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일 청구권 협정의 덫에 걸려, 한 발자국의 진보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 청구권의 정체라는 덫에 벗어나는 열쇠는 그 덫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지금 둔감하다.
즉 인권이라는 보편성과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해법은 일본의 주장 근거인 한일 청구권협정의 재검토이다. 일본의 청구권으로 식민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해결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정면 도전하여, 해석상의 모호함을 없애야하는 것이다.
청구권 협정을 통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었는가에 대한 해석상의 분쟁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일본이 전가의 보도로 쓰고 있는 한일청구권의 해석 분쟁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낸 헌법소원에서 이들의 배상청구권과 관련한 해석 분쟁이 존재함을 판단하고, 이러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판시하였다. 한국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근거하여, 일본에 위안부 문제 관련 양자협의를 제안하고, 나아가 중재절차에 들어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양국 간 분쟁해결 방법을 규정한 한일 청구권 제3조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과의 관계를 검토해 본다.
▶청구권 3조의 분쟁해결규정과 정부의 부작위
한일 청구권협정 3조에는 분쟁이 발생하였을 경우,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외교상의 경로와 중재위원회에 회부를 통해서 해결한다고 규정되어있다.
이러한 한일간의 청구권 해석과 관련,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청구권협정3조의 ‘협정의 해석에 있어 양국간에 분쟁’이 있다고 판단하고, 청구권3조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정부가 작위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헌법 위반이라고 판정하였다.
헌재의 결정이 나온 후, 2011년 9월, 한국 정부는 청구권협정 3조 제1항에 근거하여 일본정부에 양자협의를 제안하는 口上書를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헌재의 판결처럼 청구권3조에 근거한 적극적인 조치, 즉 중재절차에 돌입해야할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법적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정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청구권협정 제3조의 중재절차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의 의의
2006년 7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09명이 외교통상부장관을 피청구인으로 하여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2011년 8월 헌재는 위안부피해자들의 한일청구권협정상의 배상청구권과 관련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우선헌재는 이들의 배상청구권이 65년 청구권협상에 의하여 소멸되었는지에 관하여 한일간에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분쟁을 이 협정 제3조가 정한 절차에 따라 협상과 중재등의 해결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부의 이러한 작위의무의 태만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배상청구권을 실현하도록 협력하고 보호하여야 할 정부의 의무는 헌법적 요청이며, 이러한 의무의 이행이 없다면 결국 청구인들의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정부가 청구권협정상의 청구권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든 청구권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여 협정을 체결한 점이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에 대한 장애상태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헌재는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그 장애상태를 제거하는 행위로 나아가야 할 구체적 의무가 정부에 존재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은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의거한 한일간의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결국 헌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일본과 외교적으로 협상하고, 그럼에도 성과가 도출되지 않으면 중재위원회에 넘길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중재절차
제 3조의 분쟁해결절차는 두 단계로 나뉘어 제1항에서 규정하는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과, 이를 통해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적용되는 제2항 이하의 중재절차로 이루어져 있다.
조시현교수는 제1항의 외교상의 경로는 양자협의를 뜻하고, 이외의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재위원회는 국제법상 중재(arbitration), 즉 중재재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제1항의 외교적 해결이 실패 한 경우, 중재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
중재절차의 개시는 한국정부가 작성한 ‘분쟁 중재 요청 공한’을 일본 정부가 접수한 시점부터 이루어진다.
이날부터 30일 이내에 한일 정부는 각각 1인의 중재위원을 임명하고, 접수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양국의 중재위원들은 합의하여 제3의 중재위원을 임명하거나 이를 지정할 제3국을 정하여야 한다.
중재위원들이 임명되지 않을 경우, 다시 30일의 기간 내에 각 정부가 한일 이외의 국가를 각각 선정하여, 선정된 두 나라가 2인의 중재위원을 선정하게 하여,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두 나라가 따를 것을 규정하여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중재의 핵심은 중재위원회의 구성이다.
이러한 내용을 규정한 청구권 협정 제3조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 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 체약국의 정부가 타방 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일간의 기간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일의 기간 내에 합의하는 제 3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내에 이들 2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과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 단 제3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 중의 어느 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된다.
3. 어느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3의 중재위원 또는 제3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 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재위원회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일의 기간 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3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3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한다.
4.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한다.
또한 제3조에 의하면, 별도의 합의 없이 어느 한 쪽, 즉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중재 신청에 따라 어떤 의미에서는 강제적으로 중재절차가 개시될 수 있게 된다.
▶중재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일본의 협력
일본이 만약 중재위원회의 구성을 거부하는 경우 중재는 불가능 해지는 걸까?
