을 장악했고, 한국은 그 압도적 앵커에 갇힌 채 ‘손실의 급경사 영역’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이 기준점을 낮추어 손실 폭이 줄어들자, 한국의 대중은 큰 손실을 피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평가 자체가 바로 손실 영역의 급격한 기울기 효과, 즉 심리적 착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기준점 이동 전략에 한국의 대중이 순응한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만족감은 결국 협상 타결을 정당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