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결과를 낳는가? 구조현실주의
‘무엇이 결과를 결정하는가? 구조인가 행위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국제정치의 일반적 논리는 구조적 현실주의입니다. 즉 구조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한 원인을 기존 권력인 스파르타와 신흥권력인 아테네 간의 세력 불균형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구조적 현실주의입니다. 구조· 토대· 환경등이 독립변수가 되어 결과를 규정짓는다는 겁니다.
또한 현재 한국의 여당지도부와 대통령실간의 불협화음이 신흥세력의 부상과 기존세력의 견제에 의해 발생한다고 해석하면, 이 현상도 구조적 현실주의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양측간의 부조화가 심화되면 자칫 전쟁으로 진행되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측은 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계적 구조적 요인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고는 근시안적 안목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행위자의 행위가 구조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갈등은 강대국 일방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장 잠재력있는 약소국의 행위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행위자의 독자성을 결과의 원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약소국 리더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도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겁니다.
◆ ‘멜로스 대화(회담)’와 행위자의 독자성
행위자 독자성에 대한 실제 사례는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서술한 사건인 ‘멜로스 대화(회담)’(Melian Dialogue)에서 발견됩니다. 멜로스 회담은 아테네와 멜로스가 전쟁을 치르기 전에 아테네 사절단과 멜로스 위원 사이에 벌어진 담판을 말합니다.
기원전 416년 3월, 아테네는 38척의 배와 2,700명의 중무장병사를 거느리고 중립을 지켜온 작은 섬 멜로스에 쳐들어옵니다. 아테네인들은 멜로스를 공격하기 전에 멜로스인들에게 항복을 권고하는 담판을 벌입니다.
그러나 담판은 깨지고 멜로스는 아테네와 일전을 치렀지만, 아테네의 압도적 공격으로 비극적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멜로스의 비극은 구조현실주의의 사례로 곧잘 인용되고 있습니다. 국제적 정치 현실은 군사력등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는 구조현실주의를 이 사건이 입증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투키디데스는 이 사건의 원인과 관련하여 구조현실주의에만 집중하기보다 행위자의 행위에 관심을 두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멜로스섬 지도층의 자율적 선택이 멜로스의 멸망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고 본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투키디데스는 멜로스 지도층의 그릇된 행위를 멸망을 초래한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 서 있는 이들은 행위자 독자성이 투키디데스에 대한 진정한 독법이라고 지적합니다. 투키디데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운명은 토대 환경등 구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겁니다.
◆ 멜로스 지도층의 그릇된 판단들
투키디데스는 멜로스 섬 지도층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멜로스의 멸망에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테네와의 전쟁을 초래하게 한 멜로스 지도층의 그릇된 선택과 행위는 무엇일까요?
① 멜로스 지도층의 고정관념에 기초한 신념
행위자의 고정관념에 기초한 신념이 아테네의 힘에 의한 현실정치(Power Politics)와 맞물려 작용하여 멜로스 섬을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여기서 멜로스 지도층의 고정관념에 기초한 신념과 가치는 무엇이었을까요?
멜로스 대화에서 아테네 사절단의 대화의 목적은 전쟁을 하기 전에 멜로스가 항복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하여 멸망할 것인가에 대한 멜로스의 선택을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멜로스 지도층은 고정관념을 기초로 대화에 임했습니다. 이들의 고정관념은 국가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멜로스 지도층은 국가의 목적이 국가의 주체성(self-image)과 자긍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멜로스지도층은 아테네에 예속된 상태로 생존을 이어가느니 파멸할지라도 주체성과 자긍심을 지키면서 아테네의 공격에 맞서는 것이 국가의 가치를 수호하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국가의 목적에는 정체성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 국가의 존립을 지키는 것등, 다양한 목적들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주체성과 자긍심을 시민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 정도로 고정관념적 사고에 매달려 있었던 겁니다.
②지도층의 오만
지도층의 오만이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엘리트인 자신들의 가치, 신념체계가 곧 국가의 가치라고 착각하면서 시민의 생각을 무시하였습니다.
멜로스의 지도자들은 노예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신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엘리트들이 자국의 성인남자를 모두 죽게 하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노예로 만들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비록 세금을 바치면서 속국으로 살아도 후일을 기약하면서 생명을 지키는 것이 더 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멜로스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사고가 시민의 생각보다 우월하다는 오만에 젖어 자신들의 고정관념을 시민에게 주입 강요한 결과, 국가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크나큰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오만은 멸망을 초래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들은 무시한 것입니다.
③지도층의 정확한 인식부재 --> 운에 기댐
멜로스 지도층은 불확실한 희망, 즉 운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멜로스 섬 지도층은 아테네와 멜로스 섬이 전쟁을 하게 되면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이 멜로스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병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멜로스 위원단이 아테네 사절단과의 회담에서 라케다이몬의 멜로스의 지원을 언급하자, 아테네는 라케다이몬은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멜로스 지도층의 믿음과 달리, 이익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라케다이몬은 아테네로부터 멜로스를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17년째에 아테네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스파르타는 국력이 상당히 약해져 있었고, 육상세력 스파르타가 멜로스 섬을 구원하기 위해 해상에서 해상세력인 아테네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멜로스 섬 지도층은 라케다이몬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비현실적 희망과 운에 기대를 걸었던 겁니다.
