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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MAGA 운동의 본질 ①] ‘자유의 공백’을 메우려는 보수주의적 재구성

◆ MAGA 운동의 본질 :‘자유의 공백’을 채우는 것

미국 MAGA 운동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이는 보수 진영이 중시해 온 소극적 자유를 추상적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현실에서 작동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보수주의는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주창한 '소극적 자유' (외부의 강제와 국가의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를의 자유)를 자유의 본질로 간주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감세와 규제 완화는 개인의 선택 가능성을 확장하는 보수의 전통적인 정책 도구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러나 벌린의 소극적 자유는 현실에서 자유가 실제로 행사되도록 만드는 조건까지 보장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일례로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국내 공장이 폐쇄되고 지역 산업이 붕괴할 때, 개인에게 남겨지는 것은 오직 ‘실업의 자유’뿐입니다. 생계 수단이 박탈된 삶 속에서 국가의 비간섭과 감세는 체감되지 않는 허울에 불과합니다. 또한 권력이 사유화되어 '연고' 없이는 사업조차 불가능한 사회라면, 규제 완화가 곧 공정한 경쟁과 비지배의 자유로 이어질 수도 없습니다.

결국 "형식적 비간섭만으로는 자유가 성립되지 않거나 공허해진다"는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이러한 자유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결핍이 바로 '자유의 공백'입니다. 

미국의 MAGA 운동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대중적 요구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국 MAGA는 소극적 자유의 실효성을 향한 투쟁

미국의 MAGA는 현상적으로는 거친 포퓰리즘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현대 보수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응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응답의 핵심은 '자유의 실효성'에 대한 자각입니다. 

MAGA는 정치가 '소극적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내세울지라도, 시민의 일상에서 그 자유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순간, 자유주의의 정치적 설득력은 급격히 붕괴한다는 인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MAGA는 단순한 복고적 향수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가 대중의 삶에 닥친 실존적 불안과 지역 공동체의 붕괴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현실로부터 기원합니다. 

결국 MAGA의 사상적 본질은 "소극적 자유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물질적·사회적 토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전면화하는 데 있습니다.

①소극적 자유의 재해석: 간섭의 부재가 자유를 낳는가?

본래 소극적 자유는 외부의 강제나 국가의 간섭이 부재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자유주의적 보수는 국가가 시장에서 물러나고 감세와 규제 완화를 단행하면 개인의 자유가 자연히 극대화될 것이라는 신념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노동 계급과 중산층이 마주한 현실은 "국가의 개입이 줄어든다고 해서 삶이 반드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글로벌 분업과 자본 이동이 가속화되며 제조업 기반이 붕괴한 지역에서, 감세와 규제 완화는 실질적인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 겁니다. 거대 자본의 이동과 글로벌 시장의 충격이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물러나면 자유가 커진다"는 명제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습니다.

MAGA의 사상적 전환점은 바로 이 지점, 즉 “자유를 형식적 권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에 있습니다. 국가가 자리를 비워주어도 일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자유는 실효성 없는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찰은 소극적 자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극적 자유가 현실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적·물질적 전제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②소극적 자유의 방어 장치: 법치와 질서

⒜ 소극적 자유의 한계로부터의 이탈은 보수주의의 포용을 통해서

앞서 언급한 소극적 자유의 한계, 즉 '형식적 비간섭이 초래하는 자유의 공백'에 대해 보수주의는 자신의 전통적 가치를 통해 응답합니다.

여기서 보수주의는 우선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과 인위적인 제도 설계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이 바탕위에 급진적인 사회 재설계보다는 오랜 시간 축적된 제도, 관습, 규범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그 안에서 자유를 보전하려는 정치철학입니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자유를 ‘방임’으로 오인하지 않고, 자유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적 질서와 규칙을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국가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국가주의와는 결을 달리하여, 법치와 책임 윤리, 점진적 개혁을 통해 자유의 토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지속’시키는 접근을 지지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수주의가 옹호하는 자유는 단기적 효율이나 즉흥적 해방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갖춘 ‘지속 가능한 자유’로 정의됩니다.

⒝보수주의 -자유의 토양으로서의 질서: 

이런 맥락에서 보수주의는 소극적 자유가 자칫 초래할 수 있는 방종이나 무질서를 통제하는 실질적인 수단이 됩니다. 공동체의 규칙과 책임 윤리라는 보수적 가치는 소극적 자유가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고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필수 조건입니다. 자유는 결코 진공 상태에서 피어나지 않으며, 규범과 질서라는 토양 위에서만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현실주의적 성찰이 보수주의의 핵심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보수의 근간인 법치가 무너질 때 그 피해는 거대 권력이나 자본이 아닌, 사회적 보호막이 없는 힘없는 개인의 자유부터 침해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결국 보수주의가 강조하는 ‘법과 질서’는 단순한 도덕적 훈계나 권위적 통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강자의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자유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입니다.

