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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암살자(들)》읽기 :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라」는 말의 함정 [ 팩션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

-배후를 말하지 않았다고 책임도 없는가

《암살자(들)》 둘러싼 논쟁에서 흔히 나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영화는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창작의 산물이므로, 실제 역사와 다른 장면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모든 장르에서 책임을 면제하는 논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실제 인물과 사건에 허구를 결합한 팩션에서는 관객이 무엇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상상으로 구별할 수 있는지가 핵심입니다.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든 뒤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물러서는 것은 관객의 자유를 존중하는 일이 아닙니다. 관객의 판단을 이끌 사실과 장면을 취사선택하고 배열한 쪽은 다름 아닌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창작의 자유를 내세우기 전에, 역사적 사실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상상을 사실처럼 믿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려놓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겠다는 태도는 자유의 존중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입니다. ◆팩션이란 ①팩션의 정의 —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서사입니다 팩션(faction)은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와 허구를 뜻하는 픽션(fiction)을 결합한 말입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기록에 없는 대화와 행동을 만들어내거나 사건의 순서와 인물 관계를 재구성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허구가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는 팩션의 결함이 아닙니다. 허구는 팩션을 성립시키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실제 사건 사이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우고, 기록되지 않은 대화를 구성하며, 때로는 여러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압축합니다. 이런 창작을 모두 배제한다면 역사영화와 역사드라마의 상당수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팩션의 힘은 사실과 상상의 결합에서 나옵니다. 건조한 역사적 기록을 인물의 행동과 갈등, 감정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바꿈으로써 관객이 과거를 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②팩션의 특징 — 사실이 허구에 신뢰를 빌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팩션의 힘은 동시에 위험의 출발점이 됩니다. 팩션에서는 사실과 허구가 서로 분리된 채 제시되지 않습니다. 실제 날짜와 장소, 실존 인물과 확인된 사건 사이에 창작된 대화와 행동이 들어가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의가 실제로 열렸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특정 인물이 범죄를 지시했다는 것은 창작자의 가설일 수 있습니다. 두 내용을 하나의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실제로 존재했던 회의가 창작된 범죄 지시 장면에까지 사실성의 권위를 빌려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팩션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 사실 → 작품에 신뢰를 부여합니다. • 허구 → 사실 사이의 빈틈을 채워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 사실과 허구의 결합 → 사실에서 얻은 신뢰가 허구에까지 옮겨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관객이 극영화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어느 장면이 기록에 근거하고 어느 장면이 창작됐는지까지 아는 것은 아닙니다. ③팩션의 위험 — 창작자의 가설이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팩션의 문제는 허구가 들어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제공하는 신뢰가 허구에까지 옮겨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모든 각색의 무게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실제 기록에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만들어내거나 여러 주변 인물을 한 사람으로 합치는 것은 이야기의 진행을 위한 일반적인 각색입니다. 그러나 누가 범죄를 지시했는지, 누가 공모했는지, 누가 사건을 은폐했는지와 같은 설정은 성격이 다릅니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생생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실존 인물의 행위와 책임에 대한 역사적 판단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확인된 사실과 창작자의 가설이 경계 없이 연결되면 관객은 창작자가 제기한 의심을 실제 역사에서 확인된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④ 허구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문제입니다 따라서 팩션을 평가할 때 “영화인데 허구가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어떤 허구를 만들었는가, 그 허구가 역사적 사실과 어떻게 연결됐는가, 그리고 그 연결이 실존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객의 판단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입니다. 특히 범죄의 배후나 공모 관계처럼 역사적 책임을 바꾸는 설정이라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팩션은 역사를 상상할 자유를 갖습니다. 그러나 실제 인물과 사건이 주는 신뢰를 이용해 상상의 설득력을 높였다면, 무엇이 기록이고 무엇이 가설이며 무엇이 순수한 창작인지 관객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할 책임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결국 팩션의 위험은 허구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가 결합하면서 ‘사실의 신뢰’가 ‘허구의 신뢰’로 전이되어 허구를 사실로 오인하는데 있습니다. ◆화면은 잘못된 역사를 밀어낼 수 있습니다. 