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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

[조선 자본주의 맹아론 ② ] 봉건제해체와 근대자본주의의 형성 과정

봉건제에서 근대자본주의로의 이행의 논쟁은 Maurice Dobb과 Paul Sweezy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Sweezy는 봉건제도가 그 자체의 내부모순에 의해 해체된 것이 아니라 상업의 힘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Dobbs는 내부적 해체 과정 안에서 직접생산자층의 분화를 직접적인 해체 동인으로 보았다. 
         

◆ Paul Sweezy 

Sweezy는 봉건제도는 그 자체의 내부모순에 의해서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무관한 외래적인 힘 (External Force)에 의해서만 해체된다고 생각하였다. 

이 외래적인 힘은 상업인데, 그 중에서도 원격지상업 (long distance trade)이 서구의 봉건제를 해체시키고 자본주의생산을 창조하는 힘이었다고 본다. 

Sweezy의 견해는 Bruno Hildebrand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Hildebrand는 사회경제발전단계를 ‘자연경제 → 화폐경제’로 파악하였고, 특히 화폐경제의 발달이 자본주의 성립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Lujo Brentano도 상업과 금융업이 번영하여 이것을 기반으로 이윤이 추구되었고, 이것이 곧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해했다. 

이처럼 Sweezy적 입장은 화폐경제의 발전내지 상업의 발전이 자본주의의 확립을 가져왔다고 주장함으로서,  상업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변화로서 자본주의의 발달을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 Dobb 

Dobb는 봉건제에서 자본제로의 이행원인을 종래의 상업화이론을 비판하면서, 독립생산자층의 양극분해과정을 바탕으로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상업의 발전 및 상인자본이 기존의 생산체계에 대해 분해작용를 일으키게 한 것은 사실이나, 새로운 생산체계를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Dobb는 농노들의 계층분해 과정에서 나타나는 산업부르조아지와 노동자계급의 출현에서 근대자본주의 성립의 원인을 찾고 있다. 

Dobb의 시각으로 보는 Sweezy의 비판론자들도 세계상업의 발전은 각국의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주종환교수는 영국, 동부독일, 그리고 스페인등이 상업발달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동부독일에서는 16세기에 수출무역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노동지대의 부활강화에 의한 영주제의 강화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은 17세기에 근대시민 혁명을 수행하였고, 뒤이어 산업혁명을 가장 빨리 그리고 자생적으로 달성하여 자본주의의 고전적 형태가 조성되었다. 

주교수는 세계상업의  주역이었던 스페인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자국에 발전시키지 못하고, 영국의 자본주의적 상업자본에 무릎을 꿇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상업적으로 발달한 국가들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에 있어서, 자본은 구생산양식에 기생하면서 생산양식과 무관하게 존재하였다. 이처럼 전근대적 생산양식 밑에서 상업자본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상업자본이 생산양식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업의 확장 및 새로운 세계시장의 창조가 구생산방식의 후퇴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지만, 실제로 거꾸로 이미 수립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위에서 상업이 융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근대적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중세의 내부로부터  성장 발전했다는  주장이 대두된다. 



▣ 생산력의 하락, 화폐경제, 자유농민의 계층분화 ➜ 봉건제해체와 근대자본주의의 형성 

영주와 농노간의 경제외적 강제의 붕괴가 핵심인  봉건제는 생산력의 하락으로 부역지대가 화폐경제의 발달에서 비롯된 화폐지대로 변화됨에 따라 해체된다.

화폐지대의 변화는 경제외적 강제라는 인적 강제대신 물적 관계로 변화되고, 이는 자유농민의 창출과 생산력의 증대를 초래한다. 

 효율적 생산력을 거둔 농민은 자본가로 부상하고, 생산력 향상에 실패한 농민은 소작농과 이후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어 자유농민간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진다.  


▶생산력의 하락 

봉건제 해체의 직접적인 계기는 생산력의 하락이었다. 

3백년동안이나 전진시켜 왔던 농촌개간이라는 기본적 원동력이  객관적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낮은 기술수준하에서 계속적인 인구증가, 토지수확고의 하락, 개간 가능한 토지의 고갈, 토양의 척박화로 인한 생산성하락이 일어났다.

수확부진은 금방 인구과잉현상으로 이어진다. 인구과잉이 더욱 심해지면  기근에 따른 인구감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348년의 페스트발생으로 인해 인구감소가 급격해졌다.

이에  수요감소, 곡가하락, 봉건지대하락등이  초래되어  봉건경제가 중대한 내재적 모순으로 꼼짝 못하게 되었다. 


