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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QT

[ 말씀 QT ] ‘구주’를 넘어 ‘주님’으로: 신앙의 완성은 주권의 이양 < 그리스도의 주 되심(Lordship) >

-내 인생의 최종 판결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에베소서 1장 20–23절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which He brought about in Christ,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places,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and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named, not only in this age but also in the one to come. And He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and gave Him as head over all things to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 — Ephesians 1:20–23



◆ 구주와 주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수를 나를 구원하시는 구주(Savior)로는 비교적 쉽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삶을 다스리시는 주(Lord)로 모시는 데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신 분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예수께서 자신의 삶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삶의 주인도, 판단과 결정의 최종 권한도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주(Savior)가 죄와 심판에서 나를 건져 내시는 분이라면, 주(Lord)는 나의 선택과 가치관, 삶의 방향 전체를 다스리시고 자원을 공급해주시는 분입니다. 곧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단지 구원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인생 전체의 최종 소유자이자 결정권자 그리고 자원의 공급자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거듭 지적하듯, 성경은 구주와 주를 결코 분리하지 않습니다. 초기 교회의 신앙은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고백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더 나아가 “나는 이제 그분께 속한 자이며, 그분의 통치 아래 있는 자”라는 고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것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단지 나를 돕는 분이나 위로하는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내 삶 전체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신약이 예수를 ‘퀴리오스(κύριος)’, 곧 ‘주’라고 부르는 것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서 퀴리오스는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나의 삶 전체를 실제로 통치하시는 주인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에서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YHWH)가 주로 퀴리오스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이 예수께 동일한 호칭을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께 존칭을 붙인 차원이 아니라, 구약에서 하나님께 돌려졌던 주권과 권위의 칭호를 예수께 그대로 적용한 것을 뜻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요엘 2장 32절과 로마서 10장 13절의 관계입니다. 


“And it will come about that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요엘 2:32)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롬 10:13)


위의 말씀처럼 선지자 요엘은 “누구든지 여호와(YHWH)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선포했습니다.  LXX(칠십인역)는 이것을 “주의(퀴리오스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로 옮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주(퀴리오스)’를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지칭합니다. 로마서 10장 9–13절의 문맥상,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신약이 구약에서 여호와께 돌려졌던 ‘주(퀴리오스)’의 칭호와 구원의 약속을 예수께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그분을 단지 위대한 스승이나 구원의 매개자로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참여하시는 분, 곧 나와 세계 위에 최종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참고) 퀴리오스의 의미와 야훼가 Lord로 표현된 과정


야훼가 퀴리오스 그리고 Lord로 표현되는 과정의 핵심 고리는 기원전 3세기경에 번역된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LXX)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구약 원문에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 YHWH(야훼/여호와)가 약 6,800여 회 등장합니다.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이 ‘야훼’를 대부분 κύριος(퀴리오스)로 번역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YHWH는 칠십인역에서 약 6,000~6,800회 정도 퀴리오스로 옮겨졌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κύριος는 “master”(주인, 소유자, 통치자)라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이는 집안의 가장, 노예의 주인, 재산의 소유자, 또는 권위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실질적인 지배·소유 용어였습니다. 단순한 존칭(“sir”)이 아니라,  통치권을 가진 강한 뉘앙스를 지녔습니다.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야훼를 “나에 대한 절대적 통치권을 가진 주(主)”로 이해하고 이 단어 퀴리오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후 여호와가 영어 Lord로 번역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퀴리오스는 라틴어 표준 성경인 불가타(Vulgata)에서 Dominus(주님, 주인)로 번역되었습니다. 즉, 그리스어 ‘주(주인)’를 라틴어 ‘주(주인)’로 자연스럽게 옮긴 것입니다.


그 후 라틴어 Dominus는 영어 성경에서 Lord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는 라틴어 “주인”을 영어의 “주인(가장, 통치자)” 개념으로 대체한 결과입니다.