팩션의 오인 위험은 단순한 추측이 아닙니다. 앤드루 버틀러와 동료들이 2009년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두 차례의 실험으로 역사영화가 관련 글의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정확한 역사 정보를 담은 글을 공부하고, 같은 주제의 영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영화에는 글과 일치하는 정보뿐 아니라 글의 내용과 충돌하는 잘못된 정보도 들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일주일 뒤 참가자들이 글의 내용을 얼마나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검사했습니다. 결과는 양면적이었습니다. 영화가 글과 일치하면 정확한 정보의 기억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글과 다른 내용을 보여주자, 일부 참가자들은 글에서 읽은 정확한 사실 대신 영화 속 잘못된 내용을 정답으로 답했습니다. 영화의 오류를 역사적 사실로 오인한 것입니다. 정확한 글을 읽고도 화면에서 본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기억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역사 지식을 강화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잘못된 역사를 사실로 믿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경고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역사영화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오정보 효과를 막지 못했습니다. 반면 어떤 내용이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경고는 그 효과를 크게 줄였습니다. 따라서 연구진은 역사영화를 교육에 활용할 때 주요 오류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처럼 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의 절반 이상이 정확한 글을 읽었는데도 영화의 잘못된 내용을 사실처럼 답했다는 점입니다. 화면의 오류가 먼저 읽은 정확한 정보를 밀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수치를 모든 관객에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관객은 허구임을 알고 판단한다”는 주장만으로 오인의 위험을 해소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버틀러의 연구에 비추어보면, 제작진에게 필요한 것은 '이 작품은 다큐가 아니라 영화입니다.'라는 고지가 아니라,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어느 대목이 창작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경고는 관객에게 오류를 알아서 찾으라고 맡기지만, 특정 오류를 짚는 설명은 사실과 허구를 구별할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인물의 명예와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바꾸는 핵심 각색이라면 그 경계를 더욱 분명히 해야 합니다. 따라서 화면의 힘으로 사실과 허구를 섞어놓은 뒤 판단만 관객에게 맡기는 것은, 자신이 만든 오인의 위험을 관객에게 떠넘기는 일입니다. ◆법적 허용과 윤리적 책임은 다른 질문이다 법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창작물에 상당히 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합니다. 2010년 대법원은 드라마 〈서울 1945〉 제작진의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고, 미국 법원 역시 〈퓨드: 베티 앤드 조안〉의 대사 왜곡 논란에서 표현의 자유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관객들이 "장면의 일부가 창작될 수 있음을 일반적으로 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법이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중의 역사적 오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버틀러의 실험이 증명하듯, 관객이 극영화임을 인지하더라도 스크린의 강력한 스펙터클 앞에서는 개별 장면의 진위를 정확하게 발라내지 못합니다. 법은 창작의 자유를 옥죄지 않기 위해 처벌의 문턱을 한껏 높여두었지만, 바로 그 문턱 아래에서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고 실존 인물에 대한 집단 기억이 심각하게 오염됩니다.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변명 뒤에 숨어, 윤리적 방관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팩션의 책임 3원칙: 경계, 정정, 사과 팩션 창작자는 역사에 상상력을 덧입힐 자유를 누리는 만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윤리적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팩션이 지켜야 할 윤리적 책임은 다음의 세 단계로 요약됩니다. 첫째, 경계(Boundary)의 표시입니다. 2005년 법원은 10·26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자체의 상영은 허용했지만, 극 사이에 삽입된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 등의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은 삭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실제 기록 영상이 영화 전체에 사실성을 부여하여, 주변의 허구마저 '진짜'로 오인하게 만들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은 팩션이 지닌 치명적인 '혼동의 가능성'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작자는 관객이 어디까지가 확인된 역사이고 어디서부터가 상상인지 구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구체적인 정정(Correction)입니다. ‘본 작품은 허구의 영화입니다’라는 말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을 서사의 인과관계를 통해 범죄의 배후나 공모자, 지시자로 묘사하는 등 역사적 평가를 뒤바꾸는 핵심 설정은 그 근거와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확인된 역사적 사실인지, 해석이 엇갈리는 가설인지, 극적 효과를 위한 창작인지 관객이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사실을 전달했다면 허구라는 해명에 그치지 말고, 어느 대목이 잘못됐으며 확인된 사실은 무엇인지 바로잡아야 합니다. 