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재무부-연준 협정: ‘해방’에서 ‘정렬’로의 패러다임 전환
케빈 워시가 제안한 ‘신 재무부-연준 협정’은 1951년의 ‘재무부-연준 협정’과 흥미로운 긴장 관계를 형성합니다.
1951년의 협정은 연준이 재무부의 부속 기관에서 벗어나 역사적 독립성을 확립한 기념비적 사건이었습니다. 연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준은 단기채(T-bill) 수익률을 0.375%, 장기 국채를 2.5% 수준으로 고정하는 수익률곡선관리(YCC)를 시행하며, 사실상 정부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 협정을 기점으로 연준은 수익률 상한제(Yield Ceiling)의 굴레와 무제한 매입 의무에서 벗어났습니다. 비로소 재정 지원이 아닌 ‘통화 가치 안정’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따라 금리와 대차대조표를 운용할 수 있는 독자적 권한을 쟁취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워시의 ‘신 협정’은 연준의 독립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양 기관 간의 정책 정렬(Alignment)을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제시합니다. 이는 매우 실용적인 접근입니다. 과거의 협정이 정부로부터의 ‘완벽한 분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워시는 거대해진 국가 부채와 양적 긴축(QT)이 맞물린 복잡한 환경 속에서 양 기관이 서로의 경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운영상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1951년의 협정이 재정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사건이었다면, 워시의 구상은 각자의 정책 수단이 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경로를 설계하는 '전략적 조율'을 통해 독립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 신(新) 재무부-연준 협정의 두 축
워시가 제안하는 ‘신 협정’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나뉩니다.
첫째는 재무부의 부채 관리와 연준의 대차대조표 정상화(QT)가 상호 간섭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운영적 조율(Operational Alignment)이며, 둘째는 이 과정에서 시장에 제시되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통합하는 정책 신호 정렬(Signal Alignment)입니다.
① 운영적 조율: 행동의 정렬
연준의 QT는 자산의 직접 매각이 아닌 만기 상환분의 재투자 중단(Runoff)을 통해 민간이 보유해야 할 국채 잔액을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재무부의 발행 만기 구조(단기물 vs 장기물 비중)는 시장이 감내해야 할 금리 위험 총량(DV01)을 결정짓는 결정적 변수가 됩니다.
여기서 운영적 조율이란 QT와 국채 발행이 실질적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수단과 일정을 동기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재무부가 발행 만기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연준이 국채 발행 일정과 시장 유동성을 고려해 QT의 속도와 구성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수급을 평활화(Smoothing)하는 과정이 이에 해당합니다.
다만, 만기축 분산(Tenor Optimization)은 기본적으로 재무부의 부채 관리 도구이므로, 연준의 역할은 이를 공동 목표로 삼기보다 시장 기능과 유동성 여건을 반영하여 QT를 미세 조정하는 범위로 제한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② 정책 신호 정렬: 커뮤니케이션의 정렬
반면 정책 신호 정렬은 조율된 운영 계획을 시장에 어떻게 설명하고 기대를 형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재무부와 연준의 정책 타임라인을 사전에 일치시켜 제시하는 공동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 그리고 “연준 대차대조표를 어느 수준까지 정상화하고 이에 맞춰 발행 캘린더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를 두 수장이 함께 설명하는 형태의 공동 메시지 등이 이에 속합니다.
이때 공동 메시지의 목적은 금리라는 '결과물'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데 있습니다. 금리를 특정 수준에 가두는 '금리 캡' 방식이 아니라, 정책의 원칙과 제약 조건을 명확히 밝히는 가이드라인 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처럼 목표 수치가 아닌 운영의 규칙을 공개하는 방식이어야만, 과거 YCC처럼 금리를 강제로 묶어두려 한다는 오해를 피하고 연준의 독립성을 수호한 1951년 협정의 정신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③ 정렬의 효과와 구조적 긴장
운영적 조율이 실제 수급을 조정하는 '행동'이라면, 신호 정렬은 그 행동을 둘러싼 '내러티브'를 정합적으로 구성하는 일입니다. 이 두 축이 맞물려 작동할 때, 민간이 흡수해야 할 장기 듀레이션 리스크의 급증을 피할 수 있으며, 수급 충격으로 인한 기간 프리미엄의 돌발 상승을 억제하여 수익률 곡선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정책의 성패는 시장의 밑바닥 사정에 달려 있습니다. 시중 은행의 준비금 규모, 단기 자금을 주고받는 레포(Repo) 시장의 흐름, 그리고 금융 규제라는 필터가 정책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반대로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1951년 협정이 재무부로부터 선을 긋는 '독립 선언'이었다면, 워시의 구상은 서로의 보폭을 맞추는 '전략적 동행'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밀접하게 움직이는 만큼 '건전한 공조'와 '위험한 밀착'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위험도 내포합니다. 이 미묘한 경계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워시식 모델이 마주한 근본적인 숙제가 될 것입니다.
