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 공시제’와 ‘임금 분포 공시제’
임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임금 공시제’입니다.
임금 공시제란 사용자가 고용형태, 성별, 직종·직급·직무별 임금액 및 비율등 특성에 따른 임금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임금 공시제의 목표는 임금 격차를 노출시켜 차별적 임금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통해 임금격차를 완화하는데 있습니다.
‘임금 공시제’와 유사한 제도가 ‘임금 분포 공시제’입니다.
후자의 제도는 근로자 속성에 따른 임금 분포 현황을 공시하는 것으로, 이 속성에는 성별· 연령· 학력· 직장 내 직급 직무· 고용형태· 근속연수등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임금수준의 평균값, 중간값, 상위25%, 75%값등 ‘분포’가 공개 됩니다.
임금분포공시제는 차별적 임금을 시정하고 격차를 해소하는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임금 분포 공시제도가 시행될 경우, 구간의 최대값과 최소값을 가진 노동자의 임금정보가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장기 시계열에서 임금 추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단기적 임금격차의 완화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임금공시가 임금격차를 완화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선, ‘임금 분포 공시제’보다 ‘임금공시제’가 유효합니다.
◆ 독일의 임금공시제
임금공시제가 정착된 국가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2017년 「남녀 임금 투명성 증진에 관한 법률」, 곧 「임금투명성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제1조에 의하면, 이 법의 목표는 남녀의 동일 임금원칙의 실행에 있습니다. 동일 임금 원칙이란 동일 노동 또는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해 노동자의 성별로 인해 다른 성별의 근로자보다 더 적은 임금을 협의하거나 지급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여기서 동일 노동은 동일한 업무나 동종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말하고, 동일 가치 노동은 근로의 내용, 근로조건등을 고려하여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임금투명성법」의 특징은 ‘동일 임금 원칙’ 준수를 확인하기 위해 노동자가 ‘개별적 정보 청구권’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정보청구를 받은 직원수 200인 이상의 사용자는 비교 임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여기서 비교 임금은 정보를 요청한 노동자와 동일 임금군에 속한 다른 성별 근로자의 임금, 비교 활동을 수행하는 다른 성별의 모든 근로자에 대한 △임금구성요소 △한해의 평균 월총급여를 정규직 노동자수로 환산한 산술 평균값을 말합니다.
또한 직원수 500인 이상의 사용자는 회사의 동일임금 원칙 준수 여부등을 정기적으로 감사할 의무를 가지고 있고, ‘평등 및 동일 임금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 한국의 임금공시제
임금공시제는 현재 공공기관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11조, 공공기관의 ‘경영공시’는, 공공기관은 “임원의 성별, 임직원의 성별 임금 현황, 근로자의 고용 형태 현황 및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율”을 공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은 다소 불완전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성별 임금 현황 이외에, 직종·직급·직무별 임금액 및 비율등 임금체계와 수준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완전한 의미에서의 임금공시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동계는 민간기업까지 임금공시제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 제20조 ③은 “여성가족부장관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업보고서 제출대상법인의 성별 임원 수 및 임금 현황등에 관하여 조사하고 결과를 매년 공표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이 임금을 공시할 의무는 현재로선 없는 셈입니다.
노동계의 주장과 달리, 임금에 관한 정보는 공개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별 기업의 임금정보가 공개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되는 임금정보가 노출된다는 겁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저임금 사업장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로 인해 노사갈등이 심화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업 간 임금 격차가 공식화되면, 구직자들의 쏠림현상이 나타나 노동시장내 인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노동시장 경직의 완화 → ‘동일노동 동일임금’
임금공시제는 임금격차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높아진 격차 인식이 개선으로 이행될 수 있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즉 임금 공시가 차별적 임금을 시정하는데 자극이 되어,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지적된 것처럼 임금공시의 실효성이 담보되기 위해선, 임금분포제 대신 임금공시제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임금분포를 공시하는 제도는 단기적으로 임금차별 개선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시항목에, 성별 · 고용형태별· 직종별· 직무/직급별· 근속연수별의 5가지 항목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한 독일의 입법례처럼, 근로자의 청구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독일의 입법례를 따라 임금 공시가 이루어진다면, 노동시장 분절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 노동시장 상황에서, 노사 갈등의 격화는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임금격차 완화 방안이 근본 원인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1951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제100호 동등보수 협약에서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하여 동일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였습니다.
한국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제도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89년에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였고, 1997년에 국제노동기구(ILO) 제100호 동등보수 협약을 비준한 것입니다.
하지만 ‘동일 노동(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주요 원인은 노동시장의 경직화와 관련됩니다.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규제에 대해, 정규직 고용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수 고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렇게 나타난 노동시장 분절 현상이 ‘동일 노동, 차별 임금’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노동시장분절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 즉 노동시장의 경직화가 완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기업의 해고규제 완화, 사회안전망 강화, 근속연수와 학력에 따른 연공주의 금지 및 직무수행능력에 따른 성과주의 인사관리제도의 도입, 정년 보장제도의 폐지등, 근본적인 노동개혁들이 이루어 질 때, 비로소 ‘동일노동 동일가치에 동일임금’이 적용되는 공정한 노동시장이 형성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진명구, “성별 임금 격차 완화를 위한 입법․ 정책과제:임금분포공시제 도입 논의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