셋째, 부당한 피해에 대한 사과(Apology)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 소송은 2008년 제작사가 영화의 세부 묘사가 허구임을 강조하는 자막을 넣고, 관련 인물과 유족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배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창작 자체를 반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만들 자유가 있다면, 그 작품이 실제 인간의 삶에 미친 폭력적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성숙함을 보여달라는 요구입니다. 결국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은 이 세 책임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화면이 사실을 밀어내는 상황에서 판단을 관객에게 넘기는 것은, 위험을 만든 쪽이 그 위험의 관리까지 관객에게 떠넘기는 일입니다. ◆결론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판단의 여백은 창작자의 몫입니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사실과 허구를 구별해야 하는 짐까지 관객에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최종 평가는 관객에게 있다”는 말은 옳으나, 이는 창작자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명확히 했을 때 성립하는 명제입니다. 특히 실제 역사와 창작을 인과적으로 엮어내는 ‘팩션(Faction)’에서는 이 책임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 사이에 가설과 상상력을 끼워 넣어 서사를 구축합니다. 이때 관객은 개별 장면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제작진이 배열한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앞서 제시된 확인된 사실이 뒤따르는 가설과 허구에 신뢰를 부여하며, 관객은 이를 개연성 있는 역사로 추론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배후를 단정하지 않았다”는 제작진의 해명만으로는 책임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직접적인 단정이 없었더라도, 어떤 사실 뒤에 어떤 허구를 배치하여 특정한 인과관계를 유도했는지 그 ‘장면의 배열’ 자체가 이미 관객의 역사적 판단에 깊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허구를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상상력은 팩션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이 가진 권위를 빌려 작품의 설득력을 높였다면,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관객이 구별할 수 있도록 도울 윤리적 책임이 따릅니다. 법이 창작의 표현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윤리는 창작자가 역사를 다룬 결과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러므로 사실과 허구의 혼재가 역사적 판단을 바꿀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면, 창작자에게는 다음 세 가지가 요구됩니다. 첫째,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밝힐 것, 둘째, 잘못된 사실이 확인되었다면 정정할 것, 셋째, 그로 인해 실제 인물이나 유족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었다면 사과할 것입니다.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라”는 말은 책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힘을 빌려 이야기에 무게를 더해놓고, 논란 앞에서는 “영화일 뿐”이라며 발을 빼는 것은 모순입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대중의 역사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책임의 무게는 전혀 달라집니다. 팩션이 '역사적 사실의 권위'에 무임승차하여, 관객이 허구를 사실로 오인하게 만듦으로써 영화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만 골몰한다면, 이는 창작을 빙자한 고의적인 역사 왜곡과 다름없습니다.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뒤섞어 특정한 판단의 방향성을 만들어낸 주체가 제작진이라면, 관객이 사실에 기반해 온전히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의 여백’을 마련해 두는 것은 창작자의 마땅한 책무입니다. 따라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은 자신들의 상상력이 역사에 기생하여 관객의 판단을 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묻고 윤리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영화 〈암살자(들)〉의 서사 구조 : 장면의 인과관계는 배후를 지목한다

〈암살자(들)〉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당시 수사본부는 문세광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영화 속 일부 인물은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영화는 그 배후를 특정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그러나 배후를 명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객에게 남는 인상까지 중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장면의 대사뿐 아니라, 장면들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인과관계와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장면의 배열과 연출은 명시적인 결론 없이도 관객을 특정한 설명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 직접 지목하지 않는 배후 의혹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을 지시했다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 경호실과 중앙정보부 등 박정희 정권의 핵심 권력기관이 사건에 의도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차례로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을 배치합니다. ◆ 경호 실패인가, 의도적 관여인가 장면을 따라가면 의혹은 경호실의 행동에서 시작해 사건 이후의 압력과 사전 인지 가능성으로 확장됩니다. 첫째, 경호실의 행동입니다. 영화에서 문태광은 비표 없이 행사장에 들어가려 하고, 이를 제지하는 형사 철구를 청와대 경호원이 막아 문태광을 통과시킵니다. 따라서 영화는 단순히 “경호에 실패했다”는 상황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경호실 인물이 범인의 진입을 막으려는 형사의 행동을 방해했다는 상황을 만듭니다. 둘째, 사건 이후에도 압력이 이어집니다. 영화에서는 공범을 추적하던 형사반장이 협박을 받습니다. 