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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라캉 :욕망과 분리 ]자아, 초자아의 쪼아대는 명령에 배반하여 명시적 법을 세워야

-히스테릭한 사랑, 욕망이 대상이 될 뿐
-주체 , 히스테릭한 사랑에서 분리하여 환상 가로지르기
-명시적 법, 초자아의 욕망인 기득권의 욕망을 억제



사랑은 생산적이다. 사랑하는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과 개발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꽃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이 일방으로 흐르게 된다면,  그 사랑은 히스테릭적 일 수 있다.  자신이 상대의 아름다운 구원자라는 환상을 품고, 상대의 결여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실제로 히스테릭한 사랑은  흔히 발견되는 사랑 방식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런 욕망은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극한다. 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추측하여 그의 불완전함을 채워주고자 한다. 


이처럼 우리는 ‘I want to be wanted.’라며, 욕망되는 대상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정의하였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의 원인이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라캉의 표현에 의하면, 주체가 타자의 욕망의 대상 a가 되려 한다.  자신의 한 부분, 즉 대상 a를 타자의 결여를 메우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자는 대상a를 통해 향락, 즉 주이상스를 획득하게 된다.



◆ 주체, 히스테릭한 사랑에서 분리


히스테릭한 사랑은 타자의 결여를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욕망한다는 것인데, 이는  병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히스테리적 주체는 자신이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욕망의 원인이자 대상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자가 결여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자신이 그 결여를 메워 줄 수 있는 대상이 되고자 하며,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그는 타자의 욕망의 공간속에 사로잡혀 있는 존재,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주체는 분리에 대한 욕망을 품을 수 있다. 주체는 타자의 관심사가 궁극적으로 빈 곳을 채우는 것, 대상 a에 지나지 않는다고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분리란  대상 a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내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분리는 치유로서의 분리이다.  자신을 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이 욕망의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라캉의 언어에 따르면, 주체는  ‘환상을 가로지르기’시작한다.


주체는 이제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도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비움의 과정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초자아의 욕망의 불문율  vs 자아의 명시적 법


주체도 결여의 대상이라는 자각, 욕망의 주체라는 깨달음은 초자아의 ‘즐겨라’라는 정언명령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이런 향락, 주이상스는 타자의 의지 일뿐 자아와 대립된다. 


이지점에서 분열이 발생한다. 자아와 초자아의 분열이 나타나는 것이다. 욕망의 법을 배반하라고 명령하는 자아와 그 욕망을 즐기라고 강요하는 초자아 간의 분열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욕망이란 기득권의 욕망이며 타자의 욕망이다. 주체는 더 이상 이런 타자의 결여를 채워주는 역할에 종속되지 않는다.


욕망의 주체로서 환상을 가로지르는 주체는 초자아의 불문율의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다. 초자아는 명령들을 퍼부으며 이를 지킬 수 없어 쩔쩔매는 개인들의 모습을 보며 잔인하게 즐기고 있다.


하지만 거듭난 주체는 초자아가 퍼붓는 비난에도 더 이상 타자의 욕망에 충실하지 않는다.  또 타자가 명하는 주이상스의 달콤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외려 주체는 이제 기득권의 욕망의 불문율을 배반하고 공식적 법을 세우고자 한다. 초자아의 쪼아대고 간섭하는 불문율보다 자아에 의한 철저한 명시적 법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명시적 법은 분명 초자아의 욕망인 기득권의 욕망을 억제하는 법으로 나타나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은 명시적 법을 세우는 것은 초자아의 즐겨라는 명령에도 무릎 꿇지 않는 유일한 정의의 길이 될 것이다.





[디비시아 지수의 가중치] 디비시아 방식의 경제이론적 정합성: 생산탄력성과 비용점유율의 일치 원리 디비시아 방식은 경제이론과 높은 정합성을 지닌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6월4일자 「MFP와 디비시아 지수」기사에서도 간략히 언급된 바 있습니다. “MFP계산에서 디비시아 방식은 ‘요소비용점유율= 한계생산성의 기여율’이라는 경제이론과 일치합니다. 이는 MFP계산에서 디비시아 방식이 생산함수의 이론구조와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각 투입요소의 기여도를 현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디비시아지수는 각요소의 비용점유율을 가중치로 삼아 총투입로그변화율을 계산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 가중치로 사용되는 ‘요소의 비용점유율’이 곧 ‘요소의 생산탄력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가중치가 요소의 생산에 대한 실질기여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소의 비용점유율=요소의 생산탄력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생산자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비용점유율을 가중치로 삼는 디비시아 방식의 구조에는 생산자의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따라서 디비시아 지수는 단순한 통계적 평균이 아니라, 생산자 이론과 일관된 경제이론적 기반위에 구축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