④멜로스 지도층의 비현실적 사고
협상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기보다 협상대상의 이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그 이해에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도 멜로스지도층은 회담에서 아테네의 이해와 관심사에 귀기울이기보다 자신들의 입장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렇다보니 회담은 결렬되었습니다.
아테네 사절단은 멜로스 침공의 목적이 아테네의 지배권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본 회담은 멜로스 섬 도시의 존망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고 명확히 하였습니다.
따라서 약자인 멜로스 위원단이 강자인 아테네 사절단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아테네의 이익에 대해 고려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강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대화를 진행하였습니다. 멜로스 섬이 중립국으로 남아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려 하였습니다.
차라리 멜로스 지도층이 멜로스의 중립국 지위가 아테네에게 더 큰 이득이 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면, 전쟁을 피할 일말의 가능성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후의 회담에서 멜로스는 다소 접근방법을 바꾸지만 그 대화의 방식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멜로스 위원단은 아테네가 멜로스의 중립을 인정하는 것이 아테네에 어떻게 이익이 되는지를 소개하는 이익론이 아니라 전쟁을 하게 되면 아테네가 어떠한 손해를 보게 되는지에 대한 손해론을 소개하였습니다.
◆ 전공의들은 잠수타지 말고 수면위로 올라와 싸워야
멜로스 지도층의 그릇된 행위와 판단은 멜로스의 멸망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보면, 서두에서 언급된 ‘무엇이 결과를 결정하는가? 구조인가 행위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구조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답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행위자의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점이 멜로스 회담에서 발견됩니다.
멜로스는 아테네와의 회담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방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된 이유들로 인해 국가를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습니다.
무엇보다 분노할 수 있는 지점은 멜로스 지도자들만의 그릇된 가치가 곧 국민의 사고라는 엘리트 우월주의 오만이 시민들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는 점입니다.
멜로스 회담의 결과는 현재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안겨줍니다.
현재 정부의 의료개혁의 소용돌이는 앞에서 분석된 ‘멜로스 지도층의 정확한 인식부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내걸고 다양한 의료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필수의료 강화가 주요 개혁과제입니다.
그런데 의대증원확대, 곧 의사인력확충이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인력 확충으로 이어질지에 대해 의구심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의대정원확대는 고령화에 대한 의료수요와 상관관계가 높지, 필수의료 의사 확대와는 상관관계가 거의 0인 독립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 해답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의대증원과 필수의료인력 확충간의 상관관계가 없다면, 고령화에 대비한 의사수 확대가 국가전체를 거의 몇 개월 간 소용돌이로 몰고 갈 만큼 시급한 국가아젠다가 되어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멜로스 섬 지도층이 비현실적 희망과 운에 기대를 걸었던 것처럼, 정부도 의료개혁의 요소들 간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제대로 분석함 없이 그저 의사 수 늘리면 의료복지가 좋아진다는 막연한 기대와 운에 몸을 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게다가 개혁은 희생이 따른다고 하지만, 이러한 공리주의적 정책이 예비의사들의 장래에 대한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는 직접이해관계자인 의대생, 전공의들과 사전에 대화를 통해 정책조율을 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몇 개의 관련 페이퍼들에 기대어 정책을 몰고 간 건 아닌가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분석된 ‘멜로스지도층의 오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엘리트의 판단이 곧 국민들의 사고와 다르지 않다는 우월한 오만이 정책의 불안정을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곧 국가의 가치라고 오판하면서 시민들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의료계도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앞의 멜로스 회담에 대한 분석처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기보다 대상의 이해에 대응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의사수 확대가 필수의료확충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의료계는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정부안과 자신들의 안을 함께 놓고 어떤 안이 더 타당한 안인지 공개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하지만 의료개혁의 직접 당사자인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의대증원원점 재검토만 외치고 수면아래로 잠수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의사 수 확대가 필요 없으면, 필수의료분야의 의사확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안을 내놓아야지 의대증원 원점 재검토만 앵무새처럼 외친다고 결과물이 손에 쥐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무임승차만을 바라고 그 결과만을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지경입니다. 멜로스지도층처럼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상대의 주장에 대한 적절한 대응보다 자신들의 일방적 입장만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의료계의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이제 회담의 주체로써 수면 위로 올라와 정부의 정책에 맞대응해야 합니다. 무임승차의 욕심으로 숨어있기만 한다면, 이는 버스 지나간 후 손드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전공의들은 정부안에 대한 비판만 하지말고 의료개혁에 대한 대안을 내걸고 정부와 정책의 진검승부를 할 때, 국민들은 각각의 정책들을 비교하여 어떤 대안이 더 좋은 정책인지 판단을 내려 줄 것입니다.
결국 의료개혁은 상황과 구조가 아니라, 의료계 행위자들의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멜로스 회담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논법으로 보입니다.
(의대증원이 조정될 수 있다면, 정부발표로 늘어난 일부 의대증원을 폐기하기보다 수요증대가 예상되는 의과학자전형으로 돌려보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차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취약 지점이 바이오, 제약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박지범, “투키디데스의 ‘불멸의 교훈’: 멜로스 섬 멸망의 재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