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두 사회로 갈리는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가정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사회는 경제적인 절대적 결핍은 없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고, 하루 세끼도 영원히 주어진다. 단 자유는 없다. 주인의 재산이 되어, 평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한다. 거주나 여행의 자유도 없다. 운 좋으면 인간적인 주인을 만나 애완견처럼 대우 받을 수 있다. 그 반대 쪽에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속하지 않는다.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다. 신분이 자유로운 것이다. 단 언제든지 해고 될 수 있고 자칫하다가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에 몰릴 수도 있다.이럴 때 우리들에게 한 쪽을 선택하라면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남북전쟁 발발 전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노예 12년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물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노예의 인권과 주인들의 폭력에 초점을 두고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더 나아가 감독의 말처럼 살아남기(survive)와 살기(live)의
지난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박수근처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화가도 드물다. 그는 이중섭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 회화의 상징이며, ‘국민의 화가’라는 애칭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 중 빨래터는 2007년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45억2천만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처럼 壽根의 이름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닐 정도로 그는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애정을 선사받는 화가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의 곡해와 오해에서 벗어나 제대로의 진가를 인정받게 된 결과이다. 박수근의 작품 속에 대중들이 빠져 들어가는 그 매력은 무엇일까? 그를 국민화가로 칭송하게 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수근이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작품은 영혼의 언어 빈센트 반 고흐는 “회화는 고유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데, 그 생명은 온전히 화가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며 회화의 정수를 이렇게 응축한다.회화가 인간 본성의 표현이며, 작가의 영혼의 언어라는 설명이다. “회화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나, “회화란 그것을 그린 사람의 감추어진 이미지”라는 언급도 작가의
◆ 민간경찰, 사이보그 로보캅에 국민들 박수△앵커 : 민간경찰, 사이보그 로보캅의 활약상에 국민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습니다. 취재기자의 보도입니다.△기자: 국민들은 로봇경찰의 대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범죄소탕,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이 민간 로봇경찰은 기계답게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고 있습니다.인간과 달리 그는 쉼이 없습니다. 사이보그 사전에는 피곤이란 단어가 없습니다.무엇보다 그는 차별 없이 평등하게 만인을 대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백인경찰이 흑인을 무자비하게 총질을 하는 등의 과거 경찰들의 격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의 적은 단지 프로그램에 입력된 범죄인과 무기를 든 자들 뿐 입니다. 로보캅은 군중을 쓱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흉악범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도면밀합니다. 물샐 틈 없습니다.이제 우리 주변에 범죄는 없게 됩니다.국민들은 민간 로보캅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존재인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보캅 덕택에 우리 국민들은 강도, 절도, 살인등의 공포에서 마침내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민간 로보캅의 도입 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치안을 로보캅이 경찰 대신 담당하는 그
“세상에서 제2바이올린을 제일 멋지게 연주하는 사람”, 로버트는 현악사중주 악단의 제1바이올리니스트를 갈망한다. 그는 더 이상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보조자의 자리 대신, 자신이 빛을 발하는 위치에 등극하고자 한다.하지만 쿼르텟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조화가 최고의 선인 ‘푸가사중주단’의 화음에 치명적인 노이즈가 된다.로버트는 인간의 야성적인 충동을 날것 그대로 폭발시키며, 극중에 팽팽한 긴장과 불협화음을 예리하게 불어넣는다. 그리고 관객들은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로버트의 그 욕구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다.지난해 상영된 마지막 사중주 : A Late Quartet이야기이다.극중에서 로버트 역을 맡은 배우는 그의 마음을 백지로 비우고, 대신 불타는 붉은 욕망을 채워 넣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가 표출해낸 감정의 굴곡이 그의 실제 체험인양 착각한다.이 메소드 연기의 달인의 이름은 바로 「Philip Seymour Hoffman」이다. 아니 정확히 그는 이제 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다.호프만은 지난 2일, 여전히 그의 백지에 그려 놓을 그 많은 화려한 그림들을 남겨 놓은 채, 46세의 나이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요절하였다. 아카데미가 사랑
If I had wings like Noah's doveI'd fly the river to the one that I loveFare thee well, my honey fare thee well‘내가 노아의 비둘기처럼 날아갈 수 있다면 강 건너 내가 사랑하는 그에게 날아 갈 수 있을 텐데 잘있어요 내사랑, 잘있어요‘ (Fare thee well) 노아가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처럼 그는 훨훨 날아가 사랑하는 이에게 살포시 안길 수 없다. 세상은 강 저편에 있는 연인에게 다가가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크가수 르윈이 그렇다. 그는 가스등카페에서 ‘Fare Thee Well’을 부른다. 르윈의 '님'은 세상의 멜로디와 융합하지 못하는 포크음악이다. 그는 그의 '님'을 붙들기엔 이제 지쳐버렸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코트 한벌조차 없는 그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는 그의 영원한 ‘님’인 포크음악의 곁에 머물러야 할까? 아니면 이 노랫말처럼 포크음악과 작별을 고해야 할까?#Inside Llewyn , 르윈의 내면에는...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음울하고 자조적인 포크 노래를 부르는 가수 르윈 데이비스. 세상은 그의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도 르윈은