◆보수주의와 비지배 자유: 임의적 지배에 맞서는 방어 기제

보수주의는 또한 비지배 자유를 실현하는 동력이 됩니다. 임의적 지배를 억제하고 예측 가능한 법치의 틀을 유지하는  방어 기제로 작동합니다.

①비지배 자유의 본질: 간섭의 '양'이 아닌 '성격'의 문제

여기서 말하는 비지배(non-domination)로서의 자유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핵심 개념입니다. 이는 단순히 '간섭이 없는 상태'를 넘어, 타인이 내 삶을 임의로 좌우할 수 있는 권한 자체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권력자의 기분, 그와의 연고, 편의에 따라 나의 권리가 흔들리는 자의적 환경을 자유의 반대편인 '예속'으로 규정합니다.

비지배 자유에서 관건은 간섭의 유무가 아니라 간섭의 성격입니다.

법률에 근거하며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예측 가능한 간섭은 '법치의 영역'으로 흡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인에게만 예외를 허용하거나 불투명한 기준으로 선택 집행되는 간섭은 명백한 '지배'입니다.

따라서 비지배 자유는 규제가 '많으냐 적으냐'의 산술적 논쟁을 넘어, 권력이 '일반적 규칙'으로 통제되는가 아니면 '임의적 재량'으로 남용되는가의 문제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킵니다.

②보수주의: 임의적 지배를 통제하는 제도적 수단

이러한 관점에서 보수주의는 비지배 자유를 위협하는 임의적 권력을 통제함으로써 소극적 자유의 실효성을 복원하는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됩니다. 보수주의의 본질이 '자의적 재량'의 확대가 아닌 '일반적 규칙'의 지배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행정의 법률주의를 강화하고, 재량을 축소하며, 절차적 적법성과 사법적 구제 가능성을 명문화할수록 권력자의 관계나 '연고에 의존하는 기득권 구조는 해체됩니다. 인허가와 단속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보조금과 공공조달을 공정한 경쟁의 규칙으로 묶는 것은 카르텔적 시혜를 차단하고 시장 진입의 자유를 회복하는 실천적 방안입니다.

이처럼 보수주의는 단순히 규제의 총량을 줄이는 기술론을 넘어, 권력의 사유화를 억제하고 비지배 자유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어 기제로 기능합니다.

③Deep State와 MAGA: 비지배 자유를 향한 갈망

MAGA가 '딥스테이트', 즉 '선출되지 않은 관료조직과 정보·수사기관의 자의적 권력 집행'을 문제 삼는 방식도 구조적으로 '비지배 자유'와 보수주의 관점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시민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임의성'입니다.

MAGA 지지층은 규제기관이나 정보·조세 권력이 규칙과 책임의 틀을 이탈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 이를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닌 삶에 대한 '지배'로 체감합니다. 따라서 이를 비지배 자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면, MAGA는"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나를 자의적으로 좌우할 수 없도록 엄격한 규칙과 책임의 틀 안에 묶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규칙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주의는 딥스테이트라는 임의적 지배를 억제하고 예측 가능한 법치의 틀을 복원하는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실질적 자유를 위한 국가의 개입: ‘집행자’로서의 국가

MAGA는 보수주의를 통해 소극적 자유가 초래할 수 있는 무질서를 통제하고, 비지배 자유를 저해하는 권력의 임의적 지배를 제어합니다. 이에 더하여 MAGA는 소극적 자유가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도록 그 실효성을 보장하는 '실질적 자유'의 토대를 구축합니다.

①조건의 복원

간섭이 아닌 '자유의 공간' 재건 MAGA가 내세우는 관세 장벽, 리쇼어링(Reshoring), 산업 기반 재건 등은 외견상 자유시장 원칙에 반하는 개입주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 논리는 "자유시장 원칙이 작동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붕괴했다면, 그 조건을 복원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라는 구조를 갖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개입이 '적극적 자유'가 아닌 '실질적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직접 보조하는 것이 적극적 자유라면, 실질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가 허구가 되지 않도록 선택의 폭과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자리와 산업 기반, 에너지와 기술 주권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개인이 법적·형식적 자유를 누릴지라도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퍼주는 국가에서 '집행하는 국가'로 

이러한 맥락에서 MAGA는 역량 있는 국가를 소환합니다. 이때의 국가는 복지 포퓰리즘에 매몰된 '퍼주는 국가'가 아니라, 자유가 숨 쉴 공간을 복원하기 위해 전략적 힘을 행사하는 '집행 국가(Executive State)'입니다.