앞의 진입 허용 장면과 결합하면 관객은 “경호실의 행동이 단순한 실수였던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셋째, 방탄 연단 장면은 사전 인지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치로 읽힐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사건 당일 대통령 연단을 방탄용으로 바꾸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일각에서는 관객이 이를 대통령을 총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추론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영화는 경호실이 단순히 경호에 실패한 것인지, 아니면 사건에 의도적으로 관여한 것인지 묻게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 중앙정보부와 ‘윗선’의 등장 영화는 중앙정보부의 수사·취재 방해와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을 추가합니다. 허진호 감독도 영화에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자신은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과 분리해서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감독은 중정 내부의 암투나 중정 자체의 행동 가능성을 상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을 사건의 배후라고 직접 확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와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서사적 효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 차이를 살피려면 개별 장면뿐 아니라 장면들이 연결되는 방식까지 봐야 합니다. ◆ 장면의 연결이 만드는 의심 각 장면을 따로 떼어 놓으면 박 대통령의 개입을 의미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호실이 범인의 진입을 막으려는 형사를 제압하고, 총격 당일 대통령에게 방탄 연단이 준비되며,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가 진상 추적을 방해하고, 다시 ‘중정 윗선’이 언급되는 구조로 연결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경호실과 중앙정보부라는 대통령 권력의 핵심 기관들이 각각 사건 전후에 개입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그 위에 다시 ‘윗선’이라는 존재가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부 관객이 “두 기관의 행동 뒤에 더 높은 권력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추론하고 그 최고점에 있던 대통령을 연상하는 것은, 영화 밖에서 아무 근거 없이 만들어낸 상상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가 배치한 장면들의 연결 자체가 그러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대통령을 직접 지목했느냐를 넘어, 영화가 관객의 의심을 어느 방향으로 이끄느냐로 옮겨갑니다. ◆ 영화 전체의 추론 구조 요컨대, 영화 전체의 추론 구조를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경호실이 범인의 진입을 막는 형사를 제압 → 단순한 경호 실패가 아니라 의도적인 통과였는가? 공범을 추적하는 형사가 협박받음 → 사건 이후에도 누군가 진상 규명을 막고 있는가? 사건 당일 대통령 연단을 방탄용으로 교체 → 누군가는 총격 가능성을 미리 알고 대통령을 보호하려 했는가? 중앙정보부의 수사·취재 방해 + ‘중정 윗선’ → 경호실뿐 아니라 또 다른 핵심 권력기관도 사건 또는 은폐에 관여했는가? 경호실 + 중앙정보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서사 → 그렇다면 두 권력기관 위의 최고권력은 누구인가? ◆ 가설이 역사로 기억될 위험 영화는 대통령의 개입을 사실로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경호실과 정보부의 행동을 연결해 서사를 구축합니다. 이를 통해 관객의 의심이 당시의 최고 권력층을 향하도록 유도합니다. 배후를 지목하지 않고도 방향을 설정한 셈입니다. 결국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가설의 경계가 흐려지면, 권력 배후설은 단순한 가능성 중 하나로 남지 않습니다. 마치 감춰진 진짜 역사인 것처럼 관객의 기억에 깊이 각인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 기사 요약 > 영화《암살자(들)》읽기 : 「영화는 그저 영화로 보라」는 말의 함정 [ 팩션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 ]

[기사 요약] Ⅰ. 문제 제기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 흔히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는 반론이 등장합니다. 영화는 역사책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창작물이므로 실제 역사와 다른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실제 인물과 사건에 허구를 결합하는 팩션에서는 문제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실제 역사가 작품에 사실성과 신뢰를 제공하고, 그 신뢰가 확인되지 않은 가설과 창작된 장면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 쟁점은 ‘팩션에 허구가 허용되는가’가 아니라 ‘실제 역사의 권위를 이용한 창작자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디까지 밝혀야 하는가’입니다. Ⅱ. 팩션의 개념과 구조 팩션(faction)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한 서사 형식입니다.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기록되지 않은 대화와 행동을 창작하거나 사건의 순서와 인물 관계를 재구성합니다. 허구는 팩션의 결함이 아니라 장르를 성립시키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러나 실제 날짜·장소·인물·사건과 창작된 내용이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로 결합되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 → 작품에 사실성과 신뢰 부여 → 사실과 허구의 서사적 결합 → 사실의 신뢰가 허구로 전이 → 관객이 가설이나 창작을 역사적 사실로 오인할 가능성 발생 따라서 팩션의 핵심 위험은 허구 자체보다 ‘사실의 신뢰가 허구의 신뢰로 전이되는 현상’에 있습니다. Ⅲ. 모든 허구의 역사적 무게는 같지 않음 팩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각색을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에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창작하거나 여러 주변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합치는 것은 일반적인 극적 각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범죄를 지시했는지, 누가 공모했는지, 누가 사건을 은폐했는지에 관한 창작은 성격이 다릅니다. 