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은 한일 청구권 협정 50주년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장애인 동시에, 이 해법에 대한 실마리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배상책임 종결 주장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를 내세워 한일간의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기대어 일본정부는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한일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청구권협정’ 제 2조에는 양국간의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 문제가 이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소멸된다고 규정되어있다.
일본의 우경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올해 들어서도, 주미 일본대사관은 홈페이지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보상을 마쳤다"며 책임 없음을 되풀이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한일 협정의 해석에 대해, 우리나라는 영토의 분리에서 오는 재정상 및 민사상의 청구권이 해결되었을 뿐 개인의 청구권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등 일본정부와 군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정부의 법적책임이 남아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
일본이 일본군위안부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인 한일청구권협정과 아시아여성기금의 성격과 본질을 검토해본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지식인들이 함께 모여 일본식민지하의 성노예 문제를 다룬 2000년 법정의 한계도 파악해본다.
▣ 일본의 위안부 책임의 종결 주장 근거
일본이 위안부 책임을 이행했다고 주장하는 사건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1995년 시작되어 2007년 종결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한국과 일본 양국이 식민지문제의 불법성을 해결하고자 한 시도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다. 이 협정에 의거하여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공여와 2억 달러의 저리의 차관을 받고 두 나라 사이와 국민들 간의 재산, 권리, 이익, 그리고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합의하였다.
청구권협정은 전체 4개조로 이루어진 조약이다. 위의 내용처럼 제1조는 위의 자금공여내용이고, 제2조는 청구권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3조는 양국의 분쟁은 외교상 경로를 통하고, 이에 의해 해결 할 수 없으면 중재절차에 회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제 4조는 일반적인 비준 및 효력의 발생시기와 관련된 조항이다.
이 중 제2조가 다양한 해석의 소지를 남기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한일간에 해석논쟁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동 규정을 근거로 한 국민이 가지는 모든 청구권이 해결된 것으로 보고, 개인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우선 2조의 ‘재산,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 하지만 ‘청구권’의 의미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일 청구권은 미확정권리
이에 대해서 일본정부의 국회답변은 그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탄바(丹波) 조약국장은 국회의 답변에서 “‘재산 권리 이익’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은 이러한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 법률적 근거의 유무 자체가 문제가 되어 있다고 하는, 클레임을 제기 할 수 있는 지위를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타케우치 외무대신 관방심의관도 국회 중의원에서 “일본의 국내법상의 처리에 관하여 한국이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조약상의 메커니즘”이라면서 “개인의 청구권에 관해서는, 개인으로서의 청구를 법원에 제기한다고 하는 권리까지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여기서 ‘재산 권리 이익’의 예는 채권, 담보권등이, 그리고 ‘청구권’의 구체적인 예로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는 손해배상청구권, 위자료 청구권, 임금청구권등이 거론되었다.
그러므로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자와 후자는 구별되어야 하고, 전자는 법적 근거가 확실한 권리인데 반해, 후자는 법적 근거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미확정의 권리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청구권과 관련, 개인의 청구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직후 일본 국내에서 한국민의 일본 및 일본인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144조를 시행하였다.
일본법률 144조는 한국 또는 국민의 재산 중 한일청구권 협정 2조 3항의 ‘재산, 권리 및 이익에 해당하는 것’을 소멸시키는 조치로써, 이 144조에는 ‘청구권’에 대한 소멸은 규정되어있지 않다. 이는 청구권이 미확정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구권의 불확실성과 타협은 미국이 일정 책임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미국은 미소냉전구조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것을 일차로 고려하면서 일본의 범죄 단죄를 소홀히 했고, 아시아에 자본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일본의 역할을 중시하여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보장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미국은 일본을 냉전체제의 동반자이자 공산권 봉쇄의 일원으로 재편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이에 미국은 한일관계의 최대쟁점이 되고 있는 청구권 문제의 처리에 정치적 타협을 권유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한일 청구권에 대한 한국의 시각
2005년 8월 노무현 정부는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해,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식민지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양국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일본정부가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일제 강제징용피해 배상 판결과 관련하여, 2012년 5월 대법원도 한일청구권협정의 본질을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소멸시효완성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 시점이 1944년이나, 국내에서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2000년 이전에는 소송권 행사가 불가능한 장애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시효는 존속하고 소멸시효는 완성되지않았다고 결정하였다.
덧붙여 대법원은 일본이 청구권 협정 직후 일본법률 제144호를 제정한 조치는 청구권 협정으로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외교적 보호수단을 상실하게 되었을 뿐,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일본은 1995년 일본정부가 운영비용을 대고 위안부에 대한 위문금은 국민으로부터 모금하기로 하고 설립된 재단법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의 활동을 들어 일본은 ‘도의적 입장’에서 이미 사죄와 보상을 했으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정부와 국민기금의 논리는 법적책임은 없으므로 ‘도덕적 의무’에 입각하여 사죄와 보상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기금의 활동은 피해 여성들과 여러나라들의 연대단체들에 의해 강력하게 항의되었다. 나아가 국민기금의 선의를 밀어붙이려는 듯한 국민기금의 오만방자함을 성토하였다.
야마시타영애는 국민기금의 문제와 한계를 지적한다. 우선 국민기금의 모호함이다, 국가도 돈을 일부 내지만 공식적인 배상이 아니라 국민의 기금을 통한 보상금이며 도의적 책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애매모호함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언과 연결된다.
야마시타영애는 또한 국민기금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참여했으나, 정치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맥락에서 술수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들은 일관되게 진상규명,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 재발방지를 위해 교과서에 기재하고 교육할 것을 요청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나, 정책추진주체가 정부인지 민간인지도 불분명한 단체를 만들어 본질을 호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인도주의 주장은 법적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조시현교수는 인도주의에 의존한다면 의무는 실종되고 일종의 자선의 문제만이 남는다고 지적한다.
▣ 아시아연대를 통한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 : 2000년 법정
2000년 12월 아시아 시민단체들이 국제법정을 개최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은 일본의 법적책임은 명확하게 확인되었으나, 실제로 일본에 의무를 촉구 할 강제력은 없었다. 또한 2000년 법정은 보편적 인권에 집중하여 특수한 민족문제를 도외시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2000년 법정의 큰 성과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제와 개인들의 행위가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범죄와 전쟁범죄를 구성하며, 일본의 국가책임이 인정된다는 판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의 행위는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강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보편성의 문제가 두드러져 민족이 강조되지 못하였다. 2000년 법정이 끝난 뒤, 한국 측 대표를 맡았던 윤정옥은 민족문제가 경시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조시현교수도 2000년 법정이 위안부 문제를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바라봄으로써 민족이 소외되었다고 지적한다. “2000년 법정이 보편적인 민족주의라는 관념을 상정하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한국의 민족주의를 눕힌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처럼 일본의 한일 청구권 협정, 아시아 평화기금, 그리고 2000년 법정 모두 우리나라 위안부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격이 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해결책은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고자하는 술수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해법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