이 국가의 '집행'은 세 가지 핵심 방향을 갖습니다.

*카르텔 해체: 공정한 경쟁을 파괴하고 시장을 사유화하는 기득권 구조를 타파합니다.


*질서 유지: 사회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무질서와 범죄를 엄격히 제어합니다.

*전략적 설계: 외부의 압력이나 글로벌 공급망의 충격으로부터 국내 산업 기반이 붕괴하지 않도록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합니다.

결국 MAGA의 국가는 '작은 정부'라는 보수의 가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의 실효적 조건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지점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선택적 개입주의'로 보수의 정책 구성을 재배치하는 것입니다.


◆소극적 자유의 한계를  보수주의로 보강 

MAGA가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은 '소극적 자유의 한계를 어떻게 보수주의의 언어로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이사야 벌린이 말한 소극적 자유는 자유의 핵심을 ‘간섭의 부재’로 설정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자유가 일상에서 작동하는 조건을 자동으로 생산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따라서 현대 보수의 과제는 소극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 자유가 공허해지지 않도록 자유의 토양을 보수주의로 보강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소극적 자유의 전제는 방임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비간섭'입니다.

보수주의는 소극적 자유가 빠지기 쉬운 '방임의 함정'을 극복하는 토대입니다. 단순히 국가가 물러나 간섭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자유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질서 없는 비간섭은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며, 결국 타인의 침해에 의해 자유 자체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수의 핵심인 '질서'가 빛을 발합니다. 보수주의가 옹호하는 질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간섭 상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뼈대이자, 자유를 방치로부터 구해내는 보호막입니다.

결국 보수주의는 자유를 무책임한 방종과 구분합니다. 최소한의 공적 규칙과 책임 윤리를 통해 소극적 자유를 공허한 구호가 아닌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실체로 만듭니다. 즉, 자유를 단순히 '해방'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질서라는 토양 위에서 '지속 가능한 자유'로 보존하는 것이 보수의 진정한 역할입니다.

둘째, 소극적 자유의 실효성은 비지배 자유의 확보에서 강화됩니다. 

비지배 자유는 간섭의 유무가 아니라 간섭의 성격을 따지는 개념이며, 자의적 권력이 작동하는 순간 자유는 ‘예속’으로 전환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수주의의 과제는 예측 가능한 법치의 틀을 유지하여,  카르텔과 특혜, 사유화된 권력과 선택적 집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누구도 임의적으로 개인을 좌우할 수 없는 제도적 환경이 복원되어야 합니다.  MAGA가 ‘딥스테이트’라는 언어로 표출한 불만도, 결국은 권력이 규칙과 책임의 틀 밖에서 자의적으로 작동한다는 체감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셋째, 소극적 자유가 삶 속에서 기능하려면 '실질적 자유'의 토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 자유는 복지 확대를 통해 개인의 역량을 보조하는 '적극적 자유'와는 궤를 달리합니다. 실질적 자유는 선택지가 소멸하여 자유가 공허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자리, 산업 생태계, 에너지 및 기술 주권 같은 '자유의 조건'을 방어하는 개념입니다. 이때 국가는 무분별한 '퍼주는 국가'가 아니라, 자유가 숨 쉴 공간을 복원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표적화된 수단을 집행하는 '집행 국가'로 소환됩니다.

넷째,  '통제된 힘'이 자유를 지킵니다

소극적 자유를 복원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은 반드시 '예측 가능한 법치의 틀' 안에서만 허용되어야 합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소환한 국가의 힘이 통제를 벗어나 비대해지는 순간, 그 힘은 다시 시민의 자유를 짓누르는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집행 국가의 개입은 권력자의 기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투명한 규칙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입의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그 과정은 시민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투명해야 하며, 목적을 달성하면 미련 없이 거둬들이는 '시한부 개입'이어야 합니다.

보수적 처방의 핵심은 단순히 '강한 국가'를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국가의 강함이 언제나 시민이 동의한 규칙과 책임의 울타리 안에서만 발휘되도록, 권력의 손발을 정교하게 묶어두는 설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는 '지배자'가 아닌 진정한 '자유의 수호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 자유가 권리에서 삶의 가능성으로 

 MAGA는 소극적 자유를 버리는 길이 아니라, 그 자유가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조건을 복원하려는 정치적 여정입니다. 간섭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자유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경험이 MAGA의 출발점입니다.

결국 보수주의에 기반한 법치와 질서 및 비지배의 제도, 그리고 일자리와 산업 기반 같은 실질적 토대 위에 소극적 자유가 세워질 때, 자유는 권리를 넘어 삶의 가능성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MAGA가 제기한 문제의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