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히브리서 11:6
◆ “God is good” 한 마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나온 고백
이란 방공망에 격추된 F-15E 전투기에서 비상 탈출한 미군 무기체계 장교는 적진 한복판에서 부상당한 채 36시간 동안 바위 틈에 숨어 있었습니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가 보낸 첫 무전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God is good. 하나님은 선하시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고백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강한 믿음이다”, “멘탈이 대단하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은 이 장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합니다. 이 고백을 인간의 심리적 강인함이나 종교적 의지의 산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의 결과로 드러난 신앙의 반응, 곧 자기부인의 형태로 나타난 살아 있는 기도로 이해합니다.
다시말해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나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과 사건에 대한 해석과 결론을 스스로 붙들고 있으려는 본능을 내려놓고, 그 최종 판단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 앞에서까지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성화는 어떻게 이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만드는가.
◆ 성화, 네가지 변화
성화(Sanctification)는 그리스도인이 평생에 걸쳐 경험하는 거룩함의 성장 과정입니다.
즉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① 존재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의 전환
성화의 가장 깊은 층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삶의 중심이었고, 판단과 의미 부여의 기준도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 안에서 신자는 점점 더 분명히 다음과 같이 깨닫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다.”
이것이 자기부인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입니다. 자기부인은 자기 존재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기는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② 성품 변화: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방향으로의 변화
성화는 감정과 성향, 즉 성품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바뀌는 변화입니다.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의 성품은 점점 다른 기준을 따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전에는 죄가 자연스럽고, 자기 만족과 자기 보호가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신자는 점점 더 하나님을 기뻐하고, 죄를 불편해하며, 자기중심적 욕망을 경계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복잡한 행위의 목록을 충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핵심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Him, for the one who comes to God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proves to be One who rewards those who seek Him.”(NASB)
이 구절에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단순 막연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선하심·보상하심(언약 신실함)을 신뢰하는 태도로 규정합니다. 즉 이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⓷의지 변화: 선택의 기준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주권을 이동하는 것
성화는 의지의 변화를 동반합니다.이 변화의 핵심은 단순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주권 자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스스로 쥐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의미를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는 권한도 자신에게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위기의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나는 끝났다” “이 상황은 절망이다” “이제 방법이 없다”
와 같은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판단의 주권을 자신이 행사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화가 진행될수록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뀝니다.
신자는 점점 더 “이 사건의 최종 판단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즉 의지의 변화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전에, 누가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주권의 이동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내리는 결론”보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결론”을 따르려는 의지로 나타납니다. 즉 자기부인은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주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재정렬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실제 삶에서 드러나는 순종의 열매
성화는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존재와 성품, 의지의 변화는 내면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반응과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즉 성화란 단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실제 위기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검증되는 삶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두려움에 휩쓸려 절망으로 반응하고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통제하려 하며 △불평과 불안으로 대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성화가 이루어질수록 신자의 행동은 점점 달라집니다.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통제하려 하기보다 맡기며, 불평 대신 신뢰로 반응하는 방향으로 바뀝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싶은 방식”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선택”으로 나타납니다. 즉 생각과 의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반응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행동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종합하면,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화는 존재·성품·의지·행동 전체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이 변화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로 인정하는 삶’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됩니다.
◆성화의 네가지 변화 : 조종사의 사례
앞선 성화의 네가지 변화는 조종사의 사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① 존재의 변화: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인정입니다
적진 한복판, 언제 발각되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붙잡으려 합니다.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극대화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조종사가 내놓은 첫 언어는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은 선하시다”였습니다.
이 고백은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존재적 인정입니다. 즉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생사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쥐려 하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자신을 위치시킨 것입니다.
② 성품 변화: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려는 방향으로의 변화입니다
조종사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에 대한 결론을 스스로 확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고 △자신의 결론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했으며 △자신의 통제 욕구보다 하나님께 맡김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되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기부인은 분명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따르는 마음, 곧 하나님을 선하신 분으로 인정하는 믿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부인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 전환입니다.
