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는 서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그런데도 하나의 경기가 성립하는 이유는 모든 선수가 같은 규칙 아래에서 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심판과의 친분을 이용하거나 반칙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경기가 아닙니다. 경쟁은 남아 있지만 협력의 질서는 무너진 것입니다.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
존 롤스가 말한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fair system of social cooperation)’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정한 규칙과 제도라는 안전판 위에서, 각자의 삶과 이익을 좇아 교환하고 연대하는 사회적 상호작용 체계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말의 핵심은 공정성입니다.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하고 투자하며 소비합니다. 기업 역시 이윤을 위해 생산하고 고용하고 경쟁합니다. 국가는 이 과정이 가능하도록 재산권·계약·교육·사법·행정·시장질서라는 기본적인 제도 틀을 유지합니다.
따라서 롤스에게 중요한 질문은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규칙 아래에서 이익을 추구하는가”입니다. 국가는 재산권·계약·교육·사법·행정·시장질서라는 기본적인 제도와 규칙의 틀을 유지하여 개인과 기업의 활동을 상호작용하게 합니다.
결국 국가가 정한 규칙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어, 재산·출신·권력·인맥이 특정 사람에게 별도의 통로로 작동하지 않을 때, 경쟁과 이익 추구는 비로소 도덕적 정당성을 얻고 사회를 지탱하는 진정한 협력으로 완성됩니다.
◆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공정한 제도의 뒷받침 없는 기술적 진보는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곧장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중요한 화두는 생산성입니다. AI는 노동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생산량과 효율을 크게 높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산성 증가는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생활수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성의 증가와 사회 각자의 후생증가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전체의 부가 아무리 커져도 일부 시민의 기본적 자유가 침해되거나, 교육·취업·시장 진입의 기회가 특정 집단에 집중되거나, 가장 불리한 위치의 사람들이 그 성장에서 배제된다면 롤스의 기준에서 그것은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가 작동하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롤스는 단순히 “얼마나 많은 부를 만들어냈는가”보다 “그 부를 만들어내는 제도와 규칙을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생산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생산성 자체가 곧 사회 구성원 전체의 후생으로 해석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생산성이 전체 후생으로 이어지기 위한 필요조건은 공정한 사회적 협력체계의 수립입니다. 즉 공정한 협력체계가 기울어지지 않는 운동장을 조성합니다. 그리고 이 체계가 희소한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가능하게 하여 사회 후생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롤스는 모두 자기이익을 인정합니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동력은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핵심 과제는 이 본성적 욕망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타인의 권리와 기회를 침해하지 않도록, 이를 공정하고 정당한 협력의 규칙 안으로 어떻게 이끌어 넣을 것인가에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롤스 모두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차이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스미스에게 시장은 분업과 교환을 통해 사회적 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질서입니다. 동시에 그는 인간을 단순한 이기적 존재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고 자기절제를 배웁니다.
롤스는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서 한 단계 더 제도적인 차원으로 옮깁니다.
사람들의 선의나 도덕감정에만 의존해서는 재산·출신·권력·인맥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불평등을 막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원초적 입장과 무지의 베일이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자신이 사회의 어느 위치에 놓일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 원칙을 찾으려 합니다.
스미스가 개인에게 “공정한 관찰자의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라”고 묻는다면, 롤스는 사회 전체를 향해 “누구의 위치에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 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고 묻는 셈입니다.
◆ 롤스가 요구하는 것은 ‘같은 결과’가 아니라 ‘공정한 규칙’입니다
그렇다면 무지의 베일 뒤에 선 사람들은 과연 어떤 규칙에 합의할까요. 롤스는 특권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도달하게 될 '가장 안전하고 공정한 제도의 기준선'을 도출해 냅니다.
롤스의 정의 원칙은 엄밀하게 두 원칙입니다.
첫째는 모든 시민이 동등한 기본적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둘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허용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기회균등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러한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따라서 롤스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소득이나 같은 결과를 보장하자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은 기술력과 경영능력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달라질 수 있고, 개인도 자신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얻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공개된 심사기준과 과학적 자료를 가지고 경쟁하는데, 다른 기업은 정치적 인맥을 이용해 규제기관에 특별히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과의 차이가 아니라 규칙 자체의 차이입니다.
롤스의 사회적 협력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문제는 출발선과 경기규칙입니다.
◆ 제넨셀·세종메디칼 사건: 동등한 기본적 자유와 정치적 접근권
제넨셀·세종메디칼 사건을 롤스의 관점에서 볼 때 질문은 첫 번째 정의의 원칙과 연관됩니다.
모든 기업이 공정한 규칙 아래 동등한 정치적 자유와 행정적 접근 조건을 가지고 경쟁했는가.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승원 후보자는 2021년 10월 제넨셀의 임상시험계획과 관련해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로 당시 식약처장에게 연락했습니다. 김 후보자 측은 이를 공익적 고충민원의 전달이라고 설명하며, 심사기준 완화나 절차 생략, 특혜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연락 사실만으로 실제 특혜가 있었거나 승인 결과가 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롤스적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특정 기업만 브로커와 정치권을 통해 규제기관 최고 책임자에게 별도로 접근할 수 있었다면, 겉으로는 하나의 심사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실제로는 두 개의 진입 통로가 생깁니다.
하나는 모든 기업이 이용해야 하는 공식적인 ‘정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인맥과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비공식 우회로’입니다.
그 순간 경쟁은 기술과 데이터의 경쟁에서 인맥과 정치적 접근성의 경쟁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롤스의 첫 번째 원칙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형식적 자유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정치적 제도에 대해 실질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정치적 인맥을 통해 국가기관의 최고 책임자에게 특별한 접근권으로 전환된다면,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 공정한 기회균등 — 하나의 정문과 정치적 바이패스
두 번째 문제는 공정한 기회균등입니다.