이러한 설정은 실존 인물의 역사적 책임과 평가를 직접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적 책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창작일수록 그것이 확인된 사실인지, 논쟁적인 가설인지, 순수한 창작인지 관객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커집니다. Ⅳ. 역사영화가 기억에 미치는 영향 앤드루 버틀러 등의 2009년 연구는 역사영화가 관객의 역사적 기억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정확한 역사 정보를 담은 글을 읽은 뒤 같은 역사적 주제를 다룬 영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이 글과 일치할 경우에는 정확한 기억을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영화가 글과 다른 정보를 제시할 경우에는 일부 참가자들이 영화의 잘못된 내용을 사실로 회상했습니다. 또한 “영화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경고만으로는 오정보 효과를 충분히 방지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잘못됐는지를 알려주는 방식은 오정보의 영향을 크게 줄였습니다. 다만 해당 실험의 결과를 모든 영화와 모든 관객에게 그대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관객이 극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별 장면의 사실과 허구를 정확하게 구별한다고 가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Ⅴ. 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 법과 윤리는 서로 다른 질문을 제기합니다.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의 창작 영역을 폭넓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법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반면 윤리의 질문은 더 넓습니다. 법의 질문: 국가가 창작자의 표현을 어디까지 제한하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윤리의 질문: 실제 인물과 역사의 사실성을 이용한 창작자가 그 표현이 만들어낸 역사적 오인과 피해에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따라서 법적으로 허용된 표현이라고 해서 그 표현의 윤리적 책임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Ⅵ. 팩션 창작자의 세 가지 책임 팩션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은 ‘경계·정정·사과’의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경계(Boundary)입니다. 역사적 평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서는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가설 또는 창작인지 관객이 구별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 합니다. 둘째는 정정(Correction)입니다. 잘못된 사실이 전달됐음이 확인됐다면 단순히 “허구의 영화”라고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가 된 내용과 확인된 사실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는 사과(Apology)입니다. 창작의 결과 실제 인물이나 유족에게 부당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모든 책임을 부정하기보다 그 피해에 책임 있게 대응하고, 필요한 경우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Ⅶ. 결론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명제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과 평가는 관객이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것과 사실과 허구를 구별하는 부담까지 관객에게 떠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팩션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 창작된 장면이 하나의 인과적 서사로 연결됩니다. 제작진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생략할지, 어떤 사실 뒤에 어떤 허구를 배치할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제작진은 관객의 판단에 단순히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판단의 조건을 구성하는 주체입니다. 팩션에 허구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가 가진 권위를 이용해 작품의 현실성과 설득력을 높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발생합니다. 작품에 대한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이 사실에 근거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의 여백’을 남기는 것은 창작자의 몫입니다. [ 퀴즈 ] 1. 팩션(faction)이 일반적인 순수 허구 작품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입니까? 정답: 실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하나의 서사 안에서 결합한다는 점입니다. 해설: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결합합니다. 실제 인물·사건·날짜·장소 등을 사용하면서 기록에 없는 대화나 행동을 창작하고 사건의 순서와 관계를 재구성합니다. 따라서 허구가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가 팩션의 문제는 아닙니다. 2. 이 글에서 팩션의 가장 중요한 위험으로 지적한 것은 무엇입니까?정답: 실제 역사적 사실이 가진 신뢰가 허구에까지 옮겨가면서 관객이 창작된 내용을 사실로 오인할 위험입니다. 해설: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은 작품에 강한 사실성을 부여합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확인되지 않은 가설이나 허구를 경계 없이 삽입하면, 앞의 사실이 뒤의 허구에까지 신뢰를 빌려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에서는 이를 ‘사실의 신뢰가 허구의 신뢰로 전이되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3. 팩션에 허구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비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허구와 상상력 자체가 팩션을 성립시키는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해설: 기록에 없는 대화를 만들거나 실제 사건 사이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은 역사영화의 일반적인 창작 방식입니다. 