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이 날을 전후하여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두 번 대폭 인하하였습니다.
2020년 3월 3일, 0.5%p 긴급 인하하였습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정기 회의 외 긴급 금리 인하 사례였습니다.
연준은 3월15일 다시 1.0%p 추가로 인하하여,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금리'(0.00%~0.25%)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표준 돈부시 오버슈팅 모델에 따르면 ‘미국 금리 인하 → 환율 하락(원/달러 하락) → 오버슈팅으로 크게 하락 → 서서히 상승하며 새로운 균형으로 복귀’입니다.
즉, 미국의 금리의 하락으로 달러 자산의 매력이 떨어짐에 따라, 자본이 미국으로부터 이탈합니다. 물가가 경직적이므로 금리 충격 직후 환율(예: 달러인덱스, DXY, 달러1단위당 바스켓통화 가치)이 균형 수준보다 더 크게 하락(예: DXY 95 → 85)합니다. 이후 점진적으로 상승하여 새로운 균형(예: 85→90)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2020년 3월, 시장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와 미 국채등으로 몰리면서 달러 인덱스(DXY)가 급등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3월 9일경 DXY가 약 95 수준에서 시작해 3월 19일경 102.70(바스켓 통화 per 달러)까지 상승하며 모든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 강세를 보였습니다.
미국 금리가 인하되었는데도, 전 세계 투자자들은 다른 모든 자산을 팔고 달러를 사들인 겁니다.
이처럼 금리 인하가 달러 약세를 불러오기보다, 오히려 달러 매수 광풍이 불었습니다.
왜 이런 역전현상이 발생했을까요?
◆ King Dollar 현상의 배경
이처럼 표준 경제 모델의 예측과 현실이 정반대로 나타나는 역설적인 상황은, 모델이 가정하는 정상적인 시장이 아닌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즉 위기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달러 매입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시도하는 이유는 아래 두 가지입니다.
1)‘안전자산 선호(Flight to Quality)’ 현상 또는 '위험 회피(Risk-off)'현상
2) ‘달러의 구조적 지위’
◆ King Dollar' 현상의 배경 (1) : 안전자산 선호 현상 -수익률에서 원금보존으로
2020년 3월 WHO의 COVID-19 팬데믹 선언과 연준의 금리 인하(3월 3일 0.5%p, 3월 15일 1.0%p)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주어진 상황에서, 표준 돈부쉬모델(오버슈팅 모델)의 흐름과 달리, 실제 시장 반응은 이와 정반대였습니다.
DXY는 3월 초 약 95 수준에서 시작해 3월 19일경 102.7까지 급등하며 주요 통화 대비 'King Dollar'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수익률극대화라는 이성적 판단보다 공포라는 비이성적 생각에 지배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투자 의사결정 기준은 수익률 극대화에서 원금 보존과 생존으로 급격히 전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장 분위기를 Risk-off (리스크 오프)라고 합니다.
'Risk-off'는 말 그대로 ‘위험을 끈다(Risk is off)’는 의미로,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상황(예: 경기 침체 우려, 지정학적 위기, 금융 시스템 불안 등)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의 심리(수익 추구에서 Capital Preservation으로 전환)와 그에 따른 위험회피 행동을 지칭합니다.
여기서 위험 회피 행동은 ‘Flight to Quality’(안전자산 선호)로 연결됩니다.
이는 위험 자산(Risky Assets)을 매도하고 안전 자산(Safe-Haven Assets)을 매입하는 것입니다.
즉 주식, 고수익 채권(하이일드 채권), 신흥국 통화, 원자재 등 위험자산의 비중을 축소하거나 매도하고, 매도한 자금을 미국 달러, 미국 국채, 금과 같은 신용등급이 매우 높고 유동성이 풍부한 자산, 곧 ‘Quality’를 매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금 이동이 바로 'Flight to Quality' 현상입니다.
당시 팬데믹 상황에서 시장은 시스템붕괴에 직면했습니다. 단순히 미국 경기가 나빠지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마비, 기업들의 연쇄 도산,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붕괴 가능성까지 우려했습니다.
이러한 공포는 주식, 회사채, 신흥국 통화 등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모든 것에 대한 ‘묻지마 매도(Panic Selling)’를 유발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더라도 일단 현금화하여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시장이 Risk-off 상태에 빠지자, Flight to Quality가 촉발된 것입니다. 이것이 'King Dollar' 현상의 배경이 됩니다.