공정한 기회균등은 모든 기업이 같은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쟁의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경쟁에 들어가는 조건과 제도에 접근하는 기회가 인맥·재산·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공개된 심사절차와 과학적 기준에 따라 식약처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기업은 더 좋은 데이터를 제출해 빨리 통과할 수도 있고, 다른 기업은 보완 요구를 받아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정당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기업만 일반 기업이 사용할 수 없는 정치적 통로를 이용해 규제기관 수장에게 자신의 사안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쟁점은 그 연락이 실제 승인 속도를 며칠 앞당겼느냐가 아닙니다.
다른 기업에게는 없는 특별한 접근경로가 특정 기업에게만 열려 있었느냐가 먼저 문제입니다.
한쪽에는 공식적인 정문만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정치적 바이패스가 존재한다면 경쟁의 조건은 이미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청탁과 실제 승인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행정적·법적 인과관계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어도, 공정한 기회균등에 관한 롤스적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은 되지 못합니다.
◆ 절차적 공정성 — 숨긴 자료가 심사의 조건을 무너뜨렸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절차적 공정성입니다.
의약품 심사는 제출된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절차입니다. 이 절차가 공정하려면 모든 기업이 동일한 기준에 따라 심사받는 것뿐 아니라, 심사기관에 제공되는 정보 역시 정확하고 완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도와 재판 내용에 따르면 제넨셀 설립자는 불리한 동물실험 결과를 누락하는 등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류상의 하자가 아닙니다.
국가기관이 판단해야 할 정보 자체가 왜곡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 같은 심사절차를 밟았다고 해도, 한 기업이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춘 채 심사를 받았다면 동일한 조건의 경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두 종류의 불공정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하나는 누가 제도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제도에 어떤 정보를 제출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즉 정치적 바이패스는 기회의 조건을 훼손합니다. 자료 은폐는 심사의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합니다.
◆결론-생산성에는 제약조건이 필요합니다
①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며
AI 시대의 초점은 생산성 제고입니다. 기업이 혁신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내며 사회 전체의 부를 키우는 것은 사회 후생증대를 위해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생산성에는 반드시 제약조건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 제약조건이 바로 '공정한 사회적 협력'입니다.
이번 제넨셀 심사 개입 의혹이 던지는 뼈아픈 질문은 분명합니다. 명분은 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한 공익 민원이었지만, 그 과정이 결과적으로 특정 민간 사업자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통로로 작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겉으로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라는 시급한 공공의 필요가 내세워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이라는 막강한 공적 영향력이 특정 기업의 심사에 동원되고, 그 이면에 해당 기업의 사업 가치와 이해관계자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얽혀 있었다면 문제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국가의 공적 권한과 제도는 특정인의 사업상 위험을 덜어주거나 투자 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의약품 임상 심사는 기업 지원을 위한 행정 창구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엄격하게 과학적 자료를 검증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견고해야 할 절차에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공공의 힘은 이미 공익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를 유리하게 만드는 지렛대로 전락한 셈입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치료제 개발이라는 명분이 있었느냐가 아닙니다. 그 거창한 명분 아래에서 국가의 공적 규칙과 정치적 영향력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느냐입니다.
공익의 언어가 특정 私人의 이익을 위한 우회로를 정당화하는 통로로 쓰이는 순간, 권력은 공공성을 잃습니다. 그때 권력은 시민 모두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특정인의 이익을 뒷받침하는 사유화의 도구로 부패합니다.
② 롤스의 언어로 제넨셀 사건을 해석하면
제넨셀 심사 개입 의혹 사건을 롤스의 언어로 해석하면, 그 사건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롤스의 기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성 그 자체가 아닙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시민은 각자의 이익을 좇아 움직여도 좋습니다. 다만 그 경쟁 과정에서 조작된 자료가 사용되지 않아야 하고, 정치적 인맥이 사인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롤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결국 이 지점에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내가 환자·소액주주·경쟁기업·심사관 중 어느 위치에 서더라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규칙 아래에서 이루어졌는가"입니다.
이 질문에 당당히 답하지 못한다면, 생산성은 도리어 사회적 협력을 파괴하는 무기가 됩니다. 한쪽이 규칙을 우회해 부당한 이익을 얻으면, 그 이익은 결코 진공 속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공정한 경쟁 기회를 잃고, 누군가는 부실한 정보로 더 큰 치명적 위험을 떠안으며, 종국에는 국가 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집니다.
③생산성이 '공정한 협력의 규칙'을 넘어서면
AI시대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생산성의 크기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과 방식입니다.
AI 시대에 생산성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 과제입니다. 그러나 생산성의 성과가 공정한 협력의 규칙을 무너뜨린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불평등한 부담 위에 쌓은 사적 이익일 뿐입니다. 한쪽의 효율과 이익은 다른 한쪽의 노동, 안전, 기회, 그리고 공정한 경쟁의 몫을 줄여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가(헌법 기관)는 권력을 동원해 그럴듯한 기표로 누군가의 이익을 대리해 주는 기관이 아닙니다. 국가의 진짜 역할은 누구도 허위 자료와 브로커를 이용해 제도를 우회하지 못하도록, 모두에게 공평한 '하나의 정문'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성의 시대일수록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더 빨리 성장했는가’가 아닙니다. 생산성이 공정한 제약과 규칙 아래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성장의 열매가 사회 구성원에게 얼마나 고르게 돌아갔는지를 묻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공정한 협력체계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 그것이 바로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발전의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