따라서 글의 비판 대상은 허구 자체가 아니라 허구가 실제 역사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고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입니다. 4. 다음 두 가지 각색 가운데 글에서 더 무거운 역사적 책임이 따른다고 보는 것은 어느 쪽입니까?① 기록에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창작하는 것 ② 실존 인물이 범죄를 지시했다고 창작하는 것 정답: ② 실존 인물이 범죄를 지시했다고 창작하는 것입니다. 해설: 두 경우 모두 허구이지만 역사적 무게가 다릅니다. 일상적인 대화의 창작은 주로 극적 진행을 위한 각색입니다. 반면 범죄의 지시·공모·은폐와 같은 설정은 실존 인물의 역사적 책임과 평가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5. “관객은 극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허구를 사실로 오인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장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작품 전체가 허구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개별 장면 가운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창작인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해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에는 각색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 대화, 사건, 공모 관계, 범죄 지시 등이 실제 기록에 있는 것인지 창작인지까지 자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글에서 “영화는 영화로 보라”는 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핵심 이유입니다. 6. 버틀러 등의 2009년 실험에서 영화의 내용이 정확한 역사 글과 일치했을 때 나타난 효과는 무엇입니까?정답: 정확한 역사 정보의 기억을 강화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해설: 이 연구는 영화의 효과를 일방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정확한 글과 일치하면 학습과 기억에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글과 충돌하는 잘못된 정보를 제시했을 때였습니다. 7. 영화가 정확한 역사 글과 다른 정보를 보여주었을 때 일부 참가자들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까?정답: 먼저 읽었던 정확한 정보 대신 영화에서 본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회상했습니다. 해설: 참가자들은 정확한 역사 정보를 이미 읽었음에도 이후 영화에서 본 잘못된 내용을 답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시청각적 서사가 기존의 정확한 기억과 경쟁하고 때로는 그것을 밀어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8. 버틀러 등의 연구에서 “역사영화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라는 일반적인 경고와 구체적인 오류를 알려주는 경고는 어떤 차이를 보였습니까?정답: 일반적인 경고만으로는 오정보 효과를 충분히 막지 못했지만, 어떤 내용이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을 때 오정보의 영향이 크게 줄었습니다. 해설: 이 차이는 글의 핵심 주장과 연결됩니다. 단순히 “이 영화는 허구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역사적 판단에 중요한 부분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창작인지 구체적으로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9. 버틀러 등의 실험 결과를 모든 역사영화와 모든 관객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특정한 실험 조건에서 얻어진 연구 결과이므로 모든 영화·관객·시청 상황에 동일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일반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설: 이 연구가 “모든 관객은 영화를 보면 역사를 잘못 기억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에서 연구를 사용하는 목적은 더 제한적입니다. 관객이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인의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10. 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은 어떻게 다릅니까?정답: 법은 국가가 표현을 어디까지 제한하고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묻는 반면, 윤리는 창작자가 실제 인물과 역사를 다룬 결과에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를 묻습니다. 해설: 어떤 표현이 법적으로 허용됐다는 사실만으로 그 표현이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법적 책임의 문턱을 높게 설정하더라도, 그 아래에서 역사적 오인이나 실제 인물에 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별도로 논의할 수 있습니다. 11. 이 글이 제시하는 팩션 창작자의 ‘책임 3원칙’은 무엇입니까?정답: 경계(Boundary), 정정(Correction), 사과(Apology)입니다. 해설: ‘경계’는 역사적 사실과 가설·창작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정정’은 잘못된 사실이 확인됐을 때 구체적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사과’는 작품으로 인해 실제 인물이나 유족에게 부당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그 결과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것을 뜻합니다. 12.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이 글은 주장합니까?정답: 아닙니다. 해설: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과 평가는 관객의 몫입니다. 글이 문제 삼는 것은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것과 사실·허구를 구별하는 부담까지 관객에게 떠넘기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관객이 제대로 판단하려면 먼저 판단할 수 있는 정보와 조건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13. 감독이나 제작진이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면 책임 문제도 사라집니까?