③ 의지 변화: 주권의 이동
적진 한복판,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종사는 충분히 자신의 상황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죽을 수도 있다” “이 상황은 절망적이다”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첫 번째 언어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말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의 최종 해석자가 되기를 거부한 의지의 선택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판단을 확정하지 않았고 상황에 대한 최종 결론을 스스로 내리지 않았으며
그 판단의 권한을 하나님께 넘겨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권의 이동입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이 상황을 규정하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가 최종적인 것이다” 라는 위치에 섰습니다.
결국 의지의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삶과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권을 자신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이양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바로 그 주권 이동이 실제로 드러난 의지의 선택입니다.
④ 행동 변화: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단순히 마음속으로만 신뢰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신뢰는 즉각적인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보낸 첫 무전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그 순간 그가 선택한 행동의 방향이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압도된 반응을 선택하지 않았고 절망적인 결론을 외부로 확정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응답했습니다. 즉 그는 그 순간 두려움에 반응하는 행동 대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는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성화가 행동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결국 행동 변화로 나타나는 자기부인은,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본능적 반응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며, 조종사의 고백은 바로 그 신뢰의 열매로 드러난 사례입니다.
◆성화의 근원: 이 모든 변화는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존재·성품·의지·행동의 변화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덕적 성장이나 훈련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화의 본질은 인간의 결단이나 의지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This effectual call is of God’s free and special grace alone… who is altogether passive therein, until… quickened and renewed by the Holy Spirit.” (WCF 10.2)
“이 유효한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며… 인간은 그 안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성령에 의해 살아나고 새롭게 될 때까지는 그렇다.”
이 고백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신앙의 시작도, 성화의 진행도 인간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과 칼빈주의 신학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성령의 선행적 역사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선하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 일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상황을 자기 기준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붙드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인간의 자연적 반응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는 반응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성화의 근원이 드러납니다. 성화의 근원은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성령께서 먼저 죽어 있던 영혼을 살리시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성품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시고, 그 신뢰를 실제 선택과 반응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즉, 신자의 믿음과 신뢰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면에서 먼저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 결과로 신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방향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화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할은 그 원인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은혜에 의해 가능해진 응답입니다.
◆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찬양의 언어
조종사의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언어나 개인의 정신력에서 나온 반응이 아닙니다.
이 고백은 △성령께서 먼저 그의 영혼을 살리시며 △ 믿음을 일으키시며 △그 믿음을 성화의 과정 속에서 자라게 하시고 △마침내 극한의 상황 속에서 드러나게 하신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격적 응답입니다.
그는 그 순간 △존재의 차원에서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했고 △성품의 차원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의지의 차원에서 판단과 결론의 권한을 하나님께 이양했고 △행동의 차원에서 그 신뢰를 실제 고백으로 드러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God is good.” 이라는 말로 응축되어 드러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은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성령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신 성화가 한 순간에 집약되어 드러난 사건입니다.
성화란 인간이 스스로를 붙들고 더 강해지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인간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의 해석과 결론을 붙들지 않고,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바로 그때, 신자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이 있습니다.
“God is good.”
이 고백은 상황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확신이며, 자기 중심적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최종 주권자로 인정하는 신앙의 결론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인간의 의지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루신 성화가 전인격적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변화된 것에서 나온 것으로,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의 언어입니다.
■ 곡명 "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내 구원주 살아계심을 내가 아니(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 song by Kiri Te Kanawa
욥기 19장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의 핵심은 '느낌(feel)'이 아니라 '앎(know)'에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교리를 배웠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기에, 지금 이 적진 한복판에서도 나는 그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인격적인 신뢰를 포함합니다. 조종사의 고백처럼 생존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상황을 해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이라는 확정된 진리에만 근거하여 내뱉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이처럼 내 구원자(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