[에드워드 호퍼, 바다와 면한 방 Rooms by the Sea, 1951]집 안에서 문 열린 틈으로 밖의 풍경이 보이는 작품이다. 집안과 문밖의 바다 모습은 양쪽 옆으로 잘려서 조금만 보이고 중앙은 넓은 벽이 있다. 그 벽에는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기하학적인 도형 모형으로 밝게 비치고 있다.이 작품에 표현된 모습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기 힘든 광경이라고 한다. 집의 문을 열면 바다가 넓게 보이는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인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아니라 혼란을 야기시킨다.또한 이 그림은 빛, 공간, 벽, 물, 공기등의 단순한 요소들의 상호연관으로만 구성되어있다. 기하학적이 형태들로 이루어진 직선적이고 각이 진 구조는 그의 후기 작품들에 두드러진다.빈방은 예술가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언급이라고 한다. 이는 진정한 고립감과 절박한 허무에 대한 또다른 표현이다.호퍼는 “모든 점에서 오브제와 오즈제의 재현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다.”라고 했다. 회화작품속의 오브제는 작가의 의식을 통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 받는 다는 것이다.◈오브제피카소가 자전거 핸들을 거꾸로 하여 안장위에 놓고 '황소머리'라는 제목을 붙였다 . 이때 자전거 핸들이 오브제이다."일상 우리가 쓰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 에칭]이 그림은 철침등으로 밑그림을 그린 다음 그라운드니스를 바르고, 동판을 산성용액 속에 담근 후, 그 부식된 선에 잉크를 스며들게 하는 에칭작품이다.건물위에서 아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어두운 거리에 밝은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호퍼는 인물이 왜소함을 강조하기 위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도입한다. 이것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이 대상을 위압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그 대상의 상대적인 힘과 권력을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주인공을 왜소하고 연약한 위치에 놓는다.길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인물은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뒷모습으로 재현된 인물은 우리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는 그저 군중의 일원일 뿐이다.비인격적이고 무미건조한 도시로부터 고립된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태로운 인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으로 해석한다.
[에드워드 호퍼 , 호텔 로비 1943 ]각각의 인물 중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익명성으로 인해 중성화된 인물들은 움직임이 없이 마치 초시간적인 공간 속에 놓여 진 듯하다.호퍼는 무관계성의 인간들을 통해서 대화가 존재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차가운 색채와 함께 묘사하고 있다. 호텔 로비의 밑그림이 되었던 초기 드로잉에서 호퍼는 노부부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이후 이들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또한 초기 드로잉에서 노부부의 옆에 그려 넣었던 인물을 이후 제거시켰다.인물을 그리고 다시 삭제하는 작업은 인간실존의 공통된 토대로 해석되는 공허와 허구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호퍼는 구성요소의 부재를 나타냄으로서 인간조건의 황량함을 드러내고 나아가 진정한 고립과 절박한 허무를 나타내고자 한다.
[에드워드 호퍼, 철로변의 집 House by the Railroad ]호퍼는 문명의 상징물로서 집,철길, 건널목,철도 신호 표지, 등대등을 자주 차요하였다. 그의 그림에서 집은 문명의 질서를 상징한다. 집은 문명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확연하게 구분지어주고, 그 두공간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다는 오브제이다.철로변의 집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속의 집은 철로가 들어서기 이전에 지어진 듯한 모습이다.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은 넓은 땅에 서있는 이집은 오랫동안 버려진 듯한 도시의 집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높은 옥탑과 지붕이 씌워진 현관, 측면으로 난 베란다는 지어질 당시 자연을 바라보도록 지어졌음을 짐작케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집앞에 철길이 드러섰고 집은 철길을 향하고 있다.이집이 버려진 듯안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철길 때문이다. 철길은 화면을 두토막 내고 있을 뿐 아니라, 집의 하부를 보이지 않게 하여 마치 철길위에 건설된 건물처럼 보이게하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아니라 문명과 자연의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오브제란 ?오브제 [ objet ]는 영어의 오브젝트(object)와 같은 뜻의 물체 또는 객체.피카소는 자전거핸
22살의 흑인청년 오스카 그랜트는 친구들과 새해 전야 축하파티를 즐기고, 프루트베일행 BART(Bay Area Rapid Transit:샌프란시스코灣 지역의 장거리 전철)로 East Bay로 돌아가고 있었다. BART는 2009년 새해 전야 파티를 하는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연장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오스카가 탄 맨 앞 칸에 싸움이 벌어진다.12명 가량의 승객이 엉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은 BART경찰은 프루트베일역에서 오스카와 몇몇 승객들을 끌어내고 그들을 체포한다. 경찰은 저항하는 오스카를 플랫폼 바닥에 엎드려 눕히고 수갑을 채우려 한다. 그 와중에 총소리가 나고, 오스카의 등에 피가 흥거니 흘러나온다. 뺨이 바닥에 닿은 채 엎드려 누워 있는 오스카를 향해 경찰이 총을 쏜 것이다. 그 모든 사건 진행 과정은 승객들이 찍은 핸드폰에 담겼다.이 사건에서의 경찰의 총격이 우발적인 실수로 인한 것인지, 고의적인 인종차별주의적 ‘처형’인지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오스카에 총을 쏜 경찰은 결국 involuntary manslaughter (우발적인 과실치사)를 선고받고 2년 복역 후 석방되었다.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원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