정답: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설: 영화는 명시적인 대사뿐 아니라 장면의 선택과 배열, 편집 등을 통해 인과관계를 구성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배후를 직접 지목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영화의 전체 서사가 관객에게 특정한 역사적 추론을 유도했는가는 별도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14. 팩션에서 ‘장면의 배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각각의 장면이 따로는 특정한 결론을 의미하지 않더라도 연속적으로 배치되면 관객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설: 관객은 영화를 독립된 사실들의 목록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어떤 실제 사실 뒤에 어떤 가설이나 허구를 배치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앞의 사실이 뒤의 창작에 개연성과 신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글에서 말하는 ‘판단의 여백’은 무엇입니까?정답: 관객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가설·창작인지 구별한 상태에서 스스로 작품과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해설: 판단의 여백은 창작자가 결론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해석을 강하게 제시하더라도 확인된 사실과 자신의 가설 사이의 경계를 관객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16. 다음 문장이 이 글의 주장을 정확하게 요약하는지 판단하십시오.“팩션의 윤리적 책임을 지키려면 역사영화에서는 허구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정답: 틀렸습니다. 해설: 글은 허구를 금지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상력을 팩션의 본질적인 요소로 인정합니다. 핵심은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얻은 신뢰를 이용하면서 그 허구의 성격을 감추는 문제입니다. 17. 팩션이 실제 역사적 사실을 사용하는 것이 창작자에게 특별한 책임을 발생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정답: 실제 인물과 사건이 작품에 현실감뿐 아니라 사실성의 권위와 신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해설: 순수한 허구와 달리 팩션은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에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따라서 그 사실성을 이용해 창작된 가설의 설득력까지 높였다면, 역사적 판단에 중대한 부분에서는 사실과 창작의 경계를 관객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할 책임도 함께 논의될 수 있습니다. 18. 이 글 전체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무엇입니까?정답: 작품에 대한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이지만, 관객이 사실에 근거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판단의 여백’을 마련하는 것은 창작자의 책임입니다. 해설: 제작진은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어떤 허구를 덧붙이며 그것을 어떤 순서로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강한 서사적 통제력을 갖습니다. 따라서 실제 역사의 권위를 작품의 설득력에 사용했다면, 관객에게 결과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실·가설·창작을 구별하며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글의 최종 논지입니다.







[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의 성격 ] 물적 분할 문제의 보완 필요 ◆ 물적분할 ① 물적분할의 성격 = 현물출자 물적분할은 기존기업의 자산 부채를 신설기업에게 포괄 이전하고 신설기업은 주식을 발행하여 주식100%를 기존기업에게 이전하는 분할을 말합니다. 물적분할의 성격은 현물출자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A사는 전자 사업부와 건설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사는 물적분할하여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신설기업인 B사에 이전하고, B는 A에게 신주100%를 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물적분할로 인해, A기업의 사업구성은 분할이전의 ‘전자사업부 + 건설 사업부’에서 분할 이후의 ‘전자사업부 + B의 주식’으로 변경됩니다. 이를 분할회계처리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배주주 A사: (차) 종속기업 주식 ×× (대) 건설사업부 순자산 ××, 처분익×× 종속회사 B사: (차) 건설 순자산(공정가액) ×× (대) 자본×× 위의 회계처리처럼, A사는 신설기업B에게 건설사업부의 순자산을 이전하고 그 대가로 B주식을 인수하였습니다. B는 A로부터 건설자산을 이전받고 A에게 B주식을 발행하였습니다. 이처럼 물적분할은 현물출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② 물적분할 성격 = 매각거래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는 분할을 매각거래로, 신설회사는 분할회사로부터

[ 감세와 고율관세정책 간의 모순 ] ‘트럼프 2기에 고율 관세가 정책의 핵심’이 되는 이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정책은 감세와 고관세의 조합으로 요약됩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2018년에 발효된 일몰법인 TCJA(감세와 일자리 법 :Tax Cuts and Jobs Act)를 연장 또는 영구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TCJA에 더하여, 추가 세금 인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세로 인해 촉발되는 재정적자는 고율관세로 메울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고율관세는 미국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줄것으로 예상됩니다. ◆ 거침 없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법 감세를 정책 노선으로 삼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장애물 없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해있는 공화당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입법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에서 법안이 입법화되기 위해선, 동일한 법안이 상원 및 하원에서 각각 통과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원에서 발의된 법안은 관련 위원회(소위원회의 심사와 청문회, 상임위에서 수정과 표결)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된 후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됩니다.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상원으로 전달됩니다. 상원의 관련 위원회를 거친 후 본