청구권협정 제3조 제2항과 3항은 중재위원회 구성에 일본정부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제 2항에 의해 일본은 중재위원 1인을 선임해야 하고, 이 중재위원은 한국이 선임한 중재위원과 합의하여 제 3의 중재위원 또는 이를 지정할 제3국을 정하여야한다.
일본이 이러한 선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3항은 다시 한국·일본 이외의 국가를 각각 선정하여, 선정된 두 나라로 하여금 2인의 중재위원과 제3의 중재위원을 지명할 제3국을 정하여 중재위원회를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이 중재위원을 선임하거나, 위원을 선임할 국가를 선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제 3항의 국가선정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중재위원회의 구성을 거부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중재위원회 구성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대하여 조교수는 일본이 협정 제3조의 협력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한국 정부는 조약 자체를 종료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고, 미해결 권리로 주장되는 문제들은 원점에서 다시 논의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일본이 중재재판을 모면하기 위해 비타협적인 태도로 나갈 경우 일본은 국가의 신뢰를 상실하게 되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조교수는 이러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결국 협력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중재위원회 회부 내용 : 공한 내용
한국정부가 중재신청을 할 경우, 국내 재판의 소장에 해당하는 공한에 담을 내용은 무엇일까?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중재위원회에서 다투게 되는 핵심 의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청구권 협정 제2조에 포함되는가라는 것이다.
제2조는 한일간의 재산, 권리등의 청구권 문제가 65년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된다고 규정되어 있는 청구권 협정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도 포함되는가라는 문제이다.
만약 위안부들의 권리가 2조에 포함된다고 판결이 내려지면, 위안부의 일본에 대한 개별청구권은 소멸된다. 그러나 중재위원회가 위안부의 권리가 한일협정 2조와 별개라고 판정한다면, 한국은 승소하게 되고, 일본정부의 위안부에 대한 배상책임문제가 대두되게 된다.
여기서 승소가 우리나라에서 기대하는 일본정부의 배상에 이를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중재판정으로 명확히 획득되는 성과물은 청구권협정 체결 이전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중재위원회의 판정이 일본을 법적 배상으로 구속하지 않는 권고에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조교수는 다시 백지상태에서 일본군 위안부 배상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간의 기구를 설립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배상관련 재판을 의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재의 접근 방법
국제인권분야에서 피해자의 배상받을 권리의 확립은 2005년 12월 16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침해와 국제인도주의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의 피해자를 위한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지침’과 2006년 12월 2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위한 국제협약’이 그것이다.
‘반 보벤-바시오니 기준’으로도 알려져 있는 2005년 ‘피해자의 인권장전’에서 주목할 부분은 ‘피해자 중심의 시각 (victim-oriented perspective)’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진술을 우선적으로 사건의 맥락으로 고려하는 원칙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성폭력사건에는 피해자중심주의가 사건구성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성폭력은 물리적·신체적 증거가 없는 한 당사자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하여 사건이 구성되는 만큼, 당사자들의 진술이 엇갈릴 때 누구의 기억과 진술을 객관적인 사실로 여길 것인가라는 논란에 직면한다.
그러므로 성폭력사건의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가 구성하는 사건의 맥락을 존중하고 이를 주요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남성중심적인 사회 통념이나 불합리한 법제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적적할 대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피해자의 인권장전’의 피해자 중심의 시각은 국제인권법과 그 피해자들과의 인간적 연대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연대 정신 속에서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주의법을 준수 할 국가의 의무를 재확인하고, 이러한 의무의 범위로서 1)침해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 2)침해 행위를 조사 수사하고 책임자에 대한 행동을 취할 의무 3)피해자에 대하여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의무, 4)피해자에게 배상를 포함한 실효적인 구제수단 (effective remedies including reparation)을 제공할 의무를 들고 있다.
특히 배상에 관련하여 적절성, 실효성, 신속성과 완전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사안에 따라 원상회복 (restitution),금전배상(compensation), 재활(rehibilitation),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어떤 행위가 법을 위반하여 손해를 끼쳤다면 배상해야 하고, 범죄에 해당하면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명제이다.
이처럼 유엔인권위에서 채택한 피해자중심주의가 중재위원회에서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 정부의 당당한 접근 요망
이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시민운동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가 한일간의 식민지 청구권 분쟁에 대한 적극적 참여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위안부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손상시키는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한일 협정의 제3조에 의거하여 일본과 청구권 협상을 벌이고, 합의점에 이르지 못할 경우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여야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령을 고려해 볼 때, 일본의 도발적 발언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태도 대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서 재검토 받아야 한다.
이제 누구의 눈치를 보는 소심함에서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