◆ King Dollar' 현상의 배경 (2) : 달러의 구조적 지위-달러 스왑시장 경색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나타난 ‘킹 달러’ 현상의 주요 원인은 글로벌 경제 전반에서 불확실성으로 인한 미국 달러에 대한 절실한 수요 증가였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달러 스퀴즈(Dollar Squeeze)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스퀴즈(Squeeze)는 특정 자산(또는 통화)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요가 폭증해 가격이 급등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달러 스퀴즈는 전 세계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초과하여, 달러 가치가 급등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혈액인 달러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는 '동맥경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달러 스퀴즈는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렇다면, 세계가 달러를 왜 필요로 하고, 펜데믹같은 위기에는 왜 달러 스퀴즈가 발생하는 걸까요.
단적으로 이는 FX 스왑(Foreign Exchange Swap)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국제 금융 구조에서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무역 거래의 약 80% 이상이 달러로 결제되므로, 달러가 없다면 무역거래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한 기업이 무역거래를 위해 한국의 A은행으로부터 달러를 3개월간 빌리고자합니다. A 은행은 이 기업에 달러를 대출해 주기 위해 미국은행과 FX 스왑계약을 체결합니다. 즉 자신의 원화를 미국 은행에 맡기고, 대신 미국 은행으로부터 달러를 3개월간 빌려온 후, 3개월 후에는 빌렸던 달러를 갚고, 맡겼던 원화를 돌려받기로 약속합니다.
이처럼 FX 스왑(Foreign Exchange Swap)은 두 나라의 통화를 일정 기간 동안 서로 교환(빌려쓰고 다시 돌려줌)하는 일종의 단기 외화 대차 계약입니다. 한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의 은행과 기업이 ‘단기 달러 조달’에 흔히 사용하는 실무적 방법이 FX스왑입니다.
FX 스왑을 할 때, 달러를 빌리는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론상 양국 금리 차이만큼의 비용(CIP:Covered Interest Parity)이 붙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이 이론 가격에 플러스 알파(추가 수수료)가 붙습니다. 이 추가비용이 ‘FX 스왑 베이시스(Basis)’입니다.
스왑 베이시스의 공식은.
‘FX 스왑 베이시스 = 실제로 달러를 조달하는 데 드는 금리 - 이론적으로 CIP에 따라 계산되는 달러 금리’
이 베이시스는 평소에는 거의 0에 가깝거나 아주 작은 마이너스 값을 보입니다. 이는 달러를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충격이 오면 이 수치가 폭등합니다.
2020년 팬데믹과 같은 극심한 위기가 닥치면, 이 추가 수수료(베이시스)가 폭발적으로 비싸집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 불확실성으로 너도나도 달러를 구하려는 '패닉'현상이 발생합니다.
모든 기업과 은행들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달러를 쌓아두고 보자‘라는 생각에 FX 스왑 시장으로 몰려듭니다. 모두가 달러를 빌리려고만 하니 달러의 가치는 순식간에 치솟습니다.
달러를 가진 미국 은행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신흥국 은행에 달러를 빌려줬다가 3개월 뒤에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커집니다. ‘Counterparty Risk’가 커지는 겁니다.
Counterparty Risk(거래상대방 위험)란, 금융거래에서 약속한 상대방(거래 상대, 주로 은행·금융회사·기업 등)이 채무 불이행을 할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거래한 상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위험’입니다.
이때 FX스왑시장에서 거래가 급격히 위축되고, 베이시스가 폭등합니다. 이런 위험이 현실화되면, 돈을 주고도 달러를 못 빌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은행은 달러를 빌려주기를 꺼리거나, 빌려주더라도 엄청나게 높은 추가 수수료를 요구하게 됩니다.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이처럼 팬데믹 시기에 달러 스퀴즈가 발생한 것은 FX스왑 베이시스 폭등으로 달러 조달 비용이 치솟고, 동시에 Counterparty Risk 증대로 미국 은행들이 달러 공급 자체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의 ‘킹 달러’ 현상은 글로벌 경제 전반에 미친 불확실성에 기인하였습니다. 이것이 미국 달러에 대한 절실한 수요 증가를 초래하고 달러가치를 밀어올렸습니다.
정리하면, 달러강세에 이르는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팬데믹 → 극심한 불확실↑ →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심리 (Risk-off) → 안전자산 선호 및 현금 확보 경쟁 (Flight to Quality & Dash for Cash) → 달러 스퀴즈 (공급 부족 & 수요 폭증) → FX 스왑 경색 →킹 달러’
또는 ‘위험회피 심리(안전자산 선호) +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 달러 스왑시장 경색 → King Dollar’