◆ ‘파편화된 발언’에서 ‘체계적 준칙’으로
재무부와 연준 간의 정책 조율은 QT의 궤적과 국채 발행의 궤적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장기 듀레이션 순공급의 급증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핵심 방안은 준칙 기반의 정책과 그에 따른 ‘투명성의 배당’ 효과입니다. 정책 조율(행동)과 준칙 설정(규칙)이 결합될 때, 시장 안정 효과는 비로소 강력해집니다.
① 만기축 분산의 역설: 수익률 곡선의 우상향 압력
QT로 인해 10~30년물 구간의 민간 공급이 급증하는 시기에 재무부가 단기채(T-Bills) 비중을 높여 대응하면, 시장의 DV01 임계치는 완화될 수 있습니다. 즉 재무부는 단기물 비중을 확대하여 발행 만기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해 장기물 순공급 급증을 완충합니다. 연준은 QT 속도와 구성을 시장 유동성 및 발행 일정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충격을 평활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기회비용이 따릅니다. 단기채 공급 증가는 단기 금리 상승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미래 단기 금리 경로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려 수익률 곡선을 우상향(스티프닝)시킬 수 있습니다. 채권 이론상 장기 금리는 대체로 ‘기대 단기 금리의 가중평균’과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의 합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② 기간 프리미엄 상승의 주범: 소음과 ‘예측의 공포’
이때 수익률 곡선의 우상향 압력을 상쇄할 핵심 변수가 바로 기간 프리미엄입니다. 현재 기간 프리미엄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는 연준의 ‘소음(Noise)’이 꼽힙니다. 연준 위원들의 잦은 연설과 파편화된 전망(점도표 등)은 시장에 명확한 정보가 되기보다, 막대한 해석 비용과 정책 불확실성을 축적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A 이사는 매파, B 이사는 비둘기파”식으로 위원 개개인의 성향을 분석해 정책 경로를 추정하는 소모적인 ‘관상’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충돌하는 메시지에 리스크 가중치를 부여하고, ‘정책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분산)을 가격에 반영합니다.
이러한 주관적 재량에 대한 예측의 공포는 장기채 보유 시 더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게 만들며, 이것이 곧 기간 프리미엄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즉, 개인적인 견해(Musings)를 수시로 공유하는 기존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시장에 불필요한 소음을 발생시키고 투자자에게 불확실성 프리미엄을 전가해 온 셈입니다.
③ 노이즈 제거: ‘파편화된 발언’에서 ‘체계적 준칙’으로
따라서 이론적으로 커브의 평탄화(Flattening)를 유도하기 위한 핵심 방안은 예측의 공포를 낮추는 것입니다. 연준 위원들의 파편화된 발언(Speech)을 테일러 준칙(Taylor Rule)과 같은 수학적 모델 기반의 투명한 ‘신호’로 전환할 때, 기간 프리미엄은 축소될 수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의 준칙은 금리 변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위험을 완화합니다.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공개된 ‘반응함수’에 따라 미래 금리 경로를 선제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면,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안개가 사라집니다. 결국 준칙 기반의 접근이 이루어지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극대화됩니다.
그 결과, 단기 금리가 다소 상승하더라도 투자자들이 느끼는 불확실성 프리미엄의 하락 폭이 그 수치적 비용보다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명확한 정책 준칙을 통해 리스크 프리미엄을 제거함으로써, 단기 금 상승 압력 속에서도 장기 금리를 안정시키고 수익률 곡선을 평탄화할 수 있다는 이론적 시나리오가 도출되는 것입니다.
◆ ‘준칙 기반 정책’이 제도적 장치가 되는 3가지 메커니즘
준칙 기반 정책은 단순한 수학 공식을 넘어, 중앙은행의 재량이 발휘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설계한 제도적 패키지입니다.