[ 기업 다각화의 장단점 ] 산업다각화와 국제다각화의 장단점은? 기업다각화는 산업다각화와 국제적 다각화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다각화는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다각화 산업다각화는 기업가치에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①긍정효과다각화로 인해 현금흐름 상관성이 낮을 경우, 다각화는 현금흐름의 안정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이러한 현금흐름안정은 기업의 위험을 감소시켜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 부채조달능력을 증대시킵니다. 한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변화하는 경우, 그 기업의 수익은 시장전체의 경기변동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기업의 수익률 변동이 시장전체의 수익률 변동과 동조되어 나타나는 겁니다. 이처럼 그 기업의 수익률의 변동성과 시장전체기업들의 평균수익률의 변동성이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면, 이는 그 기업의 체계적 위험인 베타가 높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의 베타가 높다면, 그 기업의 자기자본비용은 높아집니다. 또한 자기자본비용과 타인자본비용의 가중평균인 가중평균자본비용도 높아지게 됩니다. 결국 높은 자본비용은 기업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기업 가치는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 지출을 차감한 금액을 위험(재무위험과 영업위험)과 자본조달활동을 반영한 가중평균자본비용으로 할인한 금액인데, 분자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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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요약 > 자랑의 방향을 바꾸는 십자가 [ 인과적 역설 ] ◆핵심 주제와 세상의 공식 고린도전서 1장은 인간의 강함과 약함 가운데 어느 한쪽을 구원의 자격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지혜와 능력,권력과 높은 신분이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듯, 가난과 무력함, 낮은 지위도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강함과 지혜가 위기를 해결하는 힘으로 여겨집니다. 이 경험적 판단이 하나님 앞에서의 자격으로 옮겨가면 다음과 같은 공로주의적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나의 지혜와 강함 → 나의 자격 → 나의 구원 → 나의 자랑 바울은 이 공식에 십자가를 맞세웁니다. ◆십자가의 두 역설 일반 역설은 하나의 십자가를 두고 인간의 판단과 바울의 선포가 엇갈린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눈에 십자가는 미련하고 무력한 처형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그 십자가를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가 실제로 처형당하고 죽으셨다는 현실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판단: 십자가 → 수치와 무력함 바울의 선포: 바로 그 십자가 →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인과적 역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에는 미련하게 보이는 선포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상장회사를 움직인 자, 위험의 마지막까지 남아라 [ 세종메디칼이 드러낸 결정권과 위험부담의 분리 ] 기업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합니다. 투자가 성공하면 회사와 주주가 이익을 얻고, 실패하면 그 손실도 함께 부담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투자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나 세종메디칼에서는 그 상식이 뒤집혔습니다. 회사를 움직인 세력이 장기 위험은 법인에 남긴 채, 호재가 시장에 반영되는 순간 보유 지분을 처분해 먼저 빠져나가고 최종 손실만 일반주주에게 떠넘겼습니다. 세종메디칼은 제넨셀 구주 약 63억 원과 전환사채 약 50억 원, 합계 약 113억 원을 인수했습니다. 이 투자는 세종메디칼 법인의 자금으로 이뤄졌고, 장기적인 사업 위험도 회사 안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그러나 경영권 인수에 참여했던 주요 투자조합들은 제넨셀 임상시험계획 승인이라는 호재가 알려진 직후 이틀에 걸쳐 세종메디칼 지분을 집중 매도했습니다. 지배세력의 대량 매도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제넨셀 임상은 중단됐고, 세종메디칼이 취득한 제넨셀 지분은 전액 손상 처리돼 투자자산의 장부가액은 '0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챙겨 떠난 뒤, 투자 실패와 자산 훼손, 거래정지와 상장폐지라는 치명적 비용은 법인과 잔류 주주에게 온전히 집중됐습니다. 이는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사회화'

[ Music & Mind ] 노래하는 힘과 받쳐주는 힘 [ 비르투오소 협주곡과 교향악적 협주곡의 대비 ] ◆ 말러를 잊게 만든 두 협주곡 — 예술의전당에서 들은 대비의 밤 9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밀레니엄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공연의 진짜 주인공은 정작 타이틀롤을 차지한 말러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관객이 말러 교향곡 1번 '타이탄'을 기대하며 자리를 잡았겠지만, 이 밤을 기억하게 만든 것은 1부에서 나란히 연주된 두 협주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명한 대비였습니다. 두 협주곡은 모두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기 협주곡이지만, 같은 무대에 나란히 놓이자 오히려 서로 다른 협주곡의 문법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독주자 한 사람의 기량과 카리스마가 음악의 중심을 장악했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앙상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말해 전자는 비르투오소의 협주곡이었고, 후자는 교향악적 협주곡의 전형이었습니다. ◆비르투오소적 협주곡 vs 교향악적 협주곡 비르투오소적 협주곡과 교향악적 협주곡의 두 경향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서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