◆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공적으로 선포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인간의 동의나 교회의 결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 안에서 공적으로 선포되고 드러난 현실입니다. 이 점은 에베소서 1장 20절에서 23절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which He brought about in Christ,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places,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and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named, not only in this age but also in the one to come. And He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 and gave Him as head over all things to the church, 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 — Ephesians 1:20–23)


1:20절에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선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which He (하나님 아버지) brought about in Christ, when He (하나님 아버지) raised Him (예수 그리스도)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예수 그리스도) at His (하나님 아버지의) right hand in the heavenly places.”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에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선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살리시고… 앉히사”의 주어는 하나님 아버지이며, “자기의 오른편”은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22절에서도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치자로 명명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통치자이심을 하나님께서 친히 드러내시고 선언하셨다는 뜻입니다.


 “And He(하나님)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예수) feet, and gave Him(예수) as head over all things to the church,”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는 구절을, 마치 예수께서 원래는 주가 아니셨는데 그때 처음 ‘주’가 되신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Therefore let all the house of Israel know for certain that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this Jesus whom you crucified.”(NASB)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이 말씀을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미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며, 성부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통해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역사 가운데 공적으로 선포하시고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고백한다는 것은, 단지 위대한 성인의 한 사람을 경배하는 일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을 성부께서 직접 "만물의 통치자"로 선포하셨기에(요 1:1),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내 삶을 정렬시키는 일입니다.


✽ (요 1:1)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다시 말해 예수를 주로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경배를 넘어선 '주권의 이양'입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의 우주적 통치앞에서 내 삶의 주권이 그리스도께 있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이는 내가 인생의 주인 노릇 하던 오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 아래 나를 두는 일입니다.  그 결과 그분의 뜻이 내 삶의 유일한 질서가 되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핵심은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예수는 단지 나를 죄에서 건져내신 구주이실 뿐 아니라, 지금도 나의 생각과 가치관, 선택과 방향을 다스리시는 주이십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고백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나는 이제 그분께 속한 자이며, 그분의 통치 아래 살아간다”는 고백으로 나아갑니다.



◆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부른다는 것의 의미 세가지 


예수를 ‘주’라 부르는 고백은 에베소서 1장 20–23절에서 드러나듯 세 가지 중대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에베소서 1장 20–23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름 위에 뛰어나게”( far above all rule and authority and power and dominion, and every name that is named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He put all things in subjection under His feet)고 선포합니다. 


이 선언은 단일한 진술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층위의 주권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첫째, 우주적 주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와 권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분으로 제시됩니다. 이는 그분의 통치가 특정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우주와 역사,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전반에 미친다는 뜻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선택 가능한 신앙의 옵션이 아니라, 이미 선포된 객관적 현실입니다.


둘째, 교회의 머리 되심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 사명과 가치 기준이 인간의 합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규정된다는 전제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머리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판단과 실천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의지에 종속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주 되심은 전인격적인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의 경고처럼, '주여'라는 부름은 단순히 구원을 요청하는 암호가 아니라 내 삶의 운영 체제를 그분의 뜻으로 교체하겠다는 서약입니다. 결국 주권의 실체는 입술의 고백을 넘어, 일상의 사소한 선택부터 거대한 위기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의지가 나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순종의 체계로 나타나야합니다. 


* (마태복음 7장 21절 )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the on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will enter."(NASB)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요약하면, 예수를 ‘주’라 부른다는 것은 내가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자이신 그분을 내 삶의 절대적 주권자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즉 나를 구원하신 그분이 이제는 내 삶의 실질적인 주인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뜻이 나의 선택과 인생의 유일한 기준이 되게 하는 ‘주권의 전격적인 이양’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주’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구원하신 분일 뿐 아니라 지금도 나와 세상 위에 절대적 권위와 소유권을 가지신 참된 주인이시며, 나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도록 부름받은 존재라는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