이 패키지의 핵심은 재량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반응함수의 기준점 설정 △입력값 거버넌스 △예외 조항의 규칙화를 통해 재량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있습니다.
① 정책 반응함수(Reaction Function)의 ‘기준점’ 설정
현대 통화정책은 '깜깜이식 결과 통보'에서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투명한 공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금리를 0.25%p 인상한다"는 식의 단편적인 결론만 시장에 던져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정책 반응함수(Reaction Function)' 자체를 공표하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표준 매뉴얼’로서의 기준점:
가장 큰 변화는 정책의 '기준점(Reference Point)' 설정입니다. 테일러 준칙과 같은 수학적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연준이 경제 데이터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표준 매뉴얼'을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체제하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연준 위원들의 모호한 발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용과 물가 등 핵심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투자자들은 연준의 매뉴얼을 계산기에 대입해 "기준점에 따르면 다음 회의의 금리 수준은 이 지점이 될 것"이라는 식의 정책 경로를 선제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됩니다.
[참고] 테일러 준칙(Taylor Rule): 인플레이션과 경제성장률(GDP 갭)에 따라 적정 정책 금리를 산출하는 수식입니다.
it=r*+πt+ϕπ(πt−πt*)+ϕy(output gap)
여기서 it는 명목 정책금리(예: 기준금리), r*는 균형(real) 이자율, πt는 현재 인플레이션,ϕπ는 인플레이션 갭에 대한 반응 계수, πt*는 균형(real) 이자율, ϕy는 산출갭에 대한 반응 계수, output gap은 산출갭(실제 GDP 대비 잠재 GDP의 괴리)
여기서 반응계수는 “과거 정책이 실제로 어떻게 반응했는지”와 “모형에서 어떤 값이 가장 성과가 좋은지”를 섞어서, 중앙은행이 추정합니다.
⒝‘관상’에서 ‘정합성’으로:
이러한 반응함수의 공개는 시장 내에 고착화된 심리적 불확실성을 상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위원의 성향(매파 혹은 비둘기파)이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이 강했으나, 준칙 기반의 소통은 이러한 개인적 편차를 제도적 규칙 안으로 흡수합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중앙은행의 결정이 위원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일정한 규칙성과 내부적 정합성을 갖춘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기대를 강화하게 됩니다.
⒞기대 효과
정책의 급변동 리스크를 낮추고, 불확실성에 대비해 투자자들이 요구하던 '리스크 프리미엄'을 실질적으로 하락시킵니다.
② 입력값(Input) 산정 원칙과 데이터 거버넌스
테일러 준칙의 실질적인 효력은 수식 자체보다 그 안에 투입되는 데이터의 신뢰성에서 비롯됩니다. 준칙이 중앙은행의 주관적 재량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입력값 산정에 관한 엄격한 규칙과 거버넌스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연이자율(r*)의 객관화: 실시간 관측이 불가능한 자연이자율을 연준이 임의로 설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전에 합의된 특정 추정 모델(예: Laubach–Williams 계열)과 데이터 업데이트 규칙에 따라 산출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정책의 객관성을 확보합니다.
⒝산출갭(Output Gap)의 투명성: 잠재 GDP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노동참여율, 생산성, 인구구조 등의 지표를 어떤 가중치로 반영하는지 그 방법론을 상세히 공개합니다. 이를 통해 지표 해석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합니다.
⒞기대 효과: 시장 참여자들이 연준과 동일한 기초 데이터와 가공 원칙을 공유하며 유사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데이터 거버넌스의 확립은 정보 비대칭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③ 예외 조항(Escape Clause)의 규칙화
그런데 준칙에만 매몰될 경우 전쟁, 팬데믹, 금융위기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유연적인 특성이 요구됩니다. 이는 ‘예외’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예외를 규칙화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하지만 예외를 허용하면 정책 신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즉 재량이 즉흥적으로 행사되면 정책의 신뢰가 훼손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 장치가 바로 예외의 규칙화입니다.
⒜계획된 재량(Planned Discretion): 예컨대 금융 스트레스 지수(FSI)가 특정 임계치를 상회하거나 시스템적인 유동성 경색이 확인될 경우, 준칙 적용을 일시 정지하고 긴급 유동성 조치를 취한다는 조건을 사전에 명시하는 것입니다.
⒝복귀 경로(Return Path): 예외 조항을 가동할 때에는 단순히 개입에 그치지 않고, 다시 준칙 체제로 복귀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시장 변동성 완화, 신용 스프레드 정상화 등)을 함께 제시합니다.