▶부역지대가 화폐지대로 변화 

이의 모순에 대한 해결은  강제적인 부역노동에 의한 직영지경영에서  화폐지대에 의한 직영지임대였다.

여기서  상업의 발달, 화폐경제의 도입 및 도시의 발흥이  장원중심의 봉건경제구조의 해체를 가속화시켰다.  

상업 및 시장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농민이 화폐를 축적하여 그것을 영주에게 지불됨으로서 노동부역을 면하고  화폐지대가 붙은 자유로운 토지가 증가됨으로서 농민이 부당한 노동부역으로 해방되었다. 

생산물지대에서 화폐지대로의 변화는 고전장원제하의 영주직영지를 해체하게 하여 농민들에게 분할 경작하게 함으로써 순수장원제의 성립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노동지대가  화폐지대의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농노는 봉건영주에게 더 이상 노동이나 생산물의 형태로 지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의 가격을 화폐로 지불하였다.  

결국 영주에 의한 대규모 토지소유가 봉건사회의 생산력 수준에 맞는 소규모 생산과의 모순을 첨예하게 일으킴으로서 봉건경제의 전면적인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생산력위기를  소유관계의 변화를 통해 극복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봉건적 생산양식의 생산력이 더 이상 발전 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봉건제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경제외적 관계에서 계약관계로 

토지소유의 변화는 노동지대실현의 방식인 경제외적인 강제 (영주재판권)의 형태도 변화하게 하였다. 

영주의 자의와 이에 따라 제약되던 부역은 영주 수취의 자의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일정한 크기로 규제되는 계약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봉건영주와 농민의 관계가 대인적 방식에서 대물적 방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와같은 지배관계의 변화는 농노의 실질적 해방으로 이어지고 자유농민이 등장하게된다. 


▶생산력의 발전

이들은 농업경영자로서 생산의욕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되어 자유농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증대시키게 되었다. 

 순수장원제하의 농노는 이제 직접 생산자로서 자기의 보유지에서 全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농업생산에 종사하게 되었고, 나아가 자신의 계산과 책임 아래 생산물의 형태로 영주에게 지대를 납부하게 되었다.

따라서 자기자신에 속하는 생산물을 생산할 초과 노동시간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다 커지게 되었다. 종래의 노동지대에서 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농노들은 가지게 되었다. 이는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다. 


▶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형성: 독립생산자층의 계층분화

자유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는 자신의 경영능력에 따라 부의 차이를 가져오게 하였다. 합리적 경영에 의해 부를 축적한 농민들은 다른 농민들의 토지보유권을 매입하여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해 갔다. 

이에 반해 토지보유권을 상실한 농민들은 점차 빈농,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토지보유권을 가지는 부농과 이를 상실한 빈농으로 농민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농업자본주의가 점차 생산력을 증대하여 공업생산 중심으로 이행하게되어 산업자본주의의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산업자본주의는 자본이라는 생산수단을 가지는 자본가와 자본을 가지고 있지않는 노동자로 분화되었다. 토지소유권을 상실한 농민은 산업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계급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처럼 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직접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해서 부를 축적함으로써, 생산 대중들간의 경제적분화가 심화되어, 한편으로 생산수단과 임노동을 살 수 있는 자본가층과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계를 꾸릴 수 밖에 없는 임노동자층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다.







[디비시아 지수의 가중치] 디비시아 방식의 경제이론적 정합성: 생산탄력성과 비용점유율의 일치 원리 디비시아 방식은 경제이론과 높은 정합성을 지닌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6월4일자 「MFP와 디비시아 지수」기사에서도 간략히 언급된 바 있습니다. “MFP계산에서 디비시아 방식은 ‘요소비용점유율= 한계생산성의 기여율’이라는 경제이론과 일치합니다. 이는 MFP계산에서 디비시아 방식이 생산함수의 이론구조와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각 투입요소의 기여도를 현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디비시아지수는 각요소의 비용점유율을 가중치로 삼아 총투입로그변화율을 계산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 가중치로 사용되는 ‘요소의 비용점유율’이 곧 ‘요소의 생산탄력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가중치가 요소의 생산에 대한 실질기여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소의 비용점유율=요소의 생산탄력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생산자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비용점유율을 가중치로 삼는 디비시아 방식의 구조에는 생산자의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따라서 디비시아 지수는 단순한 통계적 평균이 아니라, 생산자 이론과 일관된 경제이론적 기반위에 구축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