⒞기대 효과: 위기 상황에서도 연준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믿음이 형성됩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과도한 리스크 보험료를 요구하는 것을 완화하며,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의 극단적인 발작을 방어하는 안전판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 투명성의 배당 (Transparency Dividend)
준칙에 기반한 정책이 안착되면, 시장에는 이른바 투명성의 배당이 발생합니다. '투명성의 배당'이란 중앙은행이 정책 결정의 원칙과 과정을 시장에 명확히 공개함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불확실성 비용(Uncertainty Cost)을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으로 되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배당은 다음과 같은 3단계 메커니즘을 통해 실현됩니다.
① 예측 가능성 증대: "정책 경로의 안개를 걷어내다"
투명성의 배당은 중앙은행이 모호한 언어적 약속(Forward Guidance) 대신, 데이터에 기반한 명확한 준칙(Rule)을 소통의 도구로 삼을 때 시작됩니다. 그 결과 시장은 더 이상 개별 위원들의 성향을 분석하는 소모적인 '관상학'에 의존하지 않게 됩니다. 경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공개된 '반응함수'에 따라 미래 금리 경로를 누구나 선제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며,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안개는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② 리스크 전가 중단: "해석의 난제와 보험료를 제거하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복잡한 수수께끼를 던지지 않음으로써, 투자자들이 지불하던 무형의 해석 비용을 제거합니다. 과거에는 정책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투자자들이 장기채 보유 시 높은 위험 보상금(Risk Premium)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투명한 체계가 안착되면 시장은 이러한 '보험료'를 더 이상 청구할 명분이 사라집니다. 이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자본 조달 비용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③ 실질 금리의 하향 안정: "장기 금리의 마법, 디커플링"
투명성의 배당이 가져오는 가장 극적인 결과는 단기 정책 금리와 장기 시장 금리의 디커플링(Decoupling)입니다. 설령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연준이 단기 정책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정책의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담보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정책 불확실성에 기인한 기간 프리미엄이 단기 금리 상승 폭보다 더 크게 하락한다면, 장기 실물 금리(10년물 국채 금리 등)는 오히려 안정되거나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④ 종합적 효과 : 신뢰와 체계가 만드는 경제적 성과
결국 투명성의 배당은 중앙은행이 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체계'라는 공공재를 제공함으로써 시장 스스로 리스크 비용을 낮중에 만드는 고차원적인 통화정책의 성과입니다. 이는 부채 과잉 시대에 중앙은행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가격적(Non-price) 정책 수단이 될 것입니다.
◆ 부채의 시대, 독립성을 넘어 ‘신뢰의 거버넌스’로
케빈 워시가 제안한 ‘신 재무부-연준 협정’은 단순히 두 기관의 행정적 편의를 위한 결합이 아닙니다. 이것은 국가 부채의 급증과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거대화라는 환경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더 이상 ‘단절’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적 고찰의 산물입니다.
앞선 분석과 같이, 재무부의 발행 전략과 연준의 긴축 궤적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운영적 조율’은 시장이 감내해야 할 금리 위험(DV01)의 과부하를 막는 실질적인 안전판이 됩니다. 또한, 파편화된 언어적 소음을 배제하고 수학적 모델에 기반한 ‘체계적 준칙’을 도입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전가되었던 ‘해석의 비용’을 거두어들이는 혁신적인 소통의 전환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져올 ‘투명성의 배당’은 긍정적인 결과를 약속합니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극대화될 때, 시장은 스스로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며 단기 금리의 상승 압력 속에서도 장기 실물 금리를 안정시키는 저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직접 주입하지 않고도 ‘체계와 신뢰’라는 공공재를 통해 시장의 자생적 안정을 이끌어내는 고차원적인 정책 성과입니다.
물론 이 여정에는 ‘건전한 협력’과 ‘위험한 예속’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 제도적 긴장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1951년의 협정이 연준에게 재무부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했다면, 이제 워시의 구상은 그 자유를 가진 연준이 어떻게 재무부와 ‘책임 있는 공조’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 협정’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수식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아니라, 정책의 원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약속을 일관되게 이행함으로써 시장의 확신을 얼마나 얻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독립성이라는 이름의 고립이 아닌, 준칙이라는 이름의 투명성이 지배하는 시대—그것이 바로 워시가 그리는 새